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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로쿠쌤 Jan 25. 2023

하루 만보 걷기, 요즘엔 어렵지가 않게 된 사연

지금 나의 역할에 충실한 엄마입니다

휴대폰 속 '오늘걸음 수'를 습관처럼 확인해 본다. 그리고 대수롭지 않게 내뱉은 한마디.

오늘도 만보가 넘었네?


그렇다. 요즘 거의 매일을 만보가 넘는 걸음을 걸으며 살아가고 있다. 아무리 인간이 걷는 존재라지만 만보 이상을 걸은 날이면 왠지 모르게 더 피곤하다.


혹시 '걷기 운동'을 시작했냐고? 합리적인 추론이다. 걷는 것만큼 큰 준비 없이 비교적 손쉽게 시작할 수 있는 운동이 있을까 싶다. 걸으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계절 따라 변하는 거리의 풍경도, 사람도 보며 다양한 재미까지 찾을 수 있으니, 매력적인 운동임엔 틀림없다. 걷기 예찬론자인 배우 '하정우'씨는 매일 3 만보정도 걷기를 실천한다고 하며 그의 걷기 철학이 담긴 에세이 <걷는 사람, 하정우>는 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불행히도(?) 내가 하루 만보이상 걷는 이유는 단순히 건강을 위한 목적은 아니다.



내가 만보 씩 걷게 된 이유


한때는 이힐을 신고 서울 거리를 활보하던 시절이 있었다. 요즘은 굽이 높은 신발보다는  단화가 유행이기도 하지만, 아이들을 낳고부터는 안전상의 이유와 편안함을 추구하면서, 신발장에 있던 굽이 높을 구두를 모두 정리해 버렸다. 유행이 지난 힐은  왜 그리 촌스럽게만 느껴지는지. 하루 보 이상 걷는 요즘에는 발편한 운동화 혹은 단화는 필수 중의 필수다.


친절하게 아파트 안까지 아이를 데려다주던 유치원버스와 이별하고 큰아이 초등학생이 된 후, 엄마의 스케줄은 더욱 타이트해지고 바빠졌다.


휴대폰 알람이라곤 크게 사용한 적 없던 나도 아이의 픽업시간을 체크하느라 애를 먹었다. 코로나로 인해 하교시간은 자주 조절되고, 방과 후 수업이나 학원 수업이 중간에 변동도 되니 스케줄은 수시로  바뀌어서 기억력이 좋다고 자부했던 나도 기계에 의존하는 편을 택했다.


같은 동네에서 굳이 운전을 해서 아이를 데려다주고 싶진 않아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걷는 나.(비가 아주 많이 오면 운전을 하긴 한다) 아이 픽업 시간대가 비슷한 아이들의 엄마 혹은 할머니들은 언제부턴가 길에서 서로를 알아보며 눈인사를 나누기도 한다 재밌는 사실.



사커맘도, 헬리콥터맘도 아니지만


'신종족의 시대'라고들 한다. 엄마들에도 예외는 없다. 그중, 사커맘(soccer mom)은 미국에서 시작된 말로, 아이의 축구 연습을 지켜볼 정도로 열성적인 교육관을 갖고 있는 엄마다. 헬리콥터맘은 사커맘의 업데이트 버전 격인데, 자녀의 인생까지 지나치게 간섭하는 게 특징이다. 자녀가 성인이 돼서도 결혼이나 직장 등 마치 헬리콥터처럼 자녀 주변에 나타나 도와주는 엄마라고 한다. 이 밖에도 타이거맘, 돼지맘, 캥거루맘 등 수많은 '엄마'들의 종류가 있다.


아이들의 학원가방을 챙겨서 다음 스케줄로 데려다주고 또 둘째를 챙기러 가는 나날이 계속되던 때, 어느 순간 나도 사커맘이 되어가고 있나 생각이 들었다. 아직 거기엔 명함도 못 내밀 수준이면서 말이다.


이렇듯 매일 만 보씩 걸으며 아이들을 케어하다 보니 그 좋아하던 필라테스도 쉬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걷기가 딱히 큰 운동효과가 있다고 느껴지진 않았지만 나를 위한 다른 일에 쓸 에너지가 그리 많게 되지 않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나의 걷기는 운동이 아니라 노동이라고나 할까.




그래도 걷는 것이 좋아졌습니다.


힘들지? 그래도 이렇게 아이 데려다주고 챙기는 것도 한때야



선배 엄마가 나를 보며 말했다. 그렇다. 내가 잠시 착각했나 보다. 하루 만보 이상 걷는 이 나날이 앞으로 쭉 계속될 것처럼 믿었나 보다. 내가 하이힐을 신고 다니던 날들이 길지 않았던 것처럼 언젠가는 아이들이 내 손길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을 날도 오는 거니까. 더 가까이는 이렇게 내가 아이의 학교와 학원을 데려다줄 기회가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아이의 방과 후 수업이 끝나면,  아이와 함께 동네를 걸으며 겨울날을 충분히 느끼고, 이 시간과 시기를 최대한 즐겨보리라 생각해 본다.


금 나의 역할에 충실한 엄마가 되리라 다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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