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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크리스천 애국자가 아니었습니다

크리스천이 나라를 사랑하는 방법

by 헬로쿠쌤

자신은 애국자가 아니라던 어느 청년의 고백을 읽고


지난 1월, 서부지법 사태 때 수감되었던 어느 청년의 수기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좌. 우의 진영 논리를 떠나서 생각해 볼 지점이 많기에 수기의 일부를 이 글에도 공유하고자 한다.

<저는 애국자가 아닙니다>

언제부턴가 이 땅의 '민주'는 '공화'를 위협해 왔습니다...
다수의 의사결정은 우리 사회를 이득 보는 집단과 손해 보는 집단으로 갈라놓았고, 그렇게 모두를 이롭게 한다는 '공화(共和)'이념이 민주적 권력에 의해 훼손됐습니다 저는 이 반쪽짜리 민주공화국을 헬조선이라 부르며 멸시해 왔습니다. 저는 이 나라가 싫습니다. 그러나 저는 틀렸습니다...

이 나라의 구성원은 눈부신 산업화와 자랑스러운 민주화 세대, 그리고 반도 역사상 최고 수준 교육을 받은 청년 세대입니다. 자신 있게 말하건대, 오늘날 대한민국의 폐단은 애국민들의 민주적 의사결정에서 비롯되지 않았습니다...

...가짜뉴스는 신념을 만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추운 겨울 시민들이 거리로 나온 이유는, 본인이 옳다고 믿는 신념을 지키고 증명하기 위함입니다...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이 땅의 민주주의를 지키겠다는 거룩한 신념은 뒷전이었습니다.

저는 애국자가 아닙니다. 저는 그냥 기분이 나빴습니다. 가짜인 그들은 민주적 권력인 양 행세하며 사회 구성원들을 기만했습니다. 우리 개개인을 사리 분별하지 못하고, 빼앗긴 주권을 스스로 복권하지 못하는 패배자로 규정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국가 찬탈 시도입니다. 반국가세력은 민주주의 이전에, 제 개인의 이성과 자유의지를 모독했습니다. 저는 그 점이 참을 수 없이 기분 나빴습니다. 저는 제가 옳음을 주장하고자, 부당한 권력에 저항하고자, 빼 앗긴 주권을 되찾아 다시 시민으로 거듭나고자 담벼락을 침범했습니다. 의심할 여지없는 반사회적 행동이자, 위법행위입니다.

혼란한 시국 대통령을 체포한 공권력의 정통성을 의심하는 제게, 어쩌면 위법행위는 예정된 수순이었을지 모릅니다. 저는 이러한 제 의심을, 사상의 자유가 허락하는 선에서 추구하고자 했습니다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주어질 처벌에 순응할 것입니다.

벌금형 이상의 전과가 남는 다면, 저는 순간의 치기로 많은 것을 잃겠습니다. 하지만 얻은 것도 있습니다. 저는 시민으로 거듭났습니다. 생각했고, 행동했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보다 행동을 숙고하고, 철저히 준법할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 모두 시민이 되는 순간이, 대통령이 바라는 '제2의 건국' 이겠습니다. 그때가 되면 저는 애국자가 될 것입니다.

2025.01


이 글을 처음 접했을 때, 마치 윤동주 시인의 '서시'를 읽을 때처럼 괜스레 숙연해졌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주도해 나갈 2030 청년들이 나라를 위해, 자신이 믿고 지키고자 하는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거리로 나온 것만으로도 굉장한 변화이기 때문이며 더 나아가 자유민주주의와 법치를 인정하고 신념을 지키겠다는 숭고한 의지를 표명한 것이 충격적일 만큼 놀라웠다.


물론 서부지법 사태의 일은 여전히 논란이 많은 일이지만, 이를 떠나서 신념에 따라 생각하며 이 나라를 위해 나서는 것이야말로 전에 없던 용기이자 결기라고 본다.


나는 살아오면서 과연 나라를 진정으로 생각하는 마음이 있었던가?


생각이 많아진다. 온 나라가 진통을 겪고 있는 최근의 정치적 소용돌이와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나라에 대해 그리고 정치와 역사에 대한 이해도가 점점 깊어지는 중이다. 그럴수록 나의 조국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다시 보게 된다.


월드컵이나 올림픽 등 국제 스포츠 경기를 보며 목이 터져라 대한민국을 외치며 응원했던 기억, 혹은 K pop 아티스트들이 전 세계에서 인정받고 사랑받는 모습을 보면 소위 국뽕(?)이란 것이 차오르긴 했다. 별다른 이유 없이 크게 성공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전생에 나라를 구했다'라고 이야기하거나 극한의 슬픔에 잠긴 사람을 보며 '나라 잃은 표정'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일상생활에도 나라와 조국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 나라에 대한 마음은 딱 그 정도였다.


다시 말해, 한 국가의 국민으로서 나라를 왜 사랑해야 하는지 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나라를 이끌고 운영하는 일은 나와는 큰 상관없는 세계의 일이란 생각으로 그저 개인의 안위에만 신경 쓰며 살아왔다. 그것도 결국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시스템이 건강하게 작동함으로 누릴 수 있는 혜택이란 것을 까마득히 모른 채 말이다. 오히려 선진국 대열에 오르는 우리나라에 대한 긍정적인 면보다 구태여 부족하고 개선되어야 할 부분에 집중하기도 했다.


이런 나도 때가 되었는지 점차 각성하고 깨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성경적 가치관에 근거에 나라를 사랑하는 크리스천이 되고 있다. (이에 대한 더욱 자세한 이야기는 '언제부터 나라 걱정 했다고'를 참고하시길)



모든 크리스천은 애국자?


2025년은 선교사 언더우드, 아펜젤러가 이 땅에 첫발을 내디딘 지 140년이 되는 의미 있는 해이다. 돌아보면 우리나라의 근. 현대 문화는 곧 교회와 함께 걸어온 기독교 문화라고 할 수 있다.


기독교와 한국교회는 일제로부터의 독립과 해방의 정신적 기초였으며 근현대사의 사상적 디딤돌 역할을 했다. 그래서인지 당시에는 “이 시대에 성공하려면 교회로 가라. 정말 애국자가 되려면 기독교인이 돼라”는 말이 나돌았다고 한다. 기독교인들은 일제의 온갖 박해 가운데서도 3∙1 독립만세운동에 앞장섰으며 독립운동에도 적극적이었다. 대한민국은 기독교 입국론에 따라 건국되었고, 바로 기독교인들이 대한민국 건국의 주인공들이었다. 나라의 공산화를 막아낸 세력도 역시 기독교였다. 그래서 한국 기독교에는 나라 사랑이라는 명제가 있다.


'모든 애국자가 다 그리스도인은 아니다. 그러나 모든 그리스도인은 애국자이다.'

- 출처 미상-

충분히 동의하는 바다.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크리스천 애국자로 거듭나기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인물들은 나라와 민족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며 행동하고 있다. 모세가 그러했고 느헤미야, 그리고 예레미야가 대표적인 예이다.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Instead, they were longing for a better country--a heavenly one.

히브리서 11:6 a (Hebrew 11:6 a)

한반도에 살고있는 크리스천의 국적은 천국과 대한민국 두 개다. 본향인 천국에 가는 그날까지 이 땅에 잠시 살며 소명을 다하는 것이 크리스천의 삶인 것이다. 그렇다고 땅의 일에 무관심하자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 누구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해야 한다. 그것이 성경적이며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인 것이다.


더하여 우찌무라 간죠가 말한 것처럼, 복음에는 국경이 없지만 크리스천에게는 섬겨야 할 조국은 있다. 그리고 이 땅에 사는 동안 우리의 조국은 대한민국이다. 신앙의 자유가 있어 마음껏 예수님을 찬양하며 예배할 수 있는 자유 대한민국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살아갈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하나님께서 이 땅에 나를 보내신 분명한 이유가 있기에 소명을 다한다고 믿는 크리스천 애국자들 말이다.


조평세 박사님의 말처럼 역사는 다수의 편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편에서 흐른다. 우리는 성경적 가치를 믿고 수호하는 크리스천으로서 진리를 증거 하는 증인의 삶을 유유히 살아갈 뿐이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인들은 나라가 위기에 처하거나 옳지 않은 방향으로 갈 때 간절히 기도하며 행동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기독교인은 절대다수가 아니다. 그러나 빛과 소금, 그리고 누룩으로의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서 숫자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올바른 성경적 가치에 근거하여 주어진 사명을 굳건히 꾸준하게 감당하는 소수의 크리스천이 제 역할을 잘만 감당 한다면 하나님께서 그분의 방법으로 정하신 때에 일을 행하시며 성취하실 것을 믿는다.


앞으로 대한민국을 이끌어 나갈 크리스천 청년들이 누구보다도 올바른 역사관과 국가관을 가지길, 한국교회와 성도들이 성경대로 믿고 판단하고 행하여 죄를 죄라고 말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갖게 되길 바란다. 무엇보다도 성경 말씀을 가장 우선순위에 두는 빛나는 세대가 되길, 나라를 사랑하는 크리스천으로서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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