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정 자연국이란 이미지가 강한 나라 호주. 이 나라의 마스코트 격으로 불리는 동물이 바로 캥거루다. 그래서인지 어딜 가나 캥거루가 그려진 기념품을 쉽게 볼 수 있고, 호주 축구국가대표팀을 응원할 때는 캥거루 풍선을 들기도 한다. 한 자료에 따르면 캥거루 수가 호주 국민수보다 약 1.5배 많다는 통계도 있다. 순한 이미지와는 다르게 굉장히 힘이 센 맹수로 싸움을 잘한다고 하니 충격적이긴 하다.
그러나 이보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호주에서 캥거루는 식재료로 쓰인다는 사실!
'호주' 하면 떠오르는 캥거루
"오늘은 캥거루 스테이크 어때?"
요즘은 국내 여러 매체를 통해 캥거루 스테이크가 소개되고 있어서 익숙할지도 모르겠다만 당시 유학생이었던 나에게 캥거루가 식용이라는 사실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보자면, 내가 거주했던 셰어하우스에 호주 교포 친구가 있었다. 워낙 어릴 때 호주로이민 온 터라 외모만 빼면 마인드나 생활습관이 모두 호주 사람이었다. 참고로 이 친구 같은 사람들은 '바나나'라고불린다더라. 겉은 황인종인데 속은 백인이라며...
아무튼 그 친구 덕분에 호주 로컬의 문화를 비교적 잘 이해할 수 있기도 했다. 그리고 나에게 캥거루 스테이크를 권해준 장본인이기도 하다. 내가 살던 시드니달링하버 근처는 관광객이 많은 곳으로 유명하며, 항구를 따라 각양각색의 레스토랑이 즐비하다. 그중 캥거루 스테이크로 이름이 나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호기심과 걱정이 섞인 마음으로.
두근두근하며 받은 서빙된 접시에는 여느 스테이크와 다름없는 비주얼의 캥거루 스테이크가 있었다. 잘게 썰어 베어 무니 양고기처럼 특유의 육향도 크게 나지 않았고 예상보다 무난한 식감에 안도감이 느껴졌다. 고알못(고기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인 내가 캥거루 스테이크와 굳이 비슷한 느낌을 찾는다면 소고기였다. 좀 질긴 느낌의 소고기랄까? 호주 특산물 중 하나인 레드와인과 곁들이니 훌륭한 이색 외식 메뉴였다. 실제로 Woolworth 등의 호주 대형마트에 가도 캥거루 고기를 쉽게 구할 수 있다. 잘 살펴보면 마트에 악어 고기도 있다. 청정 국가답게 청정지역에 사는 동물들을 식재료로 쓰는 게 참 신기하다. 캥거루도 식용화된 것은 90년대 초중반이라고 하니 시대에 따라 식재료의 변화가 있는 것 또한 흥미로운 일이다.
음식이 불러오는 기억과 향수
한국에서 캥거루 스테이크를 만나긴 어렵지만, 음식은 그 시절의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가장 강력한 매개체가 될 수 있음엔 격하게 공감하는 바다. 나도 어릴 때라 그런지 별 거부감 없이 현지에서 캥거루 스테이크를 맛봤고, 레바니즈 식당에 거리낌 없이 들어가 식사를 했으며, 호불호가 강하게 갈리는 말레이시안 국수 락사와는 사랑에 빠졌다. (락사에 관한 이야기는, '호주에서 만난 소울푸드, 락사(Laksa)'를 참고하시길) 저렴하고 질 좋은 호주산 와인의 매력에서는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중이다. 술을 잘 안 마시는 나한테 와인 한잔은 거의 주량의 한계이지만 은은하면서 기품 있는 와인의 향에서부터 취하는 느낌이다. 그래서일까? 동네 마트에 가서 '호주산 와인'이란 팻말만 봐도 가슴이 두근거리니 말이다.
이 지루한 팬데믹이 잠잠해지면, 아이들이 좀 더 크면 난 다시 그곳에서 캥거루 스테이크를 먹어볼 수 있을까 하는 상상만으로도 미소가 지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