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페이지 유 Sep 19. 2022

참호 일기

달 그리고 사내

달 그리고 사내


사내 앞에 그가 또 나타났다. 

그는 달을 보고 있었다.


“달을 보십니까?” 


“달을 보지요.”


“날마다 보시는 것 같아요.”


“날마다 보지요.”


“날마다 달을 보시는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그는 빙그레 웃으며 대답합니다. 


“달 암석의 화학구조는 지구와 거의 같습니다. 

먼 옛날에는 지구와 달이 한 몸이었다는 증거지요. 

그런데 어쩌다 달은 지구 주위를 맴도는 애처로운 신세가 되었을까요? 

지금 가장 유력한 설은 지구가 지금보다 말랑말랑하던 시절, 거대한 운석이 지구와 충돌하여 지구의 파편이 떨어져 나갔는데 그것이 달이라는 주장입니다. 

어떤 파편은 지구가 붙잡지 못해 영원히 우주로 떠나보냈을 텐데 달 하나만큼은 꼭 붙잡은 거죠.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은 지금도 1년에 4센티미터씩 지구에서 멀어지고 있습니다. 

멀어지는 것과 대화를 나누는 것은 소중한 겁니다.”


“달이 우리 곁을 떠나고 있다고요? 달과 어떻게 대화를 하죠? 달이 뭐라고 하던가요?”


“인간은 언어란 것을 발명한 후로 진짜 언어를 잃어버렸습니다. 

아주 먼 옛날, 인류의 소수 몇 명은 진짜 언어를 할 줄 알았어요. 

그들은 달뿐만 아니라 구름, 꽃, 사슴과 고래, 강과 바람과도 대화했습니다. 

달과의 대화는 이렇게 하는 겁니다. 

달빛을 가슴에 모아요. 그리고 나를 달에 보냅니다. 

처음 여기에는 특별한 메시지가 없습니다. 

모으고 보내고 모으고 보내고 그게 전부입니다. 

이 대화법에 현대인은 과학적으로 공명주파수라는 이름을 붙였더군요.

이 지구의 공명주파수와 달의 공명주파수는 미묘하게 서로 반응합니다.”


“공명주파수라니 그게 뭔가요?”


“1952년 독일의 물리학자 슈만이 지구의 심장에 청진기를 대고 확인한 주파수입니다.

그러니까 지구의 심장박동이라고 보면 되는데 이 주파수는 신기하게도 달도 함께 내고 있습니다.

그 주파수는 7.83 헤르츠입니다. 

천재가 영감을 받을 때라든지, 수도승이 깨달음의 경지에 오를 때 나오는 뇌파도 역시 7.83 헤르츠입니다.

그런데 이 주파수가 무엇인가 문제가 생기거나 기쁘거나 할 때면 아래 위로 요동칩니다.

누군가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 거죠.”


“신기하네요. 아무튼 그래서 우리 곁을 떠나는 달이 무엇을 말하던가요?”


“아시겠지만 나는 당신입니다. 

나는 당신을 찾아주고 싶어요. 

내가 1년에 4센티미터씩 멀어져 가는 이유는, 

1년에 4센티미터씩 당신에게 다가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늘 궁금했는데... 혹시 당신이 내 병을 고쳐주었나요? 내 병이 치유된 것도 혹시 이 대화와 관련이 있나요?”


“나는 당신입니다. 저에게 물으실 필요가 없어요.”


“내 병은 내가 만든 게 아닙니다.”


“맞아요. 당신은 어려운 시절을 견뎌냈어요. 사람들이 상상하지 못할 그런 상처를 안고 있지요. 

당신은 지금도 아프군요. 

그런 상처는 쉽게 치유될 수 있는 것이 아니랍니다. 

심지어 내일 당장 죽을 수도 있겠어요.

하지만 그 아픔은 당신이 이 세상에 올 때 미리 요청했던 사항이랍니다. 

예전의 당신은 아픔이 뭔지 궁금해하곤 했어요. 

또한 사람은 모두 지구와 같아요. 

지구에서 태어난 존재잖아요. 

그러므로 사람들은 모두 하나씩 자신만의 달을 가지고 있어요.”


“나만의 달?”


“만약 어느 날 달이 없어진다면 지구에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달이 없어진다면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 푸름은 사라지고 화성처럼 황량한 존재가 됩니다.

밀물과 썰물이 없어져 바다는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썩어가고 벌들은 꽃과 집을 찾지 못하게 되잖아요.

길게 얘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구는 지옥이 됩니다. 

당신도 그런 당신만의 달이 있어요. 

당신을 아침저녁으로 씻겨주고 길을 찾아주며 외부의 파편으로부터 방패가 되어 주는 달.

저를 보세요.

저의 몸은 당신을 지키느라 이렇게 상처투성이가 되었잖아요.

하지만 여전히 밝게 빛나죠, 행복하기 때문에....

당신은 나의 행복이 어디서 오는지 궁금해했어요.”       


"가만있어봐... 제가 지금 누구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거죠? 당신은 달인가요?"



나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사내는 또 사라져 버렸다. 

이렇게 사라지고 나면 아무리 불러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하늘을 보기 시작했다. 

제주에 어쩌다 오게 된 것이 아니라 반드시 와야 했던 이유도 어렴풋이 이해가 되었다.

제주의 하늘은 달과 가깝다.

이제는 한낮에도 달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바닷가에서도 달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아직 만나진 못했지만

제일 보고 싶은 달은 나의 달과 공명하는 누군가의 달이다.

작가의 이전글 꽃의 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