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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로쿠쌤 Jul 15. 2021

호주에서 오히려 한국어가 늘어버린 B를 위한 변명

유학생이 외로움을 대처하는 방법

 '호주에서 영어가 아니라 한국어가 더 늘어버린 것 같아.'

자조 섞인 B의 하소연을 들은 적이 있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하겠지만, 해외에서 일정기간 살아본 사람들은 어쩌면 단번에 이해할 수 있으리라.


해외유학이나 어학연수의 로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영어권 국가뿐 아니라, 중국어나 스페인어를 쓰는 나라에 가서 공부하는 사람들도 더 많아지고 있고. 나를 모르는 낯선 문화권에서 살아보는 일, 상상만 해도 멋지지 않은가? 직장인이 되고 난 후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멀쩡히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유학길에 올랐던 나였으니 나도 그 무리 중 대표 격이라 할 수 있겠다. (이에 관해서는 '멀쩡히 다니던 대기업 퇴사 이유와 유학 결심'을 참고하시길)


이렇게 야심 차게 시작한 해외 생활이지만, 한때 설렘의 대상이자 해외생활의 강력한 동기가 되었던 낯선 환경과 언어 그리고 모험심이 자칫 현실적인 문제와 외로움이라는 감정과 마주할 때 인간은 무기력해지기 마련이다. 우울증이 오기도 하고 향수병 같은 마음의 병이 생기기도 한다. 개인마다 강도의 차이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 나는 어땠냐고?

큰소리 뻥뻥 치며 용감하게 호주로 날아왔건만, 호주 도착 첫날부터 마음이 움츠러드는 느낌이었다. 내 돈 내고 내가 원해서 양질의 교육을 받으러 온 건데 이게 무슨 일인가 싶게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머릿속으로 상상만 해온 호주 생활을 현실로 했을 때의 느낌은 가히 overwhelming(압도적) 했다. 그래, 그 단어가 가장 적합할 것 같다. 서울에서 8천 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청정하고 깨끗한 대륙과 뼛속부터 낯선 문화에 덩그러니 혼자 떨어져 살아나가야 했다. 요즘 말로 현타 제대로 왔다. 그렇다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건 말도 안 되는 옵션이었고 쪽팔렸다. 고작 낯섦에 압도당해서 해보지도 않고 돌아간다는 건 당시 내겐 용납이 안되었으니까. (지금은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참 많이 너그러워졌다.)


외로워도 막막해도 괜찮아


한 달 동안 나에게 여유를 주자

본능적으로 생각한 나만의 해외생활 적응 방법! 최소한 한 달은 나에게 관대하며 지켜보자란 거였다. 나 자신을 독하게 몰아붙이지 말고 흐름에 맡기며 잘 먹고 잘 자기. 정말 단순했지만 기막히게 효과적이었다. 20년 넘게 살아온, 공기처럼 익숙했던 환경 자체가 갑자기 바뀌는데(심지어 계절도, 운전석도 반대인 남반구 외딴 대륙), 당연히 적응기가 필요한 것 아닌가란 꽤나 성숙한 결론에 이르게 된 것이다. 더욱이 여긴 내가 아는 사람이 단언컨대 단 한 명도 없는 곳이니, 다시 시작하며 새로운 세상을 접해보리 하는 각오도 다지게 되었다. 이때 깨달았다. 해외여행과 해외유학 혹은 거주는 차원이 다르구나 하는 것을.



한인교회에 가다

호주에 도착하자마자 교회를 알아봤다. 홈스테이 집이 있던 Rnadwick에 위치한 큰 호주 장로교회도 직접 찾아가 보기도 하고, 인터넷으로 다른 시드니 지역의 교회도 열심히 알아봤다. 그리고 결국 Strathfield에 있는 한인교회에 가게 되었다. 참고로 Strathfield 한국인들이 많이 모여사는 한인타운 지역이라, 가보면 진짜 한국 같은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여기저기서 친근한 한국말이 들리기도 하는 곳이다. 이곳에 위치한 교회에 매주 갔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은 갔던 곳으로 지금은 어떻게 변했을지 무척이나 궁금하다.(얼마 전에는 이곳에 명랑 핫도그도 생겼다고 한다!)


한국어로 예배를 드리고 교제를 하니 심리적으로 안정을 더 빨리 찾은 것 같다. 여러모로 힘이 되어주는 교회 식구들께 감사한 시간이었다. 지금도 호주 교회 목사님 부부와는 종종 안부를 묻고 있다. 교회 목사님 부부께서는 본인의 집을 유학생이나 워킹홀리데이를 온 청년들에게 개방을 하고 도와주고 계시기도 했다. 특히 호주에 온 지 얼마 안 된 청년들에게 큰 힘이 되어주셨다. 막막한 심정을 감출 수 없는 새내기 호주 입성자들에게 정성스레 차려주신 한국식 식사를 대접해주시기도 하는데, 평범하지만 따뜻했던 그 저녁식사를 나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시드니 스트라스필드 (출처: https://www.visitsydneyaustralia.com.au)




호주에서 왜 한국어가 늘어?

앞서 이야기한 B의 사연으로 돌아가 보자. 호주에서 한국말이 늘어버렸다는 그 B 말이다. 서울 출신인 B는 부산에서 온 한국인 친구들과 얼마 동안 붙어 다니더니 경상도 사투리 패치(?)까지 장착되었다며 웃었다. 타지에서 느끼는 외로움과 반가운 익숙함의 콜라보가 낳은 결과리라.


조금 더 오버해서 말한다면, 한국어만 쓰고도 시드니에서 살아갈 수 있다. 그만큼 한국인들도 많고 한인타운도 잘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단지 많이 제한적이고 불편할 뿐이다. 호주에 온 젊은이들의 대다수가 영어도 하고 문화도 배우고 돈도 벌고 싶어서일 테다. 어쩌면 한국어가 늘 것이라는 예상은 전혀 하지 못한 채.


당연하지만 기억하시라. 호주에서 일하고 여행하고 살아가려면 영어가 필수라는 것을. 그리고 또 당연히 영어가 준비되어 호주에 온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차이가 많이 난다. 가장 간단한 예로, 일자리 구하는 것부터가 다르다. 영어를 못하면 한국인들이 운영하는 가게나 사업체에서 일을 하게 되는데 시간당 페이가 호주 현지 사업체와 차이가 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그 가게의 고객들도 한국인들이 많을 테니 업무시간 외에 영어를 따로 배워야 하는 웃지 못할 상황들도 생긴다. 그러니 호주로 일하러 오는 많은 청년들이여, 제발 영어 준비는 한국에서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하고 오길 바란다.



나의 한국어는...?

나 같은 경우 한국인들을 일부러 피하지도, 굳이 엮이지도 않았다. 셰어하우스에서 한국인 친구들과 살며 한인교회에서 한국인들을 만났고, 학교에 가면 호주 학생들은 물론 전 세계 각지(중국인들이 정말 많았지만)에서 온 클래스메이트들과 공부했다. 돌이켜보면 내 인생에서 그만큼 자연스럽게 글로벌했던 적이 있을까 싶게 말이다.


시간이 가며 내 영어는 점차 세련되게 다듬어졌고, 한국어는 내 모국어니 당연히 괜찮았을 거다. 게다가 한인교회에서 외국인 성도들을 위해 통역을 했던 터라 언어적인 성장(순발력 포함)이 이뤄졌을 거라 추측한다. 아차, 한 가지 부작용이 있다면 어느 순간 한국어도 영어도 입에서 잘 나오지 않는 때가 있었다. 왜 이리 단어가 생각이 안 나는지. 이 부작용은 한국에 다시 돌아왔을 때 가장 심했다. 이건 개인적인 경험이니 그냥 참고만 하시길.



확실한 건, 해외생활에 잘 적응하는 것은 쉽지 않다. 게다가 영어까지 원하는 수준에 올리는 것은 더더욱 의도적인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해외유학 혹은 워킹홀리데이를 하는 모든 이들에게 응원하는 마음을 전하며...

다음 글에서 다시 만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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