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감당하던 계획을 내려놓다
'안녕하세요. 저는 3월에 복직을 앞둔 ㅇㅇㅇ 주임입니다...'
자기소개도, 편지도 아니다. 복직을 앞두고 직장 상사와 통화하기 위해 적어둔 전화 시나리오다. 여유 시간은 좀 있었지만 중간에 설 명절이 끼어서 좀 더 서둘렀다. 결재를 받기 위해 언제 회사에 가겠다는, 건조한 약속을 잡아야 했다.
최대한 담담하게 목소리를 냈지만 사실 심장 소리가 귓가에 쿵쿵 들렸다. 엄마로만 살았던 지난 3년, 의미 있는 말이라곤 '삐용삐용'(경찰차 소리), '아니야, 찌찌'(애들 자제시키는 소리), '사랑해요'(듣고 싶은 말).. 뭐 이런 것뿐이었으니 다른 말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통화하기 가장 좋은 시간대를 찾고, 그전까지 몇 번 전화 시나리오를 읽어본 후에야 겨우 휴대폰을 들 수 있었다.
전화를 끊고 나니 등에 땀이 한가득했다. '나도 사회생활 좀 해봤는데, 새삼 다시 하려니 진짜 어렵네...' 한숨을 쉬고 나니 문득 허리가 굽어져 있는 걸 느꼈다. 영상 통화도 아닌데 몸이 한껏 겸손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는가 보다. 우두둑 소리를 내며 허리를 펴니 이제야 실감이 났다. 곧, 다시 사회인이 되는구나.
휴직 기간 동안 달라진 게 있다면 애사심이 커졌다는 점이다. 그러나 흔히 농담조로 말하는 '육아가 고되어서 회사로 돌아가고 싶다'는 류는 아니었다. 보는 눈이 바뀌었다고 할까. 현재 다니는 직장은 주말에 가족들이 나들이 가는 특수 박물관이다. 아이가 없을 땐 굳이 시간 내서 들르지 않지만, 엄마가 되고 나니 주말마다 다니는 공간들이다. 찬바람, 뜨거운 햇빛으로부터 아이들을 막고 알찬 놀거리도 있기 때문이다.
여러 문화 공간들을 다니며 자연스럽게 소속된 곳과 비교를 하게 됐다. 서비스를 제공만 하던 입장에서, 실제 주 고객층이 되어 체험하는 건 완전히 달랐다. 다니는 회사의 장점을 더 보게 된 것이다.
물론 실질적으로 일하지 않으니 휴직 기간이 일명 '허니문 기간'으로 작용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휴직 전과는 조금 다른 마음가짐을 가지니 복직하는 마음도 꽤나 설렜다. 전화를 끊고 육아기 단축 근무 등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계획을 점검했다. 시골로 이사 오면서 출퇴근 시간이 늘어나게 된 것을 감안해야 했다. 회사부터 집까지는 고속도로로 한 시간 반 가량 걸렸다. 이전에 도시에 살 때도 교통 체증으로 50분가량 걸렸었지만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출, 퇴근길이었다. 자연스럽게 집에만 있을 때는 쉽게 할 수 있었던 각종 보살핌들이 조금 소홀해질 것 같았다. 아이들의 안락한 생활에 지장이 없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주로 내 휴식시간을 줄이는 방향으로 고민을 했다.
일상을 거의 그대로 영위하는 일에 대해 생각하자 머리 쪽에서 극심한 통증이 이어졌다. 휴식을 줄인다는 건 피치 못할 일로 어떻게 보면 쉬워 보였지만 그 생활을 지속 가능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지금도 대도시에 놀러 가기 위해 운전석에 앉으면 너무나 피곤한데 그걸 주 5일 동안 해야 하다니.
상상을 해봤다. 일하는 공간이 매우 크기 때문에 퇴근을 하고 나면 대략 1만 보는 우습게 걷는다. 그렇게 걷고 나서 부은 다리로 멍하니 차에 오른다. 풍경은 시시각각 바뀌지만 해가 지면서 그 모습들도 점차 어둠에 잠길 것이다. 아이들에 대한 생각, 업무에 대한 생각을 번갈아 하다 보면 어느새 집에 도착할 것이다. 장거리 운전을 마친 몸을 한번 탈탈 턴다. 주차장에서 집까지 걷는다. 문을 연다. 나만 기다리던 아이들이 달려와 얼굴을 비빈다...
'예전에 엄마는 어떻게 우리를 키웠지. 단축 근무도 없었던 그 시절에.'
피곤한 얼굴로 집에 들어서던 부모님이 떠올랐다. 늦은 저녁 들어서는 부모님은 찬 바람의 냄새와 피곤함에 찌든 특유의 냄새를 달고 나타났었다. 어린 남매였던 나와 동생은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있다가 부모님께 달려가 폭삭 안겼었다. 이젠 내가 그런 류의 냄새를 아이들에게 풍길 터였다. 물론 예전에는 다 그랬다고들 하지만 그건 우리네 어머니의 초인적인 힘에 감탄할 일이지, 정답으로 추구해야 할 것은 아니었다.
'정답이 아니다..?' 문득 나는 복직의 부담을 혼자 짊어지려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은 육아를 돕는 수준을 넘어 함께 해가는 주요 축이다. 함께 휴직도 냈었기에 아이들을 누구보다 능숙하게 돌봤다. 그런데 왜 미래 계획을 세울 때 혼자 끙끙대고 있었을까. 이번에는 남편의 존재를 계획에 넣고 다시 고민해 보았다. 온전히 휴직 중일 때보다 힘들다는 건 변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한결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맨날 직접 만들던 반찬도 좀 사고, 가까이 사시는 시부모님 도움도 필요하면 요청하고... 시야를 넓히니 주변이 보였다. 아이들의 시간을 엄마의 부재로 메우는 게 아니라, 여러 사람들의 다채로운 사랑으로 채울 수 있는 방안들이었다.
생각의 회로를 '나'에서 '우리'로 넓히고 나니, 출근길 1시간 반의 고속도로도 전환의 시간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직장에 적응이나 잘하자. 남들은 가정에 직장 스트레스를 가져가지 않으려고 일부러 전환할 거리를 찾는데 나는 잘됐지.' 바뀔 건 없으므로 긍정 회로를 돌리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니 생각이 도착한 지점은 '내가 되고 싶은 사회인의 모습'이었다. 엄마가 좋다는 아들, 아예 커서 엄마가 되겠다는 딸.... 나를 비추는 아이들에게 좀 더 나은 모델이 되고 싶어졌다. 새로운 목표가 생기자 조금은 마음이 편했다. 굽었던 허리를 한번 더 쫙 펴고 기지개를 켰다. 완벽한 엄마가 되겠다는 욕심은 그대로지만, 그걸 혼자 해내겠다는 착각을 내려놓았다. 새로운 방향으로 바뀐 내가 3월을 기다린다. 삐용 삐용 소리 대신 각종 서류들의 바스락 거림을 들을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