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주부가 웬 야근이냐고?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어쩌면 모순되는 단어 둘의 조합이다. 과연 이게 가당키나 할까? 그러나 이것은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는 팬데믹 시대를 살고 있는 작금의 현실 속에서 만난 나의 새로운 일상이기도 하다. 게다가 자발적 야근이라니!
달라진 일상
집에 돌아오자마자 손소독제 꾸욱. 사용한 마스크를 새것으로 교환하여 정해진 곳에 걸어둔 후, 욕실에서 꼼꼼히 손을 씻고 나오는 아이들. 아직 유치원생인 아이들에게는 대부분에게 낯선 이 풍경이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리라. 외출할 때도 뙤약볕 아래에 있으면서 마스크 한번 내리지 않는 말 잘 듣는(?) 아이들을 볼 때면 측은한 생각마저 들 정도다. 그나마 유치원에 갈 수 있던 때는 양반이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격상되거나 주변에 확진자라도 나오는 날이면 여지없이 기약 없는 가정보육이 이어지니 말이다. 전업 맘인 나도 이렇게 당황스럽고 힘든데 워킹맘들은 오죽할까 싶다가도 육아와 살림에 치이는 날에는 '지금 내가 누굴 걱정할 처지가 아닌데'라는 현타(?)가 오기도 한다.
나는 전업맘이다. 프리랜서로 일을 하긴 하나 본 타이틀은 '전업주부'다. 아직도 전업주부를 바라보는 곱지 않은 사회적인 시선이 맘에 들진 않지만 그럴수록 '대한민국에서 제일 멋진 전업주부이자 엄마가 되겠어'라는 의지를 다지곤 한다. 이런 내가 코로나 시대와 함께 야근을 시작했다. 코로나 이전, 나의 하루는 이랬다. 아이들 등원 후,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고 책을 읽고 파트타임으로 영어강의를 하고 집안일과 요리를 했다. 전업주부라는 틀에 갇혀있기 싫어서 내 시간과 자기 계발에 부단히 노력해왔다. 언젠간 사회로 나가 경제활동을 할 나를 그리면서. 그러다 보면 빠르게 지나가던 하루.
그렇지만 코로나 이후 가족들이 24시간 내 곁에 있게 되면서 내 일상,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만의 황금 같은 시간이 사라져 버렸다. 금방 끝날 줄만 알았던 상황은 생각보다 길어졌고 가족들이 집에 있는 시간도 덩달아 늘어났다. 이 시대에 좋아진 점이 있다면 비대면으로 양질의 강의를 들을 수 있고 온라인 모임이 활성화되어 본인의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집에서 자기 계발을 할 수 있다는 사실. 나같이 이것저것에 관심 많은 사람에겐 그야말로 신세계다. 그런데 이를 어쩌나. 내 시간이 없다.
내 시간을 확보해 보자
그래, 야근을 시작하는 거야
미라클 모닝이 유행이다. 새벽잠이 많은 나로서는 감히 엄두가 나질 않는다. 그래서 선택하게 된 야근. 밤 시간이 확보되려면 낮시간을 더욱 잘 보내야 한다. 집안일도 밀리지 않게, 정리도 그때그때.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아이들 취침시간이 빠르고 일정해야 한다는 것. 육퇴(육아 퇴근)의 기쁨을 누리는 것도 잠시. 부랴부랴 컴퓨터 앞에 앉아서 듣고 싶던 강의를 듣고, 영어강의자료를 만들고, 블로그에 글을 쓰기도 한다.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에 돌입하는 것이다. 참,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니 하루 10분 이상 홈트는 필수다. 이렇게 밤 시간을 불태우다(?) 보면 어느새 눈꺼풀이 감기는 때가 찾아오기 마련. 미련 없이 내일 야근을 기약하련다. 이런 시간들이 지난 1년간 차곡차곡 쌓이다 보니 어느새 나는 온라인 강의도 하고, 전자책도 쓰고 유튜브 채널도 운영하는 디지털 크리에이터가 되어 있었다.
가족이라는 우선순위를 지켜볼까
자기 계발도 좋고 야근도 좋지만, 내게는 가족이라는 우선순위가 있다. 한 인간의 자아실현 이전에 지금 역할에 충실하고 싶단 의미이기도 하다. 밤 시간을 자기 계발에 매진하다 보니 남편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든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야근도 지혜롭게 하기로 했다. 사실 야근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말 그대로 'extra work'이니 말이다.
'가족' 이라는 우선순위
가정보육과 재택근무가 자연스러워진 요즘. 이 시대 엄마들의 역할도 무거워졌으리라. 가족들을 잘 챙기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먼저 잘 챙겨야 한다는 사실도 잊지 말자. 그 방법이 무엇이 되었든 본인을 잘 돌본 후에 다른 사람을 더 잘 케어할 수 있다는 단순한 진리를 외면하지 말았으면 한다. 그것이 내가 택한 필살기, 야근이든 아니든 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