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캉스 전성시대다. 팬데믹으로 인한 거리두기가 상당 부분 해제되고부터 호텔 예약률이 천정부지로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그동안 여행을 가지 못한 것에 대한 보복 소비심리가 고객 유치를 위한 호텔의 마케팅 전략과 제대로 맞아떨어지며 호텔업계가 오랜만에 호황을 누리고 있다.
이런 시대의 흐름에 부응하여(?) 나도 아이들을 데리고 올여름은 가까운 호텔에서 머무는 호캉스를 다녀왔다. 우리 가족의 호캉스 이야기는 '캠핑보다 호캉스. 어차피 내 집이 최고겠지만'을 참고하시길)
호텔방에 도착하면 짐가방을 풀기 전에, 내가 꼭 확인하는 것 중 하나가 있다. 바로 침실 옆 서랍 속 '성경책'을 꺼내어 확인하는 일이다. 조금 생소하게 들린다고? 아마 당신은 서랍을 열어보지 않았거나, 서랍을 열어봤어도 성경책이 있는 것을 무심히 지나쳐 왔을지도 모르겠다.
성경책이 왜 호텔룸에 있지?
혹시 성경책을 호텔룸에서 발견한 적이 있다면 한 번쯤 해봤을 질문. 크리스천인 나조차도 '단순히 서비스 차원이겠지' 하며 지레짐작하며 넘어갔더랬다.
더 놀라운 사실은, 전세계 대부분의 호텔룸(특히 서양권)에서 성경책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혹자는 호텔까지 와서 누가 성경을 읽을까라고 생각하겠지만, 통계에 따르면 투숙객 중 약 4분의 1이 성경을 읽는다고 한다. 이 성경책의 주목할만한 점 하나는 '도움이 되는 성경구절'을 따로 표기해 두어 필요한 부분을 쉽게 찾아 묵상할 수 있다는 사실.
이렇듯 은근히 인기많은 호텔 성경책이 분실되는 경우도 많아 매년 호텔 측에서 새로 구비한다고 한다. 이렇듯 호텔에서 발견되는 성경책은 단순한 우연도 아니고, 호텔의 서비스도 아닌, 한 기독교 단체의 노력의 일환이다.
그럼, 누가 성경책을 호텔 방 안에 두었을까?
국제기드온협회(The Gideons International)를 들어봤는지?
국제기드온협회는 1899년에 설립된 기독교 단체로 지금은 전 세계 200개 국가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 특이할만한 점은 기독교 실업인들과 직업인들로 구성된 평신도 단체라는 것을 꼽을 수 있겠다. 전 세계 호텔룸에 성경책을 놓아두는 사역을 하는 것으로 유명한 국제기드온협회. 100여 년 전 미국 몬타나주의 한 호텔룸에 첫 번째 성경책 기증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109개 언어로 제작된 성경을 전 세계에 24억 권 이상을 배부했다고 한다. 또한 호텔용, 병원. 교도 소용, 대학생용, 군인 경찰용 등의 성경책을 고유의 컬러로 구분하여 배포하는 것도 특이할만한 점이다. 한국 국제기드온협회에 따르면 호텔용 성경의 제작 단가는 권당 약 3,000원이라고.
변화하는 시대, 그리고 호텔룸 속 성경책
미국의 경우, 성경이 놓인 서랍 안에 몰몬 서적이 자리 잡은 광경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불교 경전과 성경이 같은 서랍 안에 위치하기도 한다.
이는 무슬림과 불교 여행객들을 자극하지 않고, 종교에 관심이 없는 젊은 층을 수용하기 위한 호텔 측의 자구책의 일환으로 성경을 호텔방에서 빼는 호텔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다양한 인종과 문화 존중이라는 미명 속에서 '모두의 평화'를 외치는 현대사회의 단면이겠지만, 크리스천으로서 씁쓸한 마음이 든다.
아무튼 호텔룸 안에 있는 성경책. 나에겐 호캉스를 더욱 의미있게 만들어주는 요소임엔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