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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이지 유 Nov 06. 2022

참호 일기

현실과 마주하다.

2014. 8. 20.

멀리서 소쩍새가 운다. 배가 고픈 소리다.

꿈을 꾸었다.


모든 사람들이 나와 한 마디라도 대화를 나누고 싶어 안달을 내는 그런 꿈이었다.

꿈에서 나란 존재는 사람들에게 우상이었다.

유재석이 내 앞에 서더니 아무 말도 못하고 쫄면서 덜덜 떨고 있었다.

그런 유재석의 어깨를 감싸주며 볼에 뽀뽀해 주니 유재석은 정신줄 놓은 표정이 되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며 여배우들은 함빡 웃었고, 나와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섰다.

(아.... 평소에 이런 상상은 한 번도 하지 않는다. 오해 마시라.)


딱 이런 표정이었다.


꿈에서라도 이런 경험을 한번 해 봤으니 얼마나 좋으냐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건 이런 꿈을 꿔보지 못해서 하는 말이다.

나는 꿈에서 깨어 현실을 깨닫고 울었다.  

그런데 신기하게 한참 울고 나니 평화가 찾아왔다. (눈물은 신비한 힘을 가졌다.)

이제야 나는 나를 버릴, 확실한 명분을 찾은 셈이다.

나란 존재가 솜털처럼 훅 불어 먼지처럼 사라진다 하여도 아쉬움이 없을 것 같다.

먼지가 다시 먼지가 되는 데 무엇이 두려우랴.

세상만사가 거추장스럽고 중요한 게 없어졌다.

(이부자리가 좋아지면 어쩌나..... 이부자리나 무덤이나.....)


나는 메마른 사막에서 모래 한 줌을 쥐고 바람에 날리는 상상을 하며 즐거움을 느낀다.  

그런데 이번 깨달음은 또 얼마나 갈까? 이건 바른 깨달음일까?

아무튼 나는 늘 어리석다.  잊는 건 인간의 특권이자 최대 결점이다.

사람들은 내일 또 태양이 오른다고 믿지만 오늘 본 태양이 마지막 태양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애써 잊는다.


지는 태양 뒤를 따르는 어둠, 부인할 수 없는 진리다.


그나저나 나는 왜 저런 꿈을 꾸었을까?

'속물 같으니라고.....' 하며 웅크려 이부자리에 얼굴을 묻는다.

설마 그 꿈이 애써 잊으려 했던 내 마음이었던가? 내 마음은 진실로 저런 삶을 원하는가? 진실로 나는 태양이 되고 싶은가? 내 무의식은 애써 잊으려는 어떤 자아에게 자꾸 뭔가를 보여주려고 애쓰는 것 같다. 내 삶은 온통 애씀 그 자체다.




이 일기를 읽으며 떠오르는 단상 몇 개가 있다.


첫째 인간은 애씀의 존재란 거다. 태어날 때부터 애쓰도록 프로그램되어 있다는 사실을 떠올려 본다. 애쓴다는 건 좋으면서 나쁘다. 어떤 애씀이 좋은 건지는 나중에 알게 된다. (누군가 애씀이 사라졌다면 그는 둘 중 하나가 된다. 성인이 되거나, 자살하거나....) 아무튼 류시화 작가의 말처럼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알겠는가?


둘째  정작 사람들로부터 주목받는 존재가 되면 오히려 한적하고 평화로운 지금이 그리워질 거란 사실을 떠올려 본다. 미국의 톱스타들이 자기를 알아보지 못하는 (혹은 모른 척해 주는) 한국 여행을 즐긴다는 얘길 들었다.  연예인은 자살률이 높다.  <저 친구는 도대체 왜 자살을 한 거야?>라고 믿기 어려운 소식을 들을 때가 많다.  이런 생각들은 모두 자기 합리화 아니냐고?

그런 것도 같다.

솔직히, 정말 솔직히 말해서 저 꿈은 나를 조롱한다. 저런 소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조롱하고, 저런 소망 자체를 또 조롱하고, 저런 소망을 이루지 못해 괴로워하는 나를 조롱하는, 어떤 존재가 내 안에 있다는 느낌이 든다.  


셋째 <여기서 이 글을 왜 쓰고 있느냐> 하는 본질적 질문이 다시 떠오른다.  텃밭을 만들고 있을 때, 마음 한편으로는 '글을 써야 하는데 이러고 있네.' 하는 푸념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텃밭 만드는 게 더 보람 있는 일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텃밭은 위에 꾼 꿈처럼 허황되지 않다. 내가 잠을 자고 있을 때도 뿌리를 내리고 있고, 태양이 우뚝 서 있을 때도 잎을 내고 있고, 내가 밥을 먹고 누군가와 의미 없이 시시덕거리고 있을 때도 줄기를 뻗는다. (아... 나보다 낫네?)

텃밭이 글을 쓴다면 참 좋은 글이 나올 것이다.

텃밭을 닮은 글을 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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