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에 다니던 미용실이 있었다. 그곳에는 큰 강아지 두 마리가 있었다. 그날 어쩌다 그런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는지 기억나는 건 없지만 내 머리를 잘라주던 미용사 분이 그런 이야기를 했다. 키우던 강아지가 떠났었다는 이야기.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가만히 앉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도통 알 수 없었다. 위로의 말이라도 하고 싶었던 거 같은데 말이다. 한동안 아무 말도 건네지 못한 것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리고 난 그 이야기를 노래로 만들었었다.
어떤 말들을 골라야 하는지 모르던 그때의 나는 그게 참 어려웠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보여주는 것이 어려웠던 거 같기도 하다.
어릴 적 나는 연애를 못하는 건지 안 하는 건지 나도 알지 못했다. 쉬지 않고 연애를 하던 가장 친한 친구는 매번 새로운 이야기들을 들려줬다. 그리고 그 이야기 마지막엔 늘 연애를 하라는 잔소리가 이어졌다. 몇 번 좋아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 마음을 가지고 있는 일은 나에게는 가끔 너무 버거운 일이 되었다. 그냥 난 내 마음이 넌지시 들켜버렸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종종거리다 큰일이 날 거 같은 마음이 들었다. 그럼 나는 친구에게 어쩔 줄 몰라 한참을 이야기했다. 어느 날은 전화기 너머로 내 이야기를 듣던 친구는 종종걸음을 치는 나에게 그러지 말라며 말을 이어갔다. 그러고선 이 종종 거리는 마음을 어쩌지 못하는 내 못난 마음을 들춰버리고야 말았다. 난 그 부끄러운 마음에 얼른 전화를 끊고 왜인지 조금 울었다.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사람들을 보려고 처음으로 부산에 갔었다. 친구들은 어떻게 믿고 거기까지 갈 수 있냐고 물었다. 한 번도 그런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처음으로 혼자 서울을 벗어났다. 카메라는 챙겨 넣었지만 다른 건 제대로 챙겨가지도 않았었다. 도착해서 만난 사람들은 친절했고 다정했다. 그렇게 인연을 맺은 언니는 내 마음을 들켜도 안전하다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종종 낯선 사람들에게 더 많은 마음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 부끄러운 마음을 들켜도 덜 부끄러웠다. 이미 나를 너무 잘 아는 사람들에게 말하는 마음들은 늘 외면하고 싶어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어서 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나의 마음을 너무 잘 알아챘다. 어느새부터인가 그냥 그 마음을 들춰내버리고야 마는 결말에 지쳐버렸다. 가끔은 너무 커져서 주체할 수 없게 되면 그만큼 더 들키고 싶지 않았다. 들켜버리면 돌아올 말들에 난 아직도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래서 낯선 사람들에게 넌지시 말을 던진다. 나를 잘 모르는 사람 앞에서는 왜인지 부끄러움이 아닌 이해를 받는 기분이 들었다.
좋아하는 작가님이 캐나다로 레지던시를 온다고 했다. 만난 적 없지만 작가님의 사진을 좋아해서 종종 온라인에서 짧은 대화를 했었다. 난 그 소식을 듣고 반가움에 만나자는 제안을 했다. 그렇게 추웠던 겨울 처음으로 몬트리올로 향했다. 늦은 저녁에 도착해서 만난 작가님은 반갑게 인사를 해주었다. 저녁을 먹고 펍에 들러 맥주를 마셨다. 밤거리를 걸었고 차이나 타운에 있는 멋진 가게에서 술을 좀 더 마셨다. 작가님이 지내는 숙소로 돌아와 구경을 했다. 공용주방에서 간단한 파스타를 만들고 와인을 준비해 주셨다. 넓은 스튜디오 한쪽에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도 나눴다. 우린 몇 시간 전 공항에서 만난 사람들인데 말이다. 지극히도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눴다. 난 한쪽에 굴려둔 마음을 이야기했다. 그 말을 해도 될 거 같았다. 술기운인지 그 마음을 들키는 것이 조금은 가벼워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거 같다. 나의 실패의 경험들이 내 조급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은 잘못이 아니라는 작가님의 그 말은 내내 머릿속에 남았다. 나는 실패의 경험들 속에서 자꾸만 더 부끄러워졌었다. 그래서 그걸 누가 들춰내버리면 그걸 부정하고 싶었다. 그게 아니라.. 이렇게 생각해봐 하면서 말이다. 자꾸만 사람들은 들춰낸 내 이야기를 내 앞에 가져다 놓고 인정하기를 바라는 거 같았다. 그렇게 한번 내몰리면 모든 걸 망쳐버리고야 말았던 실패의 경험들.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은 휘발되어 버릴 말들이라는 안전함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도 상대방의 지극히도 개인적이던 어떤 이야기들을 기억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래야 할 거 같았다.
차마 말로 고르기 어려운 위로의 말에 대해서 생각한다. 무턱대고 차오른 말들을 다 하기엔 조심스럽다. 종종 한참을 그 말들 안에서 고르고 고르다 말을 전하기도 한다. 그저 그 위로의 말조차 상대방이 마음이 쓰이지 않았으면 가벼운 인사처럼 지나가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미용실 의자에 앉아 적당한 말을 고르지 못하던 나는 마음을 전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 같았다. 어떤 것에도 조심스러워 뭐가 맞는지조차 몰라 결국엔 그 순간들은 다 지나버리고야 말았다. 한국을 떠날 때 인사와 평안을 바라던 친구들의 마음과 좋아하는 시집을 보내주고 멀리서 보내오던 편지를 받으면서 나는 조금씩 그것들을 배웠다. 그 마음들이 쌓여서 고마움과 위로를 더 잘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종종 위로가 필요한 나 스스로에게도 위로할 수 있는 법을 알려주었다. 아주 작은방에서 함께 지냈던 룸메이트가 떠난 날 나는 부지런히 몸을 움직였다. 이후로 나는 음식을 만들거나 청소를 했고 밀린 이불 빨래를 했다. 가끔은 오랫동안 걸었다.
얼마 전 저는 당신에게 조금은 솔직하게 위로의 말을 건넸어요. 그 말이 반가운 인사처럼 남은 거 같아 다행이었습니다. 저에게 남은 반가운 인사 같은 다정함 들은 종종 다시 나타나곤 했어요. 당신에게도 작은 다정함들이 가끔씩은 스며들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