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법치를 생각하다
그동안 내가 굉장히 착각했던 법에 관한 두 가지 내용이 있다.
하나는 '법 없이도 살사람'이란 말이다. 이 표현은 자신의 도리를 다하면서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사람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런 이들에겐 죄지은 자를 벌하는 법이 필요 없다는 뜻이 된다. 쉽게 말해 법에 걸리지 않는 정직하고 바른 사람이랄까.
그러나 수시로 변하는 각박한 현대사회에서 “법 없이도 살 사람”이 과연 잘 살아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가까이는 수시로 바뀌는 교통법규에서부터 정보통신 관련 법률에 이르기까지 법은 사회 전 영역에 큰 영향을 끼친다. 게다가, 지금과 같이 자유민주주의체제의 삼권분립이 위기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법이 큰 역할을 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다른 착각 하나는, 내가 굳이 관심을 갖고 신경 쓰지 않아도 대한민국의 법치가 잘 실현되고 있을 것이란 순진한 믿음이다.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며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뤄낸 유일한 나라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당연히 제대로 작동하고 있을 거란 막연한 신뢰 속에서 그저 내가 할 일만 알아서 잘하면 국가는 잘 돌아가겠지 라는 안일한 생각 속에 살아왔다. 바로 얼마 전까지 말이다. 그러나 대. 내외적 혼란 속에서 대한민국 건국을 이뤄낸 위대한 가치인 자유민주주의, 법치주의, 삼권분립이 위기를 겪고 있음이 일반인인 내가 보기에도 여실히 드러남에 놀라고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혼란 속에 처한 대한민국을 보며 애끓는 마음으로 기도했다. 140년 전 선교사들이 전해 준 복음으로 빛이 들어온 나라, 아픈 역사를 딛고 마침내 자유민주공화국으로 건국된 대한민국. 그동안 근. 현대사에 대한 무지와 정치적 무관심으로 개인의 안위만을 위해 기도했던 크리스천으로서 가슴깊이 회개했다. 일하고 학교 가고 맛집을 찾아다니고 좋아하는 공연과 스포츠를 즐기는 특별할 것 없던 나의 일상이 결국은 나라의 안정된 시스템 속에 있어서 가능했던 것이란 뒤늦은 각성과 함께. 그리고 성경말씀에 근거하여 가정, 교회, 나라를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매우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민주주의는 공정한 선거, 다당제, 그리고 법치와 삼권분립의 보장으로 실현된다. 삼권분립은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하는 대전제이며 이 모든 과정은 법치(법에 의한 통치, Rule of Law)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대통령도 다수장의 권력자도 판사조차도, 그가 가진 권력의 정도가 아닌 법에 따라 그 권한의 내용과 절차가 수행되도록 하는 것이 법치이다. 더하여, 절차적 정당성이 없는 곳에 법치가 있을 수 없고 법치가 없는 곳에는 결코 자유민주주의가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없다.
우리 역사를 살펴보면, 법치가 아닌 관습의 지배를 받았던 조선시대를 지나왔고 나라와 주권을 잃은 일제강점기를 거쳤다. 그리고 인류사에 있어 가장 완전하다고 여겨지는 미국의 헌법을 그대로 벤치마킹하여 만들어진 대한민국의 헌법과 함께 나라가 건국되었다. 그야말로 혁명적인 일이다. 한 번도 국민이 주인이 되어본 적이 없는 역사를 살아온 우리가 1948년 5월 제헌국회 수립을 위한 첫 총선거를 실시했다. 놀랍게도 이때부터 여성 참정권을 보장하면서 말이다. 이토록 짧은 기간 동안에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가치를 실현시킨 우리 역사를 보면 놀라움의 연속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 이는 대한민국 헌법 제1조 2항에 명시된 국민주권의 원칙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구절이며 민주공화국의 핵심가치를 잘 담고 있다. 1948년 제헌헌법이 제정된 시기부터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한 이 핵심 가치가 서서히 아니, 급격히 무너지고 있는 현실을 보게 된다. 법에 문외한인 내가 보더라도 분명히 이 나라 사법부는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으며 삼권분립이 과연 지켜지고 있는지조차 의문이 든다. 짧은 기간 급격한 성장을 이룬 우리나라가 성장통을 겪는 중이라 해 두자.
무더운 8월의 끝자락, 정동에 갔다. 우리나라 근대화의 흔적이 살아 숨 쉬는 곳. 건물마저도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조용한 길을 걸어 행사장소에 도착했다. '정동 1928 아트센터'. 본래 구세군 사관양성 및 선교와 사회사업을 위한 본부였다고 한다. 일제시대부터 신사참배 반대운동, 6.25 전쟁의 상흔과 한국의 근대화 과정을 오롯이 겪어왔을 이 건물에서 2025년에 또다시 의미 있는 행사가 있다고 생각하니 감회가 무척 새로웠다.
순수하게 법치주의를 수호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사랑하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서부자유변호사협회 창립총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이 협회는 서부지법 사건과 관련된 대규모 구속 사태를 계기로 결성됐으며, 법치 회복과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핵심 과제로 삼고 활동하는 곳이다. 특히 서부지법 사건과 관련하여 목격된 무너진 법의 원칙과 절차적 정당성에 관해 강조하며 이를 위해 힘쓰고 있다.
진보성향의 변호사 단체는 이미 견고하게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자유우파 변호사 협회가 만들어진 것에 대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든든함을 느꼈다. 자유우파 쪽 유명 인사들의 감동스러운 축사, 서부자유변호사협회의 인사와 각오를 들으며 만감이 교차했다. 예전의 나였으면 별생각 없이 언론이 붙여버린 '극우'라는 프레임으로만 바라봤을 일들에, 그 현장에 참여하고 있다니 새로웠다. 그 새로움을 넘어 한 명 한 명이 모두 제 자리에서 제 역할을 하며 선한 싸움을 할 때다.
법원의 판결과 법 집행의 공정성에 대한 건설적 논의는 건강한 민주주의 사회에 필수적인 요소다. 특히 사법은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지켜낼 최후의 보루라는 것에 동의한다. 법치주의가 무너지면 개인의 자유와 권리는 보장받지 못하는 것을 물론, 사회 전체가 혼란에 빠지게 될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의 근간이 되는 핵심가치인 법치, 이를 통해 건강한 국가를 회복하려는 이 흐름이 대한민국을 넘어 더 큰 파장을 이끌어나가길 바란다.
성경에 근거하여, 진리는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당장은 막막할지라도 믿음으로 나아갈 때 미래와 다음 세대에 소망이 있는 것이다. 이렇게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모여 지혜를 간구할 때 새로운 흐름이, 파장이 생각지도 못한 또 다른 물결을 만들지 누가 아는가.
용기 있게 그 시대적 흐름에 동참한 모든 이들에게 평강을 빌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