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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로쿠쌤 Apr 23. 2022

제가 바로 그 흔한 교회 집사입니다

집사 직분만 세 번 받은 이야기

제가 바로 집사입니다


요즘 이런 말을 들으면 열에 아홉은 '고양이 집사'가 떠오를 것이다. 당장 검색창에 '집사'라는 단어를 쳐도 온갖 고양이 수발(?) 사진이 수두룩하게 나오니까.


애석하게도 이번 글은, 조금 다른 집사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집사:교회의 각 기관의 일을 맡아 봉사하는 교회 직분의 하나. 또는 그 직분을 맡은 사람

(출처:네이버 국어사전)

 집사님? 이 집사님?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이라도, '집사님'이라는 호칭은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교회에 다니는 모든 사람들을 성도가 아닌 '집사'라고 불러야 하는 줄 아는 사람들도 있더라. 그만큼 대중들에게 친숙한 호칭이기도 하단 증거겠지만.


목사, 전도사 등의 교역자와는 다르게 집사는 평신도 사역자로 분류되며, 신학적으로 보면 그 근거를 사도행전에서 찾을 수 있다. 일곱 집사가 그 대표 격이며 스데반, 빌립 집사님 등의 사역에 관한 스토리는 기독교인들에게도 매우 친숙하다.


이 글에서 내가 신학적인 이야기를 깊게 꺼내려는 것은 아니다. 단지 '집사'직분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쉽게 나의 에피소드를 곁들여 풀어보려 한다.





올 것이 왔구나


교회  주보 뒤편  '교회소식' 란을 보다가 눈물이 핑 돌았다. 새로 임명된 '신임명 집사'리스트에 내 이름이 떡 하니 보인다. 집사 임명을 받은 감동의 눈물이라 생각했다면... 음.. 솔직히 그건 아니다. 직분을 받은 것은 감사할 일이나 당시 내 나이 아직 20대, 싱글에 남자 친구도 없던 상황이었다. 그저 믿음 좋은 교회 누나 중 한 명이었는데 덜컥 집사가 되던 날의 기억.


시만 해도 결혼도 하지 않은 처녀에게 집사 직분을 주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기도 했고, 나이가 아주 많은데 현실적으로 결혼이 요원해진 자매들에게만(주로 40대 이상) 주기도 했다. 고로 '결혼 전에 집사가 되는 것'에 대한 내 인식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뭔가 억울하단 생각도 들고, 이러다 바울처럼 독신의 은사로 살아가야 하나  하기도 했다. 참고로 사도 바울은 독신의 은사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케이스로 평생을 독신으로 지내며 주의 일을 하던 입지전적 인물이다.


20대 후반의 나도 배우자 기도를 나름 열심히 하며 믿음 좋은 청년을 만나길 고대하던 시간이었다. 그렇게 배우자를 찾고 찾았건만, 결국은 같은 교회 교회 동생과 결혼하게 되었다는. (관련한 내용은 '그 멋진 교회 오빠는 다 어디로 간 걸까?'를 참고하시길)



 번째로 집사 직분을 받다


그 후 무사히(?) 교회 동생과 가정을 꾸린 나는, 남편의 직장을 따라 잠시 충북 옥천에서 살게 되었다. 이번엔 남편은 물론 어린 두 남매까지 함께였다. 기존에 다니던 서울에 있는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 지역에 있는 교회를 찾아 섬기게 되었다. 본래 신앙생활을 했던 가닥(?)이 있어서인지 우리 부부는 '서울에서 온 열심 있는 부부'라는 소리도 들으며 교회에 나갔다. 참고로 시골 교회에서 젊은 사람들의 성실한 교회 출석과 활동은 서울에 비해 흔한 일이 아니므로 어르신들이 쌍수를 들고 반기시며 예뻐하신다.


그래서일까? 일정기간 동안만 그 교회에 출석할 수 있는 상황을 모두 알았지만 '집사'직분을 받게 되었다. 몇 개월 후 다시 서울로 돌아갈 계획이 있었기에, 한편에는 부담스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주시니 받기로 했다. 핑계일 수도 있지만, 당시는 어린이집 원생인 두 아이를 케어해야 했기에 주일예배도 겨우겨우 드리는 상황이어서 집사 직분에 걸맞은 봉사나 헌신은 하지 못했다.  부분은 아직도 마음이 불편하다...




세 번째 집사 직분, 그 의미와 무게


지금으로부터 1년 반 전, 지금 출석하는 교회에서 다시 집사 직분을 받았다. 그렇다 나의 세 번째 집사 임명식이다. 세 번째이자, 마지막이어야만 하는 시간.


이번에는 의미가 남달랐음을 고백한다. 집사 임명 횟수가 세 번째라 남다르단 이야기가 아니니 오해 마시길.


지금 출석하는 교회규모가 굉장히 크고 시스템도 잘 되어 있는 덕분인지 몰라도 다른 곳보다 집사가 되기 위한 교육을 강도 높게 받았다. 나 자신도 나이가 들고 가정을 꾸려가며 신앙의 성숙함도 있었으리라. 그래서인지 그 의미가 깊고 무겁게 다가오기도 했다.


그저 '집사'직분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기보다 성경적인 집사로서의 역할과 헌신에 대해 더욱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고나 할까.


그 흔한 '집사님'하고 부르는 소리가 이제는 묵직하게 느껴진다. 이런 것을 '거룩한 부담감'이라고 하는 것일까.




세 번째로 집사가 되고 달라진 게 있다면?


앞서 언급했듯이 더 이상 교회 집사가 그냥 흔한 호칭이라고는 여겨지지 않다. 엄연히 교회에서 임명한 평신도 사역자이자 교회의 중요한 일꾼이라는 생각을 확고하게 갖게 되었다는 것이 가장 큰 다른 점이다.


실제로 집사가 되고 나서 교회활동에도 조금씩 더 참여하고 있다. 이제 아이들이 서서히 자라나니 육아가 조금씩은 수월해지고 있는 덕분이기도 하고, 섬기며 봉사하는 일에 즐거움도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역시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것인가! 부정하진 못하겠다.


성경 사도행전에 나오는 일곱 집사님들 만큼은 아니지만, 내 위치에서 신앙적 사명과 섬김을 나누는 제대로 된 집사가 되고 싶은 소망이다. 세상에서는 '교회 집사가 왜 저래?'라며  아직 '집사'를 보는 시선이 곱지 않은 부분도 있지만 그 편견을 멋지게 타파해 버리고자 하는 다짐도 해본다.


그런 의미에서 내 남은 삶이 더욱 기대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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