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내지른 짧게 퍼지는 놀란 비명에 놀라 잠에서 깼다. 평소보다 한 시간은 일찍 깨버렸다. 눈을 뜨고 몇 분 동안 꿈에서의 마지막 장면이 너무나 선명하게 그려졌다. 꿈을 자주 꾸기는 했지만 대부분은 눈을 뜨면 이내 사라지는 꿈들이다. 그런데 오늘은 꿈에서 너무 놀라 깨버리고 말았다. 어영부영 다시 잠이 들었다가 지각을 할 뻔했다. 부랴부랴 옷을 챙겨 입고 출근길에 나섰다. 매일 사 먹는 커피값이 적지 않길래 커피를 타서 집을 나서야지 하면서 커피를 사두었지만 오늘 결국 또 카페를 들르고야 말았다. 한참이 지나고 반도 채 마시지 못하고 담아둔 커피는 텀블러에서 얼음이 다 사라진채로 남았다. 커피를 사들고 와도 결국엔 식어버린 커피 아니면 다 녹은 커피를 마시게 된다.
점심을 거르고 지낸 지 몇 주가 지났다. 아침과 점심은 거르고 저녁만 먹는데 일을 하다 보면 머리가 둔해지는 느낌이 든다. 일하는 곳에서 스탭밀을 무료로 먹을 수 있지만 먹지 않는다. 크게 먹고 싶지도 않지만 스트레스가 많으면 더 안 먹게 된다. 아침에 들고 온 식은 커피를 마시는 게 전부다. 입에 뭐라도 넣어야 머리가 더 잘 돌텐데 집에서 커피를 들고 나와야지 하는 각오만큼 간단하게 먹을 음식을 챙겨 나오는 게 수일동안 미뤄지고 있다.
꿈자리가 사납더라니 오늘의 일진이 제법이다. 나는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이다. 최근에 이사를 하고 새로 구한 직장은 큰 회사의 매장이다. 규모가 큰 회사는 처음이라 걱정했지만 생각보다 일에는 쉽게 적응했다. 한 달 즈음이 지나고 승진을 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일했던걸 생각하니 이렇게 인정받았던 적도 없었던 거 같았다. 하지만 어딜 가나 완벽한 곳은 없다. 처음으로 아무런 경험도 없는 사람들을 채용하는 회사에 놀라게 된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는 대부분 나보다 경력이 많거나 이미 경력이 있는 나와 비슷한 사람들과 일을 했었다. 새로 오픈을 앞둔 매장에서 다 같이 트레이닝을 시작했다. 나는 요리학교에 다니던 날 첫 주 수업들이 생각났다. 각자 받은 칼을 사용하는데 첫 수업에서 트레이너는 칼을 조심하라고 했다. 새 칼이라 날카롭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날 세네 명이 손을 베었다. 하지만 그곳은 학교였으니 괜찮다. 모든 것을 알려주는 곳이니까. 여기는 일을 해야 하는 곳인데 과연 괜찮을까 싶었다. 사실 일을 해오다 보면 금세 분위기라던지 일은 어떤지 금방 눈에 보이기 시작하는데 시간이 지나니 세분류 정도로 나뉘었다. 일은 못하면서 일을 잘한다고 생각하는 부류 특히나 지나치게 말이 많다. 적당히 일은 하지만 적극적이지 않은 부류 그리고 적극적이고 잘 따라오는 부류. 가장 먼저 언급한 부류가 역시나 제일 골치가 아픈 쪽이다.
보통 경력이 없는 사람들과 일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이 사람이 배우려고 하는 의지가 있는지 없는지이다. 일눈치가 없는 사람이라도 배우려고 한다면 알려주는 건 어렵지 않다. 하지만 내가 말한 부류의 사람들은 보통 자신들이 일을 잘한다고 생각하고 아는 체 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여기서 오는 피로도가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할 수 있다고 했지만 결과를 망치기도 하고 남 탓을 하곤 했다.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고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들은 고치면 된다. 설령 자신의 과정이 맞았다고 해도 결괏값이 다르다는 건 또 다른 이유가 없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이런 차이가 좁혀지지 않는다는 걸 알고 나니 사람이 싫어졌다. 사실 사람을 싫어하면 모든 게 다 싫어지기 마련이라 가장 조심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내가 계속 친절하게 하면 오히려 나에게는 좀 쉽게 대해도 되는 사람이라는 태도를 보이니 나도 방법이 없었다. 자꾸만 골치 아픈 일들이 생겼고 매일 리포트를 올릴 때 고민을 하면서 올렸다. 사실 그대로를 적고 특정인에 대한 비난을 피하기 위해서 말이다. 부족한 영어로 매일 의사소통을 해야 한다는 것도 한 몫했다. 규모가 크다 보니 동료들의 수도 많고 상사들은 더 많았다. 내 위로 관리자가 많다 보니 그만큼 지적도 많고 소모적인 일이 잦아졌다. 한 가지 일에서도 각자 다른 기준이 나오기도 했고 가끔씩은 내 위의 직속 상사가 없는 날도 있었다. 내 몸은 하나인데 할 일은 너무 많았다.
지금까지 일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좋은 기억들도 많다. 일하면서 화나는 일도 많았지만 가끔은 정말 즐겁게 일하던 때도 있었다. 하루에도 몇 번 지적을 받는 날이면 잘하고 싶은 마음만큼 지치는 마음이 커졌다. 자책을 하려는 마음을 추스르고 이 정도면 잘 해냈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벌어지는 일들을 수습하고 내가 맡은 바는 다 하려고 하는 그 책임감이 지난 친 걸까 라는 의심도 자주 생겼다. 내가 인정을 받는다는 느낌은 어느새 그저 붙박이로 일을 해낼 사람이 필요했던 건가 라는 생각으로 굳어지기 시작했다. 아직 3개월이 안되었는데 이렇게나 골머리가 아픈 적이 있었던가. 나는 나도 모르게 내가 능력이 없는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을까 그러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 사로잡혔다. 애쓴 만큼 모든 일은 다 잘 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나는 아직도 좋은 스승이 필요하다. 너무나 배우고 싶은 게 많고 해내고 싶은 게 많다. 쉬는 날 아침 평소에 리포트도 거의 안 했던 동료가 올린 글에 상사가 칭찬하는 피드백을 보고 기분이 좋지 않았다. 매일 고민해서 올렸던 리포트에는 어떤 피드백도 없었는데 말이다. 순간 내 리포트의 문제가 있는 것인지 내 태도의 적극성이 부족한 것인지 오만 생각이 들면서 침대로 꺼져 들어갔다. 올해도 쉽지는 않을 거라 했는데 기왕 그렇다면 다시 다른 곳을 찾아볼까 하는 마음이 든다. 내가 여기서 즐겁게 일할 수 있을까? 사실 잘 모르겠다. 예전에 호텔 주방에서 일하던 초반에 큰 연회 스케줄이 있었다. 모든 손님들에게 코스 요리가 제공되었고 당시 총괄쉐프과 수셰프 그리고 나를 그곳에 소개해준 내 친구. 이렇게 셋이서 모든 손님들의 요청에 맞게 메인 요리를 만드는 것을 보았다. 그 합이 부러웠다. 손발을 맞춰가면서 그 많은 주문을 다 해내고 있는 걸 보자니 나도 그 자리에 있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의 일과 자리가 나에게 맞는 걸까? 고민한다. 똑같이 힘들더라도 내가 가려던 방향성을 다시 찾아봐야 할 때가 아닐까? 그것도 못할 이유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