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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로쿠쌤 May 21. 2023

고작, 풀린 운동화끈 이야기지만

실수해도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엄마

교회 안에서 신발끈이 풀어진 운동화를 신은 채, 한 소녀가 걸어 다닌다. 그 모습을 본 집사님 한분이 그 아이를 보고 말씀하신다.

넘어질라. 신발끈 묶어줄게. 이리 와 앉으렴.

그제야 운동화 끈이 풀어진 것을 눈치챈 소녀는 '제가 할 수 있어요.'라고 하며 야무지게 운동화 끈 매듭을 묶어낸다. 주변에 있던 어른들이 아이를 보며 야무지다고 잘했다고 칭찬하고 축복하는 분위기다. 그 무리 속에 있던 나도 어느덧 따뜻한 시선으로 그 광경을 보고 있었다. 단순하게 보면, 아이가 풀어진 신발끈을 묶는 아주 사소한 일인데 이렇게까지 따뜻할 일인가 싶은 마음이 든다. 동시에 어린 시절 내 모습이 불현듯 떠올랐다.


어릴 적 내가 무언가 실수를 할 때면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아마 아래 두 가지가 아닐까?

이런 칠칠치 못하게.
네가 그럴 줄 알았다.




어른이 된 후, 어릴 적을 돌아보니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지금처럼 양육에 대한 정보도 충분치 않았고, 아이들이 실수할 때 어떻게 위로하고 가르쳐야 하는지에 대해 부모님들이 진지한 고민을 할 만한 여유가 부족한 듯싶다. 일반화하긴 어렵지만 상대적으로 말이다. 어른이 되어서 그 시절을 돌아보니, 내게 가장 필요했던 말은 '잘했어. 최고야'라는 칭찬보다도, '괜찮아'라는 말 한마디였던 것 같다. 특히, 얌전한 모범생 스타일이었던 나는 실수하는 것에 대해 유독 민감했다. 소위 착한 아이로 늘 인정받아왔기에 남들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기도 했다. 항상 최고가 되어야 하고 실수가 없어야 한다는 완벽주의 혹은 강박도 커가는 과정에서 더욱 확고해졌던 것 같다.




실수와 잘못의 차이


앞서 신발끈 에피소드를 이야기했지만, 나는 유독 그런 류의 실수를 하면 주변 눈치를 많이 살폈다. 물을 쏟거나 실수로 물건을 떨어뜨리면 자책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간과한 중요한 사실이 있으니, '실수와 잘못의 차이'를 제대로 구분하지 않고 살아왔던 것이다. 이러한 나의 성향은 부모가 되고 아이를 기르면서 더욱 드러나게 되었다. 나 자신에게 철저하게 엄격했던 탓에 내 아이(정확히 말해 내 소유도 아닌 선물 같은 아이들)에게도 같은 잣대를 대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그러나 그 실수 때문에 그 사람의 인격과 행동전반을 탓할 수는 없다고 본다. 게다가 아이들은 아직 미숙한 존재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점차 많아지긴 해도 어른에 비해 불완전하며 종종 어리석은 선택을 하기도 한다. 물론 잘못을 했을 때의 경우는 이야기가 다르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고 행동하는 연습을 어린 시절부터 끊임없이 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끔 어른들 사이에서도, 서로 간에 굳이 덮어줄 수 있는 실수에 대해서 '팩트'라는 이름 하에 건드리는 경우가 있더라. 잘잘못을 낱낱이 따져봐야 하는 소위 '팩트폭격'이 필요한 순간들도 있지만, 그 사람을 위로하고 살리는 말을 해야 하는 때도 분명히 있다. 특히 그것이 의도치 않은 실수일 경우라면 더더욱.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고전 10:23)
 
"I have the right to do anything, " you say—but not everything is beneficial. "I have the right to do anything"—but not everything is constructive.
(1 Corinthians 10:23, NIV)


이 성경구절은  다시 말해,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고 가능하지만, 때로는 유익을 위해 그리고 덕을 세우기 위해 절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왜냐하면 그 일이 다른 사람에게 꼭 유익을 주거나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다룬 '육아의 관점'으로 다시 이 구절을 보자. 사람을 진정으로 위로하고 살리는 것은 정확한 판단과 책망보다는, 그 사람을 진심으로 세워주려는 마음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내용을 곱씹으며 전적으로 동의했다. 그러나 이를 인지하면서도 현실 육아 상황에서 아이에게 그런 아량이 베풀어질 때가 그리 많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잘못을 지적하고 책망하고, 어느 순간에는 나의 화를 이기지 못해 아이를 끝까지 몰아붙이는 내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잘못을 지적하고 비판하기만 하는 것이 훈육의 이유가 아닌데, 때로는 진심과 다른 행동으로 엇나가는 순간도 있다.


실수해도 괜찮아.

참 간단하고 단순한 말인데 사람을 살리는 힘이 느껴진다. 결코 거창한 말도 아닌데 왜 그리 나와는 인연이 없던 것이었을까.


지금부터라도 실천해 보련다. 괜찮아 라며 나를 다독일 때, 그리고 아이들의 실수를 대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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