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헬로쿠쌤 Aug 29. 2023

당신은 꽤 괜찮은 크리스천입니까?

어쩌면 탕자의 형인 당신에게

나 정도면 그래도 꽤 괜찮은 크리스천이지 않아?

어쩌면 나의 내면 깊숙이 깔린 가장 근본적인 마인드가 아니었을까?


빠짐없이 예배 참석하고 양무리 목자로 헌신하며, 틈틈이 성경학교 훈련도 받고 각종 섬김의 자리 곳곳에서 봉사하고 있는 나 자신의 모습이 어느 순간 꽤 괜찮게 보였다. 주변 칭찬이 내 귀에 종종 들려올수록 마음이 높아지는 것은 자연스러웠고 '난 누구보다 괜찮은 크리스천'이란 생각이 자리 잡게 되었다.


인생을 돌아보면 나는 소위 말하는 '엄친딸'이었다. 어릴 때부터 성실하게 신앙생활을 하며 부모님의 기대만큼 잘 따라준 학창 시절을 보냈고, 좋은 기업에 들어가 일을 했으며 번듯한 믿음의 가정 꾸렸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자 인도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입으로는 고백했지만 좀 더 속을 들여다보면 난 성취욕과 세상 정욕을 위해, 다시 말해 하나님보다는 나의 영광을 위해 살아온 사람임을 최근에야 깊이 깨달았다.


진심으로 나의 죄를 회개하는 예배자로 살아가려 애쓸 무렵, 그러니까 최근에 이 책을 만났다.



[탕부 하나님/The Prodigal God] by Timothy Keller


저자는 얼마 전 타계한 팀 켈러 목사님으로, '21세기의 C.S. 루이스'라는 평을 받는 탁월한 설교가이시다. 목사님의 설교 특징은 매우 따뜻하고 심플하면서도 극히 예리하다는 것인데 이 책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 책은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너무나 유명한 비유이기에 교회에 다니지 않더라도 한 번쯤은 들어본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내용을 간단히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어떤 아버지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둘째가 자기 몫의 유산을 요구한다. 그는 유산을 받자마자 먼 나라로 가서 육욕과 경박한 쾌락에 모두 탕진한다. 그 후에 뉘우치며 집으로 돌아오니 놀랍게도 아버지는 두 팔을 벌려 그를 맞이한다. 하지만 맏아들은 그런 환대에 심한 소외감과 분노를 느낀다. 이야기는 동생을 함께 반기고 용서하자고 아버지가 맏아들을 타이르는 장면으로 끝난다.


그동안 아주 익숙하게도 나의 관심은 '탕자'였던 둘째 아들에게만 맞춰져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의 메시지에서 '탕자'를 용서하는 하나님 아버지와 회개하는 탕자 즉 우리의 모습에 대해 강조해 왔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탕자의 형 그러니까, 아버지의 맏아들에 대해 조명한다. 무척 새로운 관점이다.





맏아들은 뭐가 그리 억울했나?


방탕하며 세상의 정욕을 좇다가 결국 망하여 돌아온 둘째 아들과는 달리, 큰아들은 아버지 곁에서 성실히 자기 몫을 열심히 살아냈다. 그리고는 모든 것을 잃고 돌아온 둘째 아들을 위해 성대한 잔치를 벌이며 함께하자는 아버지의 모습에 심한 분노와 소외감을 느끼게 된다. 그 기저에 딸린 감정은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 받는 처우에 대한 부당함과 억울함이 있었으리라. 큰아들의 심정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다. 늘 꾸준히 올바르게 살아가려 애쓰는 착한 아들이, 부모의 뜻에 어긋나고 방탕한 아들보다 훨씬 낫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맏아들은 가불한(?) 전재산을 탕진하고 망할 대로 망해버린 둘째를 다시 아들로 맞아줄 뿐 아니라 성대한 잔치까지 열어주는 아버지가, 못내 원망스럽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큰아들의 그 성실함과 착함에 있다! 한 번도 접근해보지 못한 발상이다. 그저 성실하고 착하게 매일을 살아가는 그 자세가 바로 문제였다니 말이다. 여기서 진짜 문제는 그 성실한 태도의 기저에 깔린 동기다. 매일을 열심히 착하게 살아가는 것 자체는 전혀 문제가 없다. 오히려 권장해야 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나의 성실함과 순종이 마치 인과응보처럼 변질되어, 하나님께서 그 대가로 내가 원하는 것을 준다는 발상은 다분히 자기중심적이다. 쉽게 말해 하나님마저 나의 유익을 위해 조종할 수 있는, 기복신앙과도 같은 도구처럼 될 뿐이다.


책에 따르면, 형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은 늘 마땅히 받아야 할 몫보다 덜 받았다고 느끼며 많은 경우 자신의 행위로 삶을 통제하려고 느끼며 하나님의 사랑을 진정으로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결국 기도에 열심을 낼 수는 있으나 하나님과의 대화에는 어떤 경이로움 혹은 친밀함과 즐거움이 없다.


이렇듯 누가복음 15장의 맏아들은 아버지와 늘 함께였지만, 진정으로 함께인 적이 없었다. 아이러니다. 세상을 좇아 자아를 찾아 아버지를 떠난 둘째 아들 탕자, 그리고 아버지 옆에 묵묵히 있었지만 실상은 자신의 이익을 얻으려 했던 맏아들 모두 슬프게도 아버지를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았다!

 

두 형제의 마음은 똑같았다. 둘 다 아버지의 권위를 못마땅해하며 거기서 벗어나려 했다... 방법상 하나는 아주 못되게 굴었고 또 하나는 지극히 착했을 뿐이다. 둘 다 아버지의 마음을 멀리 떠나 잃어버린 아들이었다... 두 아들 중 누구도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았다. 둘 다 아버지를 이용해 이기적인 목표를 이루려 했을 뿐이지 아버지를 사랑해서 즐거워하고 아버지를 위해 섬긴 게 아니다.

- 본문 중 -



당신의 의의 뿌리는 무엇인가?


사탄이 타락한 이유도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교만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 시대는 모두 pride를 칭송하며 미덕이라 말하지만, 성경은 humility, 즉 겸손하라고 시종일관 전한다. 그러나 이 교만의 행태는 무척이나 교묘해서 의로운 행위의 뿌리까지 점검해야만 한다. 이 책을 통해 결국 선한 행실의 동기도 교만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발견한다. 스스로를 의롭다 여기는 태도 그리고 그를 통해 다른 사람들을 통제하여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하는 정욕. 이 모습이 오늘날 교회 안에 있는 나를 포함한 맏아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라고 본다.


의의 뿌리까지 회개하라
형을 구원의 잔치에 들어가지 못하게 막는 것은 자신의 나쁜 행실에 대한 회개가 아니라 선한 행실에 대한 교만이다. 형의 문제는 스스로 의롭게 여기는 태도다. 그는 자신의 도덕적 이력을 내세워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빚을 지운다. 그분과 그들을 통제하여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하게 만든다  

- 본문 중 -




어쩌면 탕자의 형인, 나와 같은 당신에게


그리 긴 분량이 아닌 이 책을 읽으면서 몇 날 며칠을 묵상하고 회개했다. 성실하고 바른 태도 이면에 깔린 나의 교만과 선하지 않은 의의 뿌리가 속속들이 까발려진 것만 같아서 민망하고 부끄럽기까지 했다.

'나 정도면 됐지. 나는 그래도 저 사람보다 낫지' 하는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을 속으로 정죄하고 판단하는 내 모습이 추해보이기까지 했다. 예수님께서 탕자의 비유를 드신 대상인, 바리새인과 같은 나의 모습에 화들짝 놀랐다고 해두자.


교회에 오랫동안 다닌 크리스천일수록 책 속 맏아들과 같은 부류가 많을 것이라 짐작한다. 영적 각성이 없는 신앙생활은 성장을 무디게 만들고 깊은 회개와 충만함이 없는 신앙생활은 빈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번 독서를 통해 다시 한번 점검해 본다.


어쩌면 많은 젊은 세대들이 공감할만한 크리스천 에세이를 쓰겠다는 당찬 나의 포부도 결국 나의 의를 위한 게 아니었을까 철저하게 점검하며 기도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감사한 것은 더 늦기 전에 그것을 알아차린 것, 그리고 나의 주인이 누구인지 재확인한 사실일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고작, 풀린 운동화끈 이야기지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