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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rin Feb 07. 2023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하여

이러지 말아요 우리.

우리는 어릴 때부터 작은 사회에서 사람들과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성인이 되면 여러 다양한 그룹 안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여러 가지 일들을 경험하게 된다. 생각해 보면 나도 20대 초에 같이 일했던 나이가 한참 위인 언니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었다.


내가 저 나이가 된다면 저러진 말아야지.


글쎄 그 언니도 내 나이 때 나처럼 생각한 적이 있을진 모르겠지만 20대 초반의 내가 본 그 사람은 성숙한 어른은 아니었다. 몇 년 전 그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와 그런 이야기를 했었다.


와 우리 이제 그때 그 언니 나이네.


종종 이런 순간에 우리는 우리의 나이를 체감하게 된다. 20대에 안 보이던 30대를 이제 반 넘게 지나왔다. 이젠 앞자리가 다른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내가 지나온 시간이 얼마만큼이나 그들과 동떨어져 있는지 불현듯 깨닫게 된다. 아직 우리를 어른이라 부르기엔 좀 낯부끄럽고 그럴싸한 조언을 주기엔 우리도 아직 우리 앞날이 불안하고 궁금하다. 그래도 사람이 나이를 먹어서인지 이런 사람으로는 보이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도 자주 든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한참 어린 친구들도 나를 보면서 저 사람은 저 나이대에 비해 이렇다 저렇다 생각하겠지. 나는 지금 나보다는 어린 친구들과 일을 하고 있다. 그렇다고 내가 어린 친구들이 예의를 갖춰 깍듯하게 대할 만큼의 나이도 아니고 그렇게 보이는 사람도 아니라 내 입장에서는 크게 불편하진 않다. 물론 그들의 얘기는 다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사실 나이를 떠나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보다 보면 배울만한 부분이 있는가 하면 저렇게는 하지 말아야지 하는 게 늘 분명하게 존재한다. 내가 가장 경계하는 태도는 부정적인 태도다.


사람은 본인이 사는 게 너무 지치고 힘들고 내 마음처럼 되지 않으면 결국 타인을 탓하거나 부정적으로 바라본다. 근데 이게 외국에서 생활을 하다 보면 극명하게 드러난다. 영주권이라는 더 이상 임시로 거주하기 위해서 일정 시간이 지나면 내 신분을 갱신하지 않아도 되는 말 그대로 체류 자체에 대한 걱정이 없는 삶이 아닌 이상 대부분은 그 직전까지 많은 일들을 겪는다. 세상 돌아가는 게 다 똑같겠지만 그 과정에서 내 마음처럼 안 되는 사람들 또한 많다. 대부분의 일들이 그렇듯이 우리는 어느 정도의 운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런 일들에 치이다 보면 흔히 말하는 모든 게 고까운 사람이 돼버린다. 사실 그건 너무 쉽다. 내가 듣고 겪어온 실패의 사례가 당연한 것이 되고 타인에게 그 실패를 전제로 한 지금의 내 상태를 근거로 당신도 그것이 잘 되지 않을 거라고 굳이 굳이 말하고 있다. 이전에 같이 일했던 동료 한 명이 그런 태도를 가진 사람이라서 초반에는 너무 힘이 빠졌다. 무슨 말을 해도 결론은 안될 것이다 혹은 그건 너무 어렵다였다. 어차피 그런 대답만 들려줄 사람이라면 이젠 어떤 것도 상의하지 않겠다 생각했다. 모든 일에 될 가능성과 되지 않을 가능성을 생각하는 것은 좋다. 하지만 굳이 안 되는 가능성에 치우친다면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다.


그리고 요즘 또 한 가지 자아가 너무 커져버리지는 말아야지 생각했다. 자아가 커진다는 건 근자감이라는 말과도 연결이 될까? 내가 너무 커져버려서 다른 사람의 잘못은 잘못이 되고 내가 한 잘못은 실수라고 거대해져 버린 자아가 덮어버리는 것이다. 이건 정말로 최악이었다. 도대체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비대해져 버린 자신의 자아에 도취된 것일까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타인의 잘못을 말하면서 깎아내리고 자신이 더 나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만끽하고 싶어 하는 걸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자아가 너무 작아져 버려도 문제인데 저렇게 비대한 자아를 가진 사람은 그것대로 참 별로였다. 적어도 남을 탓함으로 내가 더 나은 사람이라는 결과에 도달하지는 말자 이겁니다. 하지만 난 그에게 그런 태도는 좀 별로라고 진지하게 말해 줄 생각은 없다. 그 도취된 자아를 건드리고 싶지 않다. 사람은 준비되지 않으면 좀처럼 어떠한 사실을 쉽게 받아들일 생각은 없으니 말이다. 그 사람의 화가 나 잔뜩 부풀 그 비대한 자아를 난 감당할 자신도 이유도 없다.


요즘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바꿀 수 없는 사소한 것들 즉 나를 건드리는 그 문제들을 좀 놓아주자고 말이다. 이게 참 기운이 빠지는 일이다. 글쎄 회피라면 회피라고 할 수 있겠지만 다들 그런 순간들이 있지 않던가. 부딪히고 부딪혀도 결국 나만 부딪히고 있는 날 말이다. 나는 슬픈 순간에도 잘 울지만 화가 너무 많이 나지만 그 화를 내지 못할 때도 울고 만다. 울고 나면 후련하냐 그것도 아니다. 화가 가시질 않아 괴로움은 내 몫이 된다. 그렇다면 좀 놔야겠다 이렇게 생각한 것이다. 종종 너무 무던한 사람 같다가도 생각이 많아져 거기에 짓눌리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그래 그래도 이거 하나는 중요하다. 저렇게 되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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