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겨울, 제주의 매력을 만나다
11월 말에 제주 여행?
갑자기 이야기 된 가족여행 계획에 대한 나의 첫 반응이다. 우리 가족뿐 아니라 부모님과 동생네 가족 모두가 오랜만에 함께하는 대가족 여행에, 고만고만한 아이들만 4명이지 않은가. 그 많은 인원이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제주의 겨울을 보러 간다는 것이 처음엔 썩 내키지만은 않았다. 아무리 따뜻한 제주도라고 하나 초겨울 길목의 11월, 바람 많은 그곳 날씨는 상상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 여름휴가철이나 따뜻한 봄에 유채꽃을 보러 제주에 갔었던 기억이다.
제주도라는 섬은 지역마다 날씨 편차가 크고 바람이 많이 부는 곳도 많아서 막상 일기예보가 맞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비단 제주여행뿐만 아니라 모든 여행에서 '날씨'는 여행의 동선과 분위기, 그리고 추억을 결정하는 가장 큰 변수중 하나일 것이다. 그래서 이번 여행을 계획하며 날씨를 염두에 두고 플랜 B를 세웠다. 날씨가 궂으면 제주의 특색 있는 박물관이나 전시관을 싹 다 돌아볼 각오까지 해가면서 말이다.
제주에 도착하니, 서울 공기와는 사뭇 다른 온화한 바람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만일을 대비해 꽁꽁 싸매고 온 두꺼운 패딩이 거추장스러울 정도의 바람끝이었다. 여행 비수기라는 11월이어서 그런지 한산한 제주공항도 처음 보는 풍경이다.
이번 여행 전, 개인적으로 무척이나 궁금해하며 묻고 싶었던 질문이다. 도대체 겨울의 제주에서 뭘 보고 와야 하나. 그러나 경험자로서, 겨울의 제주에는 오히려 다양한 선택지가 존재하고 있다는 반전이 있음을 결론적으로 말해주고 싶다. 무더운 여름에는 물놀이 위주의 활동이 주가 되곤 한다. 겨울에도 온수탕이나 호텔 수영장 등을 이용할 수는 있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과감히 물놀이를 제하고 스케줄을 짜보았다. 단, 아이들과 함께하는 여행이다 보니 제주 곳곳을 돌아다니는 무리한 동선은 최대한 지양했다.
그러다 보니 예전엔 우선순위에서 밀려서 미쳐 가보지 못했던 각종 재미난 체험들이 눈에 들어왔다. 수십 마리의 말들과 베우들이 만들어가는 스펙터클한 기마공연이 그랬고 간단하지만 짜릿한 스피드를 경험할 수 있는 카트라이딩도 그랬다. 참, 지금 이 시기에 제철을 맞은 감귤 따기 체험은 남녀노소 만족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여행 중에 비가 오던 오전에는 미리 봐둔 항공우주박물관에서 재미난 체험을 하기도 했다.
이전엔 발견하지 못했던 제주에서만 하고 볼 수 있는 다양한 볼거리 즐길거리가 이렇게 많았었나 새삼 느낀 시간이다. 이번 여행 시에는 애월과 한림 쪽에만 있었는데도 지루하거나 답답하단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곳곳의 매력이 달랐기에 다음 제주 여행이 기대될 정도다.
그래도 여전히 내겐 '제주'하면 바다다. 국내 여타 지역에서 보기 힘든 독보적인 자연환경 속 푸른 바다. 그리고 제주 곳곳 비슷한 듯 다른 해안 풍경이 올 때마다 새롭다. 심지어 그 바다가 그리워 당일치기로 제주여행을 한 기억도 있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제주도 '한 달 살기' 말고, '당일치기''를 참조하시길)
쓸쓸할 것만 같았던 차가운 바람 속 제주 겨울바다도 청량한 매력이 있었다. 물속에 들어가 보진 못했지만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해안가를 산책하는 것만으로 위로가 되는 느낌이다.
개인적으로 감사한 것은 제주도 해안가에 멋진 뷰를 자랑하는 근사한 감성카페들이 굉장히 많이 들어서 있다는 사실이다. 바람을 느끼며 거니는 해변가도 좋았지만 카페 통창 너머로 품은 그림 같은 바다에 한동안 말없이 따뜻한 한라봉차를 마시기도 했다. 천상(?) 도시여자의 체력관리법 중 하나라고 해두자. 물론 아이들은 추운지 모르고 해안가에서 놀았다.
망설이지 말라고 대답하고 싶다. 물론 여름에 비해 이동이 불편하고 짐이 많은 것은 사실이나 제주의 또 다른 매력을 발견할 절호의 기회다. 단, 그동안 천편일률적으로 다녔던 유명관광지 말고, 차분한 마음으로 몇 곳의 지역 혹은 체험만 탐색한다면 색다른 추억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바로 이번 나의 가족여행처럼.
나의 다음 여행 지역은 제주 월정리라고 마음속으로 정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