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이야. 내 결혼식 전에 보고 얼굴을 못 봤으니 10년이 넘었나 보다.
우리 가족 곧 오키나와로 이사 가.
새벽에 날아든 카카오톡 메시지 한통. 호주 유학시절 만난 친구의 연락이다. 어린 시절, 한국에서 호주로 이민 간 후 미국인 남편을 만나 미국에서 사는 그야말로 인터내셔널(?)한 친구. 어느덧 네 아이의 엄마가 되어 지내는 프로필 사진이 내 눈엔 어색하긴 하지만, 파릇파릇 학생시절 만난 생기 넘치는 나와 그녀의 모습이 소환되는 듯하다. 오랜 친구 덕분에 그날은 하루종일 풋풋한 설렘이 있었다.
이 친구의 이야기를 듣던 지인 Q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한다. 내가 또 해외로 보내버린(?) 친구가 있었냐며. 사람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이민을 가거나 외국으로 나가지만, 내 친구들을 보면 참 다양한 이유로 인해 갑자기 해외 생활을 하게 되는 경우를 보게 된다. 유독 난 그런 친구들이 많았다. TMI지만 난 친구가 그렇게 많은 편이 아님에도 말이다
'글로벌'이란 말만 들으면 가슴이 뛰던 소녀
어릴 때부터 꿈꿨다. 언젠가는 이 좁은 한국땅을 떠나 전 세계를 누비며 멋지게 살아보리라고. 그래서 더더욱 외국어공부도 열심히 하고, 나름 국제적인 커리어를 쌓게 위해 노력해 온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지금의 나보다 훨씬 열정적이고 체력이 아주 좋고, 한마디로 세상이 만만해 보이던 멋 모를 때였으니까.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난 여전히 한국에서 살고 있고, 그런 나를 응원해 주던 친구들은 해외 각 대륙에서 인생을 꾸려나가고 있다.
도대체 그 친구들이 어떻길래?
이쯤 되면 궁금할 것이다. 내 친구들이 뭐가 그리 특별해서 이런 사연이 있는지. 물론 나의 모든 친구가 다 해외에 있는 것은 아니고, 일부 친한 친구들의 경우다. 참고로 나는 성격상 친구를 많이 사귀지는 않지만 한번 관계를 맺으면 깊게 우정을 나누는 편이다. 그래서 그 친구들이 하나씩 둘씩 내 곁을 멀리 떠나갈 때, 외로움이 크게 느껴지기도 했다.
A는 초등학교 동창이다. 그리 튀지 않은 얌전한 성격에 결정적으로 나랑 그리 친하진 않았고, 초등학교 졸업 후 미국으로 이민을 갔단 소식만 전해 들었다. 그 후 인터넷을 통해 A와 다시 연락이 되었다. 그 후 친해진 우리는 서로 한 달씩 각각 필라델피아와 서울의 각자의 집에서 머물며 여행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니 절대 쉽지 않은 일이다. 약대를 나온 그녀는 미군에서 대위로 일하며 멋진 커리어를 쌓는 중이다.
B와 C는 고등학교 동창이다. 해외생활과는 전혀 거리가 멀 것 같은 친구들이었지만 어느새 직장을 그만두고 미국으로 유학을 가더니 돌아올 생각을 하질 않는다. 페이스북에서 가끔 보는 근황에 나 혼자 미소 짓는 정도라고 해두자.
D는 회사 입사동기다. 많은 동기들이 있지만 진정으로 마음을 나누며 응원을 하던 사이였는데 어느 날 훌쩍 미국으로 시집을 가버렸다. 미국에 직장이 있는 한국남자를 만난 것이라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기약도 없단다. 인생의 변화를 늘 꿈꾸던 그녀였지만 그렇게 급작스런 변화를 순식간에 겪을지는 나조차 예상하지 못했다. 해마다 8월 그녀의 생일이 되면 손 편지를 써야지 하는 마음은 굳게 먹지만 실행은 그렇게 자주 하지 못했다.
E는 글 서두 에피소드의 주인공이다. 호주에서 만난 한인친구로, 미국인과 결혼해서 미국에 거주하며 남편 직장을 따라 조만간 오키나와로 이주할 예정이다. 기필코 올해는 얼굴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밖에도 몇몇이 더 생각난다. 본인들의 꿈을 찾아서 혹은 결혼을 해서 해외에 정착하는 것이 한때는 부럽기도 하고 동경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보다 더 중요하며 감사한 일은 이들 모두 각자의 삶을 잘 꾸려나가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한때 내 옆에서 같은 꿈을 꾸며 살아가던 시절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인생은 변화무쌍하게 흘러가기도 한다.
이 글을 쓴 목적이 '나 해외로 간 친구 되게 많아'는 아니다. 단지 지금에 와서 인생을 돌아보건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예상치 못했던 이유로 인해 사람들의 인생이 굉장히 다이내믹하게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당장 내 주변의 친구들을 보면 비슷비슷한 삶을 사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고유의 특징이 있다. 그 특징들이 모여서 전혀 다른 길을 만들어 갔겠지란 생각도 해본다. 그래서 더 삶이 의미 있고 소중한 것이겠지.
오늘은 미국에 있는 D에게 메시지로 안부인사를 해봐야겠다. 한국과 미국은 시차가 있으니 답변이 바로 오긴 힘들겠지만 분명 내 문자를 보고 미소 지을 그 친구를 생각하니 마음이 따스해진다.
행복하자 내 친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