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빠져드는 제주의 매력
'청량하다'라는 단어와 가장 잘 어울리는 때가 있다면 바로 지금이 아닐까?
그렇다. 지금은 푸른 하늘과 신록이 어우러진,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5월이다.
그리고 그곳이 제주도라면,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라면 더욱 설렐 수밖에.
제주도만큼 인기 있는 여행지가 또 있을까? 국내에 기가 막히게 멋진 여행지가 꽤 많이 있지만, 제주도는 마치 대부분의 한국인들에게 All time Favirote (올타임 페이보릿) 같은 존재다. 이런 제주도의 매력은 단지 국내에만 국한되지 않아서 해마다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을 찾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이들과 온 가족이 함께 오랜만에 제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척이나 기대가 되었다. 여행을 떠나기 며칠 전부터 수시로 일기예보를 체크해 가며 짐을 꾸렸다. 워낙 변화무쌍하기로 소문난 제주의 날씨였기에, 직접 가봐야 제대로 알 수 있다는 제주여행카페 속 현지인의 조언을 마음에 담으면서 말이다. 듣기로는 제주 여행은 5월이 가장 좋다는 말도 있던데 언제 가도 매력이 있는 곳이 제주 아니었던가. (11월 제주 여행의 매력이 담긴 글은 '11월의 제주에서만 만날 수 있는 몇 가지'를 참고하시길)
단언컨대, 아이가 있고 없고에 따라 여행의 경험은 천차만별로 달라질 수 있다. 어른의 여행은 단순해도 복잡해도 좀 불편해도 변수가 많아도 크게 구애받지 않는다. 혼자 하는 여행이든, 커플이 오는 여행이든 취향과 테마에 따라 얼마든지 변화를 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이가 없을 때는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지 알기 어렵다. 그렇다고 아이를 동반한 여행이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니 오해 마시라.
시간이 지날수록 감사한 일은 스스로 식사를 하고, 혼자서 화장실도 가고, 의사표현도 제대로 하는 초등아이들과의 여행이 점점 더 여행다워진다는 것이다. 5년 전 제주 여행 때는 아이들 짐가방 사이즈부터 달랐던 것을 기억하면 참 많이 수월해진 것을 느낀다. 게다가 미리 여행지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거나 책을 읽고 와서인지 아이들이 제주도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깊이가 사뭇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한 마디로 아이들과 여행하는 재미가 생겼다. 아이들도 책이나 영상에서만 보던 풍경을 직접 보고 체험하니 더욱 즐거워했음은 물론이다.
해외는 아니지만 비행기를 타고 가며, 야자나무와 현무암 같은 특별한 생태를 만날 수 있고, 렌터카를 이용해 곳곳을 누비는 일. 내가 생각하는 제주여행의 장점이다. 국내이지만 이국적 매력이 가득한, 그럼에도 내 나라 대한민국에 있는 보석 같은 여행지. 이제는 비행편도 많아져서 시간대만 잘 맞으면 왕복 몇 만 원에도 다녀갈 수 있는 행운을 누릴 수도 있다.
최근에야 정확히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바로 제주는 서울 면적의 약 3배라는 것이다. 그러니 주요 관광지간의 이동거리가 그렇게 길게 느껴진 건가 싶다. 아직 고속도로나 고속철도가 없는 곳이라 체감상 그럴 수도 있겠다. 그래서 제주도를 구획별로 똑똑하게 이동하며 관광하는 것이 필수다. 이번 여행우 시내 쪽에 숙소를 잡았던 터라 서귀포나 중문일대는 아쉽지만 다음 기회로 넘기고 차로 40분 이내로 갈 수 있는 곳을 최대로 해서 동선을 짰다.
참, 앞서 언급한 예측하기 어려운 제주날씨를 십분 고려하여 플랜비를 세워두는 것도 필수적이다. 특히 아이들이 함께한 여행이라면 가까운 동선에 있는 박물관이나 체험관 정보를 미리 체크해 두는 것을 추천한다. 제주도에는 다양한 테마 박물관이 있어서 취향에 맞게 골라서 갈 수 있을 정도다. 입장료도 천차만별이니 미리 확인해 놓는 것이 좋다. 이번 여행에서는 제주시에서 운영하는 '제주교육박물관'과 '제주수학체험관' 두 곳을 가봤는데 제주시에서 운영하는 곳들이라 전부 무료였다. 그럼에도 각종 전시와 체험활동이 훌륭해서 아이들의 만족도가 굉장히 높았던 장소들이다.
이번 여행만큼 제주의 날씨를 온몸으로 느껴본 일이 있었을까?
제주도에 그다지 많이 와본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운이 좋게도 바람이나 비를 크게 마주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번 3박 4일 동안에 날씨에 따라 각양각색의 제주를 만나게 되었다.
첫날, 줄곧 차분하게 내리는 비와 심하게 흔들리는 비행기는 양호한 수준이었나 보다. 뒤늦게 뉴스를 보니 결항되거나 지연된 비행기도 꽤 많았다는 후기가 올라왔다. 남쪽이라 더 온화한 기온일 거라 예상했지만 종일 내리는 비로 쌀쌀한 기운마저 감돌았다. 그러나 통창 있는 카페에서 바라보는 비 오는 바다도 마냥 좋았다.
이튿날, 전날 내린 비 덕분인지, 아님 청정 제주에 있어서인지 시야가 확 트인다. 상쾌하고도 눈부신 햇살에 바다는 애매랄드빛으로 빛나고 아이들은 바닷가에서 한참을 놀았다. 바람도 불지 않고 햇살도 따뜻해서 바닷물이 시원하게까지 느껴졌다. 서울 촌놈인 우리 아이들은 속이 훤히 다 보이는 바닷물속을 살피고 거닐며 연신 해안가로 미역줄기를 찾아왔다. 이런 날은 온종일 수평선만 바라보며 모래사장을 거닐다 돌아가도 전혀 후회가 될 것 같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그동안 우리의 제주도 일정은 늘 빠듯했다. 서울의 3배인 이 큰 섬을 시간단위로 쪼개고 쪼개어 관광지를 찍고 다니려면 별 수 없었겠지만 말이다. 이제 좀 느긋해지자. 아이들에게 제주도의 매력, 특히 자연과 바다의 매력을 만끽할 수 있을 기회를 충분히 주자. 여행은 도장 깨기가 아니므로.
다음날은 새벽부터 바람이 심상치 않았다. 새벽 내내 창문이 흔들리는 소리에 잠을 설치기도 했다. 다행히 비는 내리지 않았지만 해안가에 제대로 서있기 힘든 날씨다. 섬에 왔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혹시 몰라 챙겨 온 따뜻한 외투를 몸에 두른 후 급하게 스케줄을 조정해서 실내 위주로 돌아다녀봤다. 맛집도 여러 군데 검색했지만 그날그날 동선에 따라 유동성 있게 움직였다. 특히 아이들 입맛에 맞는 한식 위주로 다녔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내 취향 내 식성만 고집했던 이기적인 옛 자아는 살포시 내려놓은 지 오래다. 그럼에도 행복할 수 있는 이유는 가족이 주는 선물이라 생각해 본다.
마지막 날의 날씨는 선물이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눈부신 햇살과 온화한 바람결은 마치 다른 곳에 온 것이 아닐까 착각이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변화무쌍한 이곳 날씨 덕에 옷차림이 애매해서 짐가방은 커졌지만 그럼에도 사계절을 다 느끼고 가는 기분이다. 햇볕 좋은 날 바닷가에서 발도 담그고, 비 오는 카페에서 바다멍도 해보고, 바람 부는 해변에서 제주도를 느끼기도 했으며, 비현실적인 애매랄드빛 바다색에 반하기도 했다.
만일 혼자 하는 어른의 여행이라면 나는 맛집을 찾아가는 미식로드 혹은 비자림이나 곶자왈 같은 곳을 찾아가는 생태여행을 테마로 다니며 날씨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싱글의 낭만을 즐겼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은 낭만과는 거리가 멀다. 더하여 부모로서 분명 신경 쓰이고 불편한 점도 있고 개인적인 욕심이나 취향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위안이 되는 것은 아이에게 산교육을 해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것, 가족의 추억이 한 페이지 더 채워져 간다는 것, 그리고 아이가 커가며 소위 '여행 메이트'로 함께한다는 것이 아닐지.
다음번 우리 가족의 제주는 어떤 모습일까.
그리고 나는 무엇을 내려놓고 또 무엇을 더 많이 얻을 수 있을까 또다시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