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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로쿠쌤 Dec 13. 2021

호주에 와서 적잖이 당황했던 일

호주는 심심한 천국?

호주에 간다고? 밤엔 좀 심심할지도 몰라.

나의 호주행이 결정되자, C가 말했다. 출국날짜가 얼마 남지 않아 이것저것 준비하며 새로운 세계에 대한 설렘 가득한 내게, 그곳은 심심할 수도 있다는 말이 의아했다. C는 호주에서 워홀러(워킹홀리데이 가는 사람을 이르는 말)로 1년간 호주 각 지역의 농장을 전전하며 여행도 다녀온 선배 호주 경험자였다. 그런 그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데에는 뭔가 이유가 있겠지, 시골 농장이 좀 무료했으려나 지레짐작만 하고 대충 넘어갔더랬다.



시드니에서 그 흔한 모닝커피 마시기


축복받은 땅이란 이런 곳일까? 시드니는 실로 아름다웠다. 날씨도, 환경도, 건물도, 심지어 조금은 독특한 호주식 영어 억양 마저도, 8천 킬로 떨어진 북반구에서 온 나에게는 신선하게 다가왔다. 특히 여유로운 그들의 삶의 방식이 너무나도 부러웠다. 비유를 하자면, 내가 살아온 서울이라는 곳이 바쁨과 정신없는 느낌의 회색빛이라면 이곳은 음... 여유롭고 눈부신 바다색이랄까. 새로 이사 온 대륙에서 느낀 나의 첫 소감이었다. (나의 호주 첫날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호주 유학 첫날, 시드니에서'를 참고하시길)


졸지에 이방인이 된지라 긴장한 탓이었을까. 나답지 않게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그럴 때면 어색한 홈스테이 하우스를 벗어나 집 주변 산책을 하곤 했다. 커피의 나라답게 골목 곳곳에 신선한 커피 원두향이 가득한 특색 있는 로컬카페가 이른 아침부터 손님을 맞이했다. (호주의 커피 문화에 대한 이야기는, '호주에서 스타벅스 찾기가 그토록 어려웠던 이유'를 참고하시길) 이 나라 사람들은 죄다 이렇게 부지런할 걸까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럴만한 이유를 알기 전까진 말이다.




시드니의 저녁이란...


시드니는 세계적인 도시다. 호주 내에서도 멜버른과 함께 가장 번화하며 복잡한 곳이기도 하다. 시드니가 워낙 유명하다 보니 호주 수도가 캔버라가 아닌 시드니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기 하더라.


내가 적잖이 당황했던 사실은 이 거대하며 글로벌한 도시, 시드니의 밤이 생각보다 매우 조용했기 때문이었다. 잠들지 않는 도시 서울에서 살아온 탓인가. 우리나라는 밤이 되어도 도시가 쉽게 잠들지 않는다. 노래방, 음식점, 술집, 카페, 영화관 등에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들며 24시간 운영하는 곳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요즘은 코로나로 상황이 달라지긴 했지만, 나도 한때는 퇴근 후에 자정에 가까운 시간까지 회식을 하거나 친구들을 만난 적도 있으니 말이다.



호주에서 학교 수업을 마치고 오후 5시쯤 집에 오는 길엔 벌써 상점들이 문을 닫거나 닫기 시작하는 파장 분위기다. 당황스러웠다. 아예 오후 4시에 영업 마감을 해버린 곳도 종종 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곳은 시드니 시티다. 그마저도 문을 아직 닫지 않은 카페들도 남은 샌드위치나 샐러드 떨이 세일에 들어간다. 운 좋으면 반값에도 식사를 해결할 수 있었다. 문 닫을 때쯤 자주 찾던 시드니 QVB 지하 내 단골 카페의 바질 토마토 샌드위치 맛을 잊을 수 없는데 아직도 카페가 건재한지 문득 궁금해진다.


카페뿐 아니라 대부분의 상점이 시드니 한복판에 위치해있어도 아랑곳 하지(?) 않고 철저하게 이른 영업시간을 지켰다. 난 이 도시에서 뭘 기대했던 것인가 웃음이 났다. 밤에 딱히 돌아다니지 않는 나임에도 불구하고 이건 좀 심하지 않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로마에 오면 로마법을 따라야 하는 일. 어느새 나도 조용한 저녁시간 문화에 익숙해져 갔다.


부지런하고 근면 성실하기로 유명한 한국인들은 좀 다르긴 하다. 밤늦게까지 회식하고 이른 아침 출근을 해내는 우리나라 사람들 아니던가. 그래서인지 한국인 및 아시아 계열 식당은 늦게까지 영업하는 곳이 꽤 있었다. 그래서 호주 로컬들도 저녁 외식은 아시아 계열 식당을 이용하는 사람이 많다. 참, 24시간 운영하는 맥도널드를 보긴 했다.




호주의 쇼핑데이, 무비데이


일주일에 하루, 쇼핑데이가 있다. 시드니 기준으로 밤 8~9시까지 영업한다. 평소 영업시간보다 두 시간 이상 더 운영하는 것이다. 그래서 호주 사람들은 쇼핑데이인 목요일에 몰아서 쇼핑을 하거나 약속을 잡는 일이 잦다. 참고로, 거창한 쇼핑데이라고 해서 세일을 더 한다거나 하지는 않더라. 호주 친구에게 들은 바로는 호주는 주급제로 급여를 받는데 보통 주급 날이 목요일이 많아서 쇼핑데이도 목요일이라더라. 소비 촉진을 통해 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정부의 큰 그림이라고.


또한 매주 화요일은 무비데이다. 40% 정도 할인된 가격에 영화를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화요일만되면 평소보다 영화관이 북적인다. 그래서 나는 시드니 시티보다 학교 근처 Randwick에 있는 영화관을 선호했다. 이유는 딱 한 가지. 한산해서.


이렇듯 쇼핑데이와 무비데이도 있지만 도시의 밤은 서울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활기차다. 그래서 호주 교포 친구들이 방학만 되면 한국행을 떠났던 것일까 싶기도.



아침형 인간과 저녁이 있는 삶


아침형 인간과 저녁이 있는 삶. 요즘 뜨는 트렌드 중 하나가 아닐까. 미라클 모닝 붐이 일어나고 회사에서도 직원들의 워라밸(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을 위해 과도한 야근과 회식을 강요하지 않는 분위기다. 이런 면에서 호주 사회는 아주 일찍부터 이런 문화가 보편화되어 있는 것 같았다. 저녁시간에 거리에 나가도 문을 여는 상점이 흔치 않으니 자연스레 가정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게 된다고 했다. 내 주변 호주 친구들을 봐도 보통 저녁은 집에서 간단히 먹고 자기 일을 하거나, 운동을 가거나 했다. 물론 저녁시간에 약속을 잡아 모이기도 하지만 한국처럼 밤 시간이 더 활발한 분위기는 아니다. 한마디로 밤에 심심하다.


그래서 '호주를 심심한 천국, 한국을 재밌는 지옥'이라고 불렀나 보다. 출처가 확실하지 않은 이 말은 호주에 다녀온 사람들이라면 이해할 거다. 재밌는 사실은 주변 환경에 적응하게 되더라는 거다. 나도 한국에 있을 때는 바쁘고 치열하게 살아가다가 호주에 가면 왠지 모를 여유로움과 느긋한 태도로 변했으니까.

아무튼 서울과 시드니. 둘 다 지나치게 매력적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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