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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rin Dec 20. 2022

내가 만난 사람들

좋은 사람들과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

종종 어떤 사람과의 이야기에서 상황에서 이해할  없음을 느낄 때 나는 그런 생각을 한다.  사람이 외국인이라면 당연히 한국에서 마주하게  확률은 희박하겠지만 한국인이라면? 내가 지금 다른 나라가 아닌 한국이었다면 나는  사람을 마주  일이 있었을까 물어본다면 단숨에 나는 아니라고 말할  있다. 같은 국적의 사람이라는 걸 제외하면 사실 비슷한 점이 없는 한국인을 마주하는 일은 생각보다 굉장한 피로감을 안겨준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한국에서도 우리는 각자 얼마나 무례하고 상식을 뛰어넘는 사람들을 많이 보고 사는가. 그런 상황들에서 오는 피로감은  얼마나 큰지 모두가 알고 있다. 하지만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너무나도 당연하게 같은 한국인끼리 마주해 생기는 상황의 수와 외국인이 사는 곳에서 소수의 한국인들의 사회에서 겪는 것은 너무나도 달랐다. 한국에서는  이상한 사람이 아니어도 바로 옆에 괜찮은 사람이 있고 쉽게 찾을  있다. 하지만 그것은 다수의 같은 사람들이 모여   가능한 것이다. 소수의 사람들 사이에서  확률은 너무나도 희박하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그들을 피하면 되는  아니냐고 하겠지만 그건 그거대로 쉽지가 않다. 그들과 함께 일을 하고 있다면 그리고 언제든 일자리를 쉽게 찾고 옮길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그건  어렵다. 바로  이야기이다. 주방에서 일한 경험도 그렇다고 영어를 잘하는 외국인이 아니었던 나는 일자리를 찾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물론 현지 로컬 식당이나 카페에서도 일을 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모국어로 쉽게 의사소통을   있다는 것은 얼마나 편리한 환경인가. 군다나 일을 배워야 하는  입장에서는 나의 이런 경력이 없음을 받아주고 나는 쉽게 일을 빠르게 배울  있었으니 말이다. 물론  편리함이 나중에는  영어 인풋이 급격히 줄어들게 만드는 치명타가 되기는 하지만 말이다. 어찌 되었든 간에  작은 같은 국적의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종종  피로감을 느꼈다. 종종 선을 넘는 오지랖과 모든 말들에 부정적인 의견만 줄줄이 사탕처럼 늘어놓는  자리는 대부분이 술자리였다. 아직도 기억난다. 처음으로 같이 사는 친구들과 술을 마시러 늦은 시간에 한식당을 갔었다. 젊은 친구들이 가득했고 시끌벅적했다. 아이돌의 음악이 연신 나왔고 음악 소리가 크니 사람들의 목소리는  크게 뒤섞였다. 정말로 한국에서라면 절대 가지 않았을 그런 장소였다. 내가 그들보다   나이가 많은 탓도 있겠지만 정말이지 정신이 없었다. 동네 모든 한국인 특히 젊은 층의 사람들은  모인 거 같았다. 내가 좋아했던 공간들이 처음으로 그리웠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고된 하루를 마감하고 종종 술자리를 가졌다. 그때쯤의 나는 이제 시끄러운 한국인들이 가득한 한국의 아이돌 음악이 귀를 때리는 그 가게에 익숙해져 있었다. 늦은 시간까지 여는 가게는 없고 일을 끝나고 갈 수 있는 유일한 가게였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웃고 떠드는  날도 있었지만 자주 쓸데없이 길어지는 말들에 귀를 닫을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종종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렇게 사회생활이라고 불리는 어떤 것을 했던 적이 있었는가 말이다. 한국에서도 성실히 수행하지 않았던 소위 말하는 그 사회생활을 이렇게나 애쓰며 수행하고 있자니 여기가 어디인가 싶었다. 어떠한 교집합도 없는 사람들은 종종 나를 이해하지 못했고 반대로 나는 그 사람들의 선을 넘는 말들을 짚고 넘어갔다. 이런 피로감이 반복되어 지칠 때쯤 박차고 나올 만큼 이상한 사람을 만나고 나서야 이런 자리들을 가지 않아도 되는 환경을 만들 수 있었다. 이후에 외국인 친구들과 일하게 되면서 출퇴근만 하는 생활이 생겼다. 가끔 밖에서 보는 게 전부였는데 한 번은 친구가 나에게 그런 질문을 했었다.


왜 한국인들은 일이 끝나면 술을 마셔? 일이 힘들면 집에 가서 쉬어야지.라고 말이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정말로 일이 힘든 날에는 술이 달다. 그래서 술을 마시는데 사실 생각해보면 일이 힘들면 쉬는 게 맞다. 저 질문 하나에 나는 한 문장의 대답을 할 수 없었지만  구구절절 모든 걸 말하자면 말이 끝나지 않을게 분명했다. 끝나고 술 한 잔 합시다 하는 특히 나보다 나이가 더 많은 사람의 말에 거절을 하는 것은 그들에겐 다소 예의 없는 어떤 지점이었다. 정말로 그냥 작은 한국 사회이다. 한국 사회의 축소판일 뿐 크게 다를 게 없었다. 좁은 관계들이 모인 작은 사회에서는 나는 모르는 누군가가 나를 알기도 하고 은연중에 이유도 모를 내 평판이 입에 오르내리기도 한다. 그런 아슬아슬한 어떤 지점에서 누군가는 질려버려 등을 돌리기도 하고 누군가는 그것에 어떠한 불편함도 느끼지 않고 섞여 살아간다. 이제 나는 적당히 사회생활을 하고 거리를 둔다. 종종 내가 나이가 어리지 않아서 가능한 게 아닐까 생각하기도 한다. 이런 작은 한국 사회에서 나이가 또 빠질 수 없으니 말이다.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은 여전히 주변에서 고개를 들곤 한다. 사실 이젠 어떤 지점들에서는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던가. 가끔은 침묵이 혹은 무시가 내 좋은 방어책이 되곤 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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