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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로쿠쌤 Feb 11. 2022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과연 무얼 하면서?

전업주부, 동화 속 해피앤딩에 딴지를 걸다

해피앤딩 클리셰 비틀어보기


책 속에 자주 등장하는 진부한 클리셰가 하나 있다.

바로 동화 속, 모두가 원하는 해피엔딩의 결말이다.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왕자와 공주가 만나 어려움을 극복하고 사랑을 쟁취해 결혼을 하고는 곧바로 이렇게 서둘러 급히 매듭을 지어버리는 구조라니! 그 이후의 삶은 독자의 창의성을 위해 상상에 맡기는 것인가. 너무나 흔하기에 일말의 의심도 없었던 해피엔딩 클리셰가 어느 날 나에게 의문처럼 다가왔다 


그들이 결혼해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면, 무얼 하며 살았을까? 
무슨 일을 했을까? 
왕자와 공주이기에 먹고살 걱정은 없겠다만 과연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서로 얼굴만 보며 살았을까?


동화 속 그 공주는 결혼 후 뭘 하며 살았을까?_전업주부의 시선


이런 클리셰에 딴지를 걸을만한 다양한 관점이 있겠지만 난 여기서 '일'에 대한 관점으로만 생각해 봤다. 그 이유는 마치 동화 속 선남선녀처럼 아름다운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한 후의(물론 동화 속 이야기처럼 극적이거나 강렬하진 않지만) 내 삶이 어떻게 펼쳐질 것인가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교육시스템과 체면(?) 차리기에 익숙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꿀리지 않은 학벌과 직장 경력을 만들어내며 나름 치열하게 살아온 20대의 나. 그리고 감사하게도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을 했다. (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그 멋진 교회오빠는 다 어디로 간 걸까?'를 참조하시길)



문제는 결혼 그다음부터다.


사랑하는 사람과 평생을 함께하는 것은 의미 있고 축복받아 마땅한 일. 그러나 결혼과 출산 육아에 이르기까지 한 사람, 특히 여성의 삶은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되는데 정작 나는 이에 대한 대비도 준비도 공부도 제대로 하지 못했었다. 학교에서는 정작 꼭 필요한 이런 것 가르쳐주지 않더라. 


그래서일까? 아이에게 동화를 읽어줄 때마다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도대체 결혼 후 행복하게 오래오래 무얼 하며 살았을까? 공주에 돈도 많으니 우아하게 육아를 하고 삶을 즐기며 유유자적하게 풍족한 전업주부로 살았을까? 아니면 자기만의 일을 하며 소위 '브랜딩'을 하며 셀럽이자 사업가로 변모했을까? 다소 엉뚱한 상상도 해봤다. 그저 행복하게 잘 살았다고 뭉뚱그려 생각하기엔 인생이 참 길고 디테일한 이야기도 많을 터.


누군가는 왜 그리 까칠하게 따지느냐 반문할지도 모르나 인생이란 가까이서 보면 각자의 기가 막힌 상황 혹은 사연이 있는 법이다. 그 공주는 결혼 후  어떻게 삶을 살아갔을까? 남편과 아이들 사이에서 자존감의 하락은 없었을까? 그러고 보니 동화를 너무 현실로 받아들여버렸다. 



모든 인간은 일을 하는 존재


인간은 일을 하는 존재라고 한다. 그것이 생계를 위해 돈을 버는 일이든 삶을 영위하는 일이든 말이다. 전업주부는 한낱 집에 머물며 노는 존재라는 불편한 시선이 점차 사라지고는 있지만 아직까지 이에 대한 사회적인 합의가 필요한 부분이 있다. 게다가 여성은 삶의 단계에 따라, 특히 결혼 이후의 삶은 다양한 역할이 한꺼번에 요구되기도 한다. 엄마, 아내, 며느리, 직장인 등등.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없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동화 속 공주의 결혼 이후의 삶도 그렇게 우아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란 합리적인 추론이 가능하다. 공주라서 좀 더 풍족하고 삶의 규모가 재정적으로 컸을 수는 있겠지만. 인간의 인생 스테이지마다 변화하는 희로애락의 감정, 자존감 위기, 아이를 키우며 나이가 들며 성숙하는 일 등은 지금의 여성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 물론 가정의 리더로서 정글 같은 사회 속에서 생계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남편들의 노고도 인정하는 바다. 


중요한 것은, 모든 인간은 각자의 위치와 역할에 따라 해야 할 일이 있다는 점이다. 동화 속 공주가 결혼 후 전업주부가 되어 살아갔든 본인만의 정체성을 찾아 새로운 일을 시작했던 그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그래서인지 동화 속 해피엔딩 결말 이후의 그녀의 모습이 더더욱 궁금해지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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