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아이들이 없는 집에서

엄마가 아닌 나로 보내는 평일 낮

by AOI BOOKS


아이들과 함께 일본의 긴 연휴를 보내고, 드디어 어제 꼬마 둘을 등원시켰다. 혼자 집에 있자니 청소해아 할 곳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오고, 정리할 것들은 산더미다. 세탁기를 돌려두고 집안 곳곳을 정리하고, 저녁 준비까지 마치고 나면 그제야 나도 밥을 먹을 시간이다. 아주 거창한 움직임은 아니지만, 짧은 시간이라도 마음의 위안을 얻고자 밥을 먹기 전 간단한 운동을 해본다. 다이어트는 일년 내내 진행중이다.


둘째를 낳고 불어난 몸을 방치하기엔 너무 귀여워진 내몸. 이제 더이상 피할길이 없다. 아침은 간단히 먹었으니 점심은 아주 많이 먹고싶어 냄비 가득 파스타면을 삶아 신선하고 건강한 재료를 더해 파스타를 만들어 먹는다. 너무 많이 먹어서일까. 점심을 먹고 나면 어김없이 졸음이 한 가득 몰려온다.


몸도 마음도 느슨해진 이 시간에, 그동안 돌보지 못했던 나를 돌본다. 정리되지 못한 손톱 주변을 말끔히 다듬고 영양제도 꼼꼼히 발라준다. 아이들과 돌아다니느라 햇볕에 그을려 상한 피부 위에는 팩을 하나 얹어 본다.



그러고 나면 어느새 오후 세시 쯤. 오늘도 이렇게 집안일을 하다 보면 아이들을 데리러 갈 시간이 된다. 내일은 꼭 집을 나서,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가져보리라 마음속으로 조용히 다짐해본다. 이 짧은 시간은 단순히 쉬는 시간이 아니라, 다시 엄마로 돌아가기 위한 숨 고르기 같은 순간이다. 누군가의 필요보다 나의 감각을 먼저 떠올려 보는 시간, 지워졌던 나를 다시 불러내어 오늘 하루를 끝까지 버틸 힘을 얻는 시간이다.



손톱을 다듬으며 보았던 유퀴즈에서 우리나라 1세대 조경가, 정영선 선생님의 말씀이 유난히 마음에 남아 여기에 적어둔다.



검이불루 화이불치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다는 뜻의 이 말은 우리나라를 가장 잘 표현하면서도 한국 고유의 미학을 관통하는 힘이 느껴진다. 정영선 할머니는 젊어서 길가에 자라던 미나리 아재비라는 작은 식물에게 약속을 하셨단다. 내가 잘 되어도 너를 잊지 않겠노라고.


마음이 얼마나 깊고 아름다운 사람이면 길가의 작은 식물에게 그런 약속을 할 수 있을까. 여든에 가까운 나이에도 여전히 공부하며 자신의 일을 이어가는 정영선 할머니의 그 고운 모습을 보며, 아름답게 나이 든다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나는 너그럽고 모두에게 친절한 어른이 되길 바란다. 우선은 우리집에서 시작해보기로 한다. 마음도 몸도 지치고 힘들때마다 아이들에게 화부터 내고, 협박이 섞인 말들로 서둘러야 한다고 다그쳤던 것을 멈추고 사랑이 많고 온유한 엄마가 되어보기로 결심해 본다. 물론 하루 이틀 지나면 또 흐트러지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마음을 먹어 보는 일, 그것 또한 의미있는 수많은 시작이 아닐까하고 생각해본다.


계속 시작하는거다. 온화하고 다정한 엄마가 되는일도, 다이어트도. 그렇게 하루하루가 모여 포기하지 않는 날이 포기하는 날보다 조금씩 더 많아질 테니까.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단정하되 누추하지 않게, 조용하되 무심하지 않게 삶의 적정선을 지켜가는 것.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나 다움을 잃지 않고 소리없는 하루를 담담히 잘 살아내는 것부터 다시 시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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