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듣는 전화벨 소리가 어딘가 모르게 매우 오싹하고 날카롭게 피부를 자극할 때가 있다. 대학생으로서의 마지막 겨울. 11월 어느 날이 그랬다.
이른 아침, 평소와 다른 타이밍에 휴대전화 벨 소리가 울렸는데 안 좋은 느낌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여지없이 그 이상의 충격을 받았다.
나는 그날 친구 이상의 동료를 잃었다. 1년 늦게 대학에 입학한 탓에 무리에서 한 살 많은 나와 같은 나이이기도 했고, 기숙사 메이트이기도 했으며, ROTC 동기이기도 했다.
그 녀석은 그야말로 ‘경주마’였다. 아무리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운동과 훈련으로 아무리 몸이 고돼도 해야만 하는 일들은 반드시 실행에 옮겼고, 목표한 데까지는 어찌 됐든 자신을 다그쳐서 오르려고 했다. 그리고 그 목표에 자신만 아니라 주위의 동료들까지 데리고 한데 뭉쳐서 가려고 했던 보기 드문 친구였다. 그래서 우리는 그 친구를 앞만 보고 달린다는 ‘경주마’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
나는 누구보다 친하고, 그 친구의 삶을 공감하고 격려했다. 그리고 때론 존경했던 것 같다. 존경하는 인물을 책에서만 찾으려고 하지 않았던 나에게 그 친구는 영락없이 나에게 영감을 주는 인물이었다.
그랬던 친구를 잃었다. 꼬박 일주일을 울었고, 그중 삼일은 정신이 나가 있었다. 장례를 치르고 운구와 화장을 모두 마치는 날이 되어서야 받아들일 수 있었다. 다시는 그와 소주를 마실 수 없다는 것을.
여전히 매년 11월이 되면 그 친구를 찾는다. 살아낸 1년을 브리핑하고 나름 중요했던 일들을 덧붙인다. 푸념하고 핑계를 대기도 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늘 기도하고 고마움을 표현한다. 오래 머무르지는 않지만 떠올리고 온다. 그래야 그날 저녁 술자리가 춥지 않다.
누군가를 추억하는 매개체는 많다. 흔하게는 어떤 사물에 많은 기억을 묻고 추모한다. 또 다른 이들은 음악에 저장하기도 하고 특정 장소로 추억하기도 한다. 사람과 사연에 따라 각자의 방식들이 있지만 나에게는 막 추워지기 위해 시작하는 11월이 그렇다.
매년 올겨울은 유독 추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11월이지만, 늘 그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나오면 그럼에도 그럭저럭 잘 지낼 수 있겠다는 기분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