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대한민국의 가치를 존중하며 지키겠습니다
지금까지 6.25 전쟁에 대해 이렇게까지 제대로 공부하고 깊이 애통해한 적이 있을까? 나라에 대한 사랑이 커진 탓인지 나이가 들어감에 따른 것인지 모르겠으나 유난히 자유대한민국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보는 올해 6월이다.
2025년은 6.25 전쟁이 발발한 지 75주년이 되는 해다. 1950년 6월 25일 모두가 잠든 주일 새벽 4시, 북한의 기습적인 남침으로 전쟁이 시작되었다.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3년 1개월 후인 1953년 7월 1일 정전협정으로 총성은 멈췄고 우리나라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 지금까지 남게 되었다. 전쟁 발발 당시 남한의 항공기, 전차, 함정 등 병력 차이는 북한과는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절대적인 열세였다. 게다가 정치 외교적으로 우호적이지 않은 환경에서 전쟁이 개시된 상황이었다. 여러 가지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남한이 공산화되지 않은 것은 모두가 기적이라 말한다.
유사 이래 한반도에는 크고 작은 전쟁이 이어졌다. 외세 침략이 대략 1,000번 정도라고 하니 백성들의 삶이 얼마나 고단했을지는 가히 상상이 가지 않는다. 그런 이 땅에 태어나서 6.25 전쟁 이후 지난 70여 년 동안 전쟁 없이 평화를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지금을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새삼 생각하게 된다.
다시 말해 한국전쟁 후 태어난 사람들은 자유를 당연하게 타고난 소위 복 받은 시기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오히려 자유의 가치와 중요성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않고 그저 누려왔음을 고백하게 된다. 그러나 그 자유를 지키고 물려줘야 할 역사적 책임이 분명히 있기에 그 의미에 대해 알고 힘써 배워야 할 이유도 있는 것이다.
'향후 100년간 이 땅에 빛은 없을 것이다.' 서글프지만 한국 전쟁 후 폐허가 됐던 한반도를 가리켜 전 세계 신문에서 했던 말이다. 그 잿더미 속에서 지금은 K-pop과 BTS에 열광하고 삼성과 현대 같은 글로벌 기업이 생겼다. 한반도의 밤을 찍은 위성사진을 보면 더욱 확실해진다. 남쪽에서 자유가 환히 빛나고 있다. 그리고 이는 이 자유를 위해 싸우던 이들에겐 크나큰 자부심으로 이어진다.
그러던 중 내 눈길을 끈 사진 한 장이 있다. 군복을 입은 노장의 눈빛에서 광채가 나는 것 같았다. 나이가 들어도 위엄 있는 숭고함이 엿보여서일까? 처음 그 사진을 봤을 때는 그저 퇴역 군인들의 사진이라 생각했는데 '프로젝트 솔져'라는 이름으로,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를 다니며 한국전쟁 참전용사 사진을 촬영해 액자로 만들어 전달하는 일의 일환이었다. 라미 현 작가님이 시작한 일인데 지금까지 전 세계 약 200개 도시를 방문하며 2500여 명의 한국전쟁 참전 용사들을 만나 촬영하고, 그들에게 5500점 이상의 사진 액자를 전달했다고 하니 실로 어마어마한 프로젝트다. 정부나 기관에서 해야 할 법한 일을 개인이 시작했다는 사실도 실로 놀랍다. 대한민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참전용사들에 대한 경의의 표시로 자신의 작품을 선물하는 멋진 프로젝트. 그동안 별 관심을 갖고 살지 않았던 부분이기에 프로젝트의 내막을 알고 나니 숙연해지기까지 했다. 자유라는 가치를 숙고하면서...
라미 현 작가가 참전용사들의 사진을 찍으며 인터뷰한 내용을 본 적이 있는데 가장 인상 깊은 구절을 남겨본다.
너희가 빚진 것은 하나도 없다. … 자유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의무가 있어. 바로 자유가 없거나 자유를 잃게 생긴 사람들에게 그 자유를 전하고 지켜주는 거야. 우리가 한국전쟁에 참전한 것도 이 의무를 지키기 위함이지, 다만 너희도 자유를 얻었으니 의무가 생긴 거야. 북쪽에 있는 너희 동포들에게 자유를 전달하는 것, 그 의무를 다했으면 한다.”
- 윌리엄 빌 베버 (William Bill Weber) -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은 북한의 남침 보고를 받고 이틀 후인 6월 27일 성명을 발표하며 미군의 참전과 파병을 결정했다. 참고로 미국은 180만명이라는 대규모 병력을 파병시킨다. 당시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없던 시기라 미국이 참전할 아무런 의무가 없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속전속결로 참전을 결정한 것이 기적이다. 트루먼 대통령의 결단에는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의 간절한 호소가 있던 것으로 알려진다.
“수백만 미국의 기독교도들은 국가가 위기에 처한 지금 대통령께 지혜를 주시라고 하나님께 기도드립니다. 공산주의자들에게 지금 이 순간 맞서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바입니다. 한국은 세계 어느 곳보다 기독교도 신자의 비율이 높은 나라입니다. 그들이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쓰러지도록 허락할 수는 없는 일일 것입니다.”
“Millions of Christians praying God give you wisdom in this crisis. Strongly urge showdown with Communism now. More Christians in Southern Korea per capita than any part of world. We cannot let them down.”
- 미국 트루먼 대통령께 보낸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의 전보-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은 전 세계 복음주의 운동에 막대한 영향을 준 분으로, 미국이 어려운 결정에 처할 때 대통령에게 믿음의 길을 자문해주기도 했다. 특히 한국에는 1952년, 1958년, 1973년, 1984년 등 총 네 차례 방문하여 대규모 전도집회를 가지기도 했다. 이런 그는 6.25 전쟁이 발발하자 트루먼 대통령에게 위의 전보를 보내며 한국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이야기했던 것이다. 한국이 공산화되면, 50만 명에 달하는 크리스천들이 위기에 처하게 되며 미국이 자유와 평화의 파수꾼이 되어야 한다며 호소했다. 당시 미국사람들은 한국이란 나라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하던 때였다. 그러나 위의 강력한 전보문이 트루먼 대통령의 마음을 움직였다.
한국전쟁의 기적 같은 사건은 이뿐만이 아니다. 전쟁 발발 3일만에 서울이 함락되고 남한이 지도상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했지만 유엔 상임이사국의 참전이 결정된다. 역사상 유례가 없이 전 세계 국가 중 72%가 한국을 도왔다. 5천 분의 1이라는 성공확률을 가졌던 인천상륙작전은 또 어떤가! 이를 통해 전세를 역전시키며 전쟁의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던 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6.25 전쟁은 반성경적 세계관을 가진 공산주의자들이 일으킨 명백한 침략 전쟁이다. 당시 대한민국은 소련과 중국의 대대적인 지원을 받는 북한을 막아낼 힘이 없었다. 그러나 미국과 유엔의 신속한 개입으로 자유를 지켜낼 수 있었고 오늘의 대한민국이라는 가치를 이어나가게 되었다.
대한민국의 역사를 공부할수록, 특히 6.25 전쟁과 당시 국제정세를 공부할수록 사람이 생각지 못한 영역에서 신적 개입이 있었음을 인정하게 된다. 세상사람들은 이를 기적이라 말하고 크리스천은 이를 하나님의 섭리라고 부른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조금 늦었지만 이제라도 자유의 숭고함과 자유 대한민국의 가치를 깊이 이해하게 되어서,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하는 크리스천이 될 수 있어서 마음가짐이 새로운 2025년 6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