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by 세영


11월 21일, 그 어떤 음식을 굳이 입에 넣으려 하지 않아도 배가 한가득이었던 기분 좋게 배부른 하루. 오늘의 운세에서는 얘기했다. 이사나 여행은 조심해야 하는 한 달이라고, 그래서 망설였다. 생일을 핑계로 타지에서 몇 박 며칠을 꼬박 새워 보고 싶었고 그냥 고독함을 느낄 시간이 필요하기도 했다.

암만 생각해도 먼지가 켜켜이 쌓여 있는 방안 침대에서 스물 한 번째 생일 자정 열두시를 맞는 일은 너무나도 끔찍했다.

아무리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말이 있다지만, 이대로는 안되겠어 정동진으로 가는 기차표를 끊었다. 별 거 아닌 날이지만 기차 안에서 하루건너 다음 날을 맞이하는 건 왠지 별거인 날이 될 것 같기도 했다.

혼자 왔기에 혼자여도 상관없었다.누구와 함께 가야 한다는 마음가짐이 애당초 없었기 때문에 추호도 민망함에 몸서리를 치거나 하는 쪽팔림 따위는 없었다. 오히려 묵은 때를 벗겨내고 진짜 내 속살을 보게 된 기분이었다.

예감이 좋을 거란 기대도 없었다. 처음부터 나는 오늘의 운세라는 단지 예상 속인 글에서 얼추 부정적인 분위기가 만들어졌으니까.

일출을 어디서 봐야 하는지 몰라 망설이다가 걸음이 멈춰진 이모에게 조심스레 여쭈어봤고 본인도 몰라서 일단 앉아 있다며 나에게 혼자 왔냐는 말과 함께 질문을 이었다. 그렇다는 내 반응에 멋지다는 감탄도 그 뒤를 엮었다.

혼자인 나에게 우리와 같이 다니자고 이모는 말했다. 상관은 없었지만 그 말 한마디가 순댓국 한 그릇을 뚝딱 비운 것처럼 든든하게 들려왔다. 배에 든 건 없었지만, 존재 자체로도 배가 불러왔다.

그리고서 사천해변에 있는 이 카페, *쉘리스에 오기 전까지 일출부터 쭉 함께했다. 내가 태어난 생일이 되는 까닭에서가 아니라 누가 21일이라는 날을 선물로 주는 것 같았다.

여태 한참이나 일출을 보여주지 못했던 기상요건도 오늘은 승무원의 말대로 운이 참 좋게도 붉게 타올랐고, 내가 챙겨 갔던 장갑에 핫 팩을 다 써도 되지 않을 만큼이나 추위에 떨지 않았고 낮에는 서울에서 느꼈던 서늘함은 생각도 나지 않을 만큼의 화창한 날씨를 줬다.

함께 해줬던 이모들도 모두.

모든 조건이 정말 감개무량할 만큼 축하받은 날이기에 당연하다고도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이지만 이런 날을 살아 볼 수 있게 해준 엄마 아빠에게 무지 고맙고, 아무래도 21이라는 숫자를 선물로 받은 것 같다. 그리고 스물하나라는 나이에 내가 특별함을 가지게 해준 것도 몽땅 다.



*강릉 사천해변에 위치한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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