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시선에서 도망치기
삶이 무료하다고 느껴질 때 기분을 빠르게 전환할 수 있는 필살기가 있는지. 나는 있다. 심지어 그 루틴들에 [삶을 이어가게 하는 미친 짓]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미쳤다고 정의한 이유는 일상을 살면서, 그러니까 점잖은 척 하는 사회인으로서 살아갈 때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의 시선도 고려하지 않고, 순전히 기분 전환을 위해 하는 일이다.
오늘은 그 미친 짓을 글로 밝힐 것이다. 습습, 후후..... 좀 긴장된다. 나를 꽤 잘 아는 지인도 모르는 내 모습이라 그렇다. 삶이 좀 무료하다면, 참고해주시기를. 효과는 보장한다.
출근 길, 아직 회사에 가서 앉지는 않았지만 이미 치열한 업무가 예상될 때 유용하다. 노래 선곡은 걸그룹 노래 메들리가 좋다. 대체로 걸그룹 노래들은 밝고, 가벼운 느낌이라 기분까지 좋아진다. 다만 따라부를 수 있어야 하므로 신곡보다는 시간이 좀 지난 곡들을 고른다. 그리고 신나게 부른다. 한 가지 팁은 처음부터 높은 음의 곡을 부르면 목소리가 갑자기 잠긴다는 거다. 처음에는 입을 다물고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잔잔하게 리듬을 타다가, 회사가기 직전부터는 박자도 빠르고 신나는 노래로 달리는 게 좋다.
빨간 불에 차가 멈춘 시간은 춤을 추는 시간이다. 다리는 브레이크와 악셀을 밟아야 하므로 가만히 놔두고, 어깨와 팔을 활용해 가볍게 흔들 흔들 한다. 이때 주변에 있는 다른 운전자가 이상하게 쳐다볼 수도 있지만 1분 내로 스쳐지나갈 사람이므로 신경쓸 필요 없다. 몸을 움직이는 건 생각보다 효과가 커서 기분을 빠르게 전환시켜준다. 이렇게 출근하면 기분도 좋고 목소리도 트여서 사무실에 들어갈 때에는 늘 유쾌한 본인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퇴근하고 난 다음이라면, 맥주를 한 잔 하며 춤추는 루틴도 고려해볼만 하다. 이럴 때 음악은 주로 클럽 음악을 고른다. 사일런스 디스코 라고 아시는지. 각자 이어폰을 끼고 조용히 즐기는 댄스 파티다. 이미 사회적으로도 공공연하게 기획되는 이벤트이니 특별할 건 없다. 그러니까 쑥스러워 말고.....
사실 이어폰을 이용하는 가장 현실적인 이유는 내가 소음에 다소 취약한 곳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흥을 옆집 사람들이나 주변 이웃들에게 강요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래서도 안되고. 그래서 내 귀와 머리 속에만 꽉 차도록 노래를 틀고 춤을 춘다. 불을 끄고 캔들 워머나 보조등만 켜두면 기분이 훨씬 더 업된다. 왜냐하면 전문 댄서가 아닌 이상 보통 엉망진창으로 춤을 추고 있을텐데, 그 몸짓을 그림자로 보고 있으면 너무 웃기기 때문이다. 한 손에는 맥주 잔을, 다른 한 손은 리듬을 타면서 놀다보면 걱정과 근심을 잠시 잊을 수 있다. 해외의 어느 근사한 파티에 초대받은 착각을 해볼 수도 있고. 아, 물론 숙면은 덤이다.
.... 그럼 마지막으로 내가 왜 이 루틴을 만들게 됐는지 설명하겠다.
한동안 아무 글도 쓸 수 없었다. 브런치는 물론이고 개인 SNS 계정에도 그랬다. 이유를 꽤 오랜 시간 생각해봤는데, 겨우 두 가지 정도로 정리해냈다. 먼저 '자의식 과잉'에 대한 불안감. 그러니까, 내가 쓰려는 글이 'TMI(Too Much Informations)'면 어떻게 하지, 싶은 걱정이다. 다들 그런 경험 있지 않나? 중학생 시절 나름대로 멋지다고 생각하고 써놓은 글귀가 지금 와서 보면 코웃음 쳐지는 경험. (참고로 나는 중학생때 쓴 일기를 청소하다가 우연히 발견했는데, 한참 깔깔대며 웃다가 다시 그 자리로 깊숙히 넣어버렸다. 음... 지금 다시 생각해도 몸서리가 쳐진다.) 설마 위에 써진 저런 일도 시간이 지나면 이불을 뻥 차고 싶은 업적이 될까? 인간은 어차피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그 명제를 굳이 깨고 싶은 마음도 없고 그럴 힘도 내겐 없는 것 같다.
또 다른 이유는 내 글이 '낙인'이 될까 염려됐다는 거다. 예를 들어 나는 최근까지 호기롭게도 '세계 맥주 애호가' 라고 스스로를 정의했었다. 실제로도 맥주를 참 좋아해서 그건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맥주 애호가라고, 전문가 행세를 하기엔 나의 미각 취향이 무딘 게 문제였다.
그러니까 예를 들어 '진짜 맥주 애호가'가 되려면 1) 세계의 모든 맥주들을 섭렵할 기세로 왕창 마신 다음 2) '음, 이 맛은 어떻고 저렇네요. 에헴에헴' 하고 평가를 하고 3) 그런 데이터를 바탕으로 누군가가 '이런 날은 어떤 맥주를 마셔볼까요?' 물으면 답해줄 정도의 경지까진 올라야 한다.
그런데 나는 1)의 루트만 충실히 반복하고 있기 때문에 애호가고, 뭣이고 그런 게 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지금부터 시작인데, 이렇게 그냥 술을 좋아하는 애가 3)의 코스, ("미지 씨가 맥주 애호가죠? 오늘 전 뭘 마셔보까요? 추천해주세요.") 하는 질문을 종종 받다보니 미쳐버릴 지경이 됐다. 결국 최근에는 이렇게 고백하기에 이르렀다. "저, 맥주 전문가는 아녜요. 카x를 제일 좋아하거든요. 소맥 말 때는 테x를....."
물론 SNS에서도 그 타이틀을 슬며시 내려놨고. 그냥 술 좋아하는 사람인 걸로 스스로 정리했다. 애호가는 무슨. 그나마 이건 나에 대한 낙인이지만 다른 사람에 대해 내가 쓴 글 때문에 누군가 그를 낙인찍는다고 생각하면 괜시리 미안하고 끔찍한 기분이 든다.
결국 '남들 눈 때문에' 뭘 쓰지도, 말하지도 못한 상태-라고 정리할 수 있을까. 온라인에 뭔가 생각을 남기면 온*오프라인에서 시시각각 반응이 오니까. 타인이 글(과 현실)속의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 기대에 얼마만큼 부응해야할지 고민하게 된다. 대체로 그게 참 좋은데 (이럴 때 스스로 조금이나마 관심종자 DNA가 있음을 알게 된다), 반복되면 '남들은 나한테 그렇게까지 관심 없어'하며 애써 시선들을 끊어내야 조금 숨이 틔일 때가 있다. 혼자 엉망진창으로 춤추고 노래하는 건 그런 과정인 것이다. 이 세상엔 나 혼자고, 결국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자유선언!
광란의 자유에 흠뻑 젖어있다보면 다시 남의 시선을 즐기는 무대위의 삶이 그리워질테다.그럼 또 생각과 말을 쏟아내고, 다시 삶을 이어갈 것이다. 그러면 난 또 남들 몰래, 남들이 보면 미쳤다고 할 그 행동들을 하며 자유를 찾고....
타인의 시선을 끊어내지 못하는 이상, [삶을 이어가기 위한 미친 짓]은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