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노래하는 시와를 좋아한다. 아주 오랫동안 시와의 노래를 좋아했고 5월의 늦은 오후 여름이 다가오던 그즈음, 문래동에 있는 건물 옥상에서 들었던 시와의 노래를 나는 아직도 사랑한다. 전에 시와가 키라라라는 뮤지션과 협업을 하고 서로 곡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걸 봤었다. 키라라가 이야기하는 시와의 목소리에 대한 이야기도 인상적이었지만 그런 이야기를 다정함으로 들어주는 시와의 모습도 좋았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따뜻한 시선으로 온전히 듣는 사람을 보면서 참으로 다정한 사람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저 온화하다고 하기에도 친절하다고 하기에도 조금은 다른 느낌이 다정함이라고 생각한다. 저런 다정한 사람 앞에서는 한없이 가벼워진 마음으로 종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난 다정하다는 그 표현을 좋아한다. 사전에 나온 정이 많다는 말로 정의하기엔 너무 좋은 마음을 가득 품은 사람 같지 않은가. 다정한 사람.
생각해보면 다정한 구석을 가진 사람들이 주변에 늘 있었던 거 같다. 나는 다정한 마음을 자주 나눠 받았던 사람이며 현재도 그러하다. 그래서 연말이 되면 그 다정한 마음들이 생각나 내년에는 그 쌓인 마음들을 돌려줘야겠다고 생각한다. 다들 마음 한구석이 아프기도 하고 보듬기도 버거울 시간들이 있을 텐데 다정함을 내어주는 좋은 사람들이다. 처음 호주에서 일을 구하기 시작할 때 이래저래 마음처럼 쉽지가 않아 힘들었었는데 같이 학교를 다니던 친구와 처음으로 그런 긴 이야기를 나눴었다. 그때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일을 하다 잘렸었다. 바쁜 시즌이었던 연말이 지나자 내가 일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마지막 급여를 받고 끝이 났다. 그렇다고 해봐야 일을 한 날은 며칠이나 되었을까. 처음으로 주방에서 일을 했었고 영어까지 서툰 내가 늘 나를 탐탁해하지 않는 이탈리안 할아버지 밑에서 잔뜩 주눅이 들어 일을 했었다. 손글씨로 적어오는 주문서를 읽어야 하는 일까지 모든 게 서툴고 힘들었다. 나는 그간에 힘들었던 일들을 친구에게 이야기했었다. 친구는 나에게 이런 이야기들을 해줬었다.
누구나 처음은 있고 그런 사람을 가르치고 같이 일하는 건 셰프가 해야 하는 일이야. 네가 영어를 못한다고 해서 그게 큰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에는 영어가 서툰 사람들이 분명 많아. 그리고 얼마나 다양한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는지 너도 알잖아. 너에게 일을 제대로 알려줄 수 있는 좋은 선생님이자 셰프인 사람을 만나면 되는 거야. 나는 운이 좋게 그런 사람을 일찍 만날 수 있었던 거고. 너도 만날 수 있어.
친구는 내가 주눅이 들었던걸 알았던 건지 괜찮다면서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래 그 고약한 이탈리안 셰프 할아버지에게 쫄 이유는 없었다. 한참을 내가 잘하지 못해서 이런 일을 겪어야만 했던 걸까 했던 그 마음이 많이 누그러졌다. 그 이후에도 그 친구는 나를 많이 도와줬다. 같이 일을 하면서도 항상 이야기해 줬다. 네가 다른곳에서 일을 하더라도 이런 건 지켜야 하고 또 이런 걸 만들 때는 이런 방법을 쓰는 게 좋다는 식의 조언을 늘 해줬었다. 자신이 배운 그대로 그걸 나에게 알려줬다. 그리고 나도 많이 배웠다. 종종 친구의 그런 겁이 없는 당찬 모습이 부럽기도 했다.
그런 다정한 마음 덕분에 나는 또 많은 시간을 잘 보냈다. 지나간 시간들에 함께 해주었던 마음들은 항상 조금 지나서야 그 마음들을 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다. 지금 나와 함께 일하고 있는 친구 한 명은 어쩌다 내 친구들도 몰랐을 내 힘든 시간을 봐주었다. 당시에는 그 마음이 고맙다는 생각보다는 나와 가까운 사람들이 날 이해할 수 없을 거라고 이 막연한 공포와 불안을 헤아릴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참으로 미안하게도 그 친구에게 난 모난 마음을 내비치곤 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을 미워하게 되는 그 마음은 정말로 존재하는 것이었다. 정말로 미운 그 마음을 나는 정당한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여전히 그 마음들은 언제고 한 번씩 불쑥 찾아오게 될 것이라는 걸 잘 안다.
그 친구는 여전히 내 하소연도 들어주고 많이 도와준다. 표정이 좋지 않으면 그걸 제일 먼저 알아채고 물어봐준다. 처음에도 그랬었다. 그래서 난 그 친구에게 다정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친구라고 편지에 썼었다. 다정한 마음으로 내비쳐서 다가오는 사람에게는 말할 수 있다. 나는 대부분 늘 말을 하는 사람인데 나에게는 타인에게 내어줄 다정한 마음이 있는 사람일까? 종종 그런 생각을 한다. 너무 늦게 나는 마음이 정돈되지 않은 사람이며 생각과 감정을 분리하는 게 힘든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러한 사람의 힘든 시간을 다정한 마음들이 함께 해줘서 잘 버틴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내 마음이 좀 더 단단해지고 정돈된다면 다정함을 찾을 수 있을까. 아마 평생에 걸쳐 나는 내 안에 다정함을 찾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타인에게서 보던 그 다정함이 모호해지는 기분이다. 하지만 언제고 나도 누군가와 마주 앉아 다정함으로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