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증은 사진 한 장에서 시작됐다. 백발이 성성한 한 할머니. 인형을 쳐다보는 눈빛은 애틋하고 다정하다. 할머니 뒤로 아기들의 사진이 도배돼있다. 왜. 아기들이 가득한 저 방에서, 저 할머니는 인형을 바라보고 있는 것인가. 마치, 엄마가 아이를 보듯.
안세홍 작가가 가장 아끼는 작품. 이수단 할머니의 모습.
며칠 전,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들의 현재 모습과 삶, 그리고 과거 위안소였던 곳들을 찍은 사진전에 들렀다. 다음날에는 사진을 찍은 안세홍 작가와 인터뷰 약속이 되어있었다. 안세홍 작가에 대해 잠깐 설명하면, 일본에 거주하며 일본군 성노예 문제를 일본과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활동하는 사진가다. 젊은 시절 잡지 기자로써 일본군 성노예 관련 취재를 하다가, 마음이 한없이 무거워져 움직이지 못하고 피해자들 옆에 남았다.
3년 동안은 사진기를 내려놓고 봉사활동부터 했다고 한다.그는 피해자들이 마음을 열게 된 이후부터 겨우 카메라를 들었다. 그렇게 시작한 일이 20년 넘게 진행 중인 '겹겹 프로젝트'다. 겹겹이 쌓인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들의 아픔을 표현하는 일이자, 그 아픔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을 쌓는 일이다. 그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노력한 덕분에 시간이 더해질 수록 겹겹이 쌓인 피해자들의 아픔도 조금씩 알려지고 있다.
앞서 언급한 사진은 안세홍 작가가 가장 애정을 가지고 있는 작품이라고 했다. 사진 속 피해자의 이름은 '이수단'. 중국에서 일본군 성노예 생활을 하다가 일본 패망 후, 위안소 근처에 정착했다. 전쟁은 끝났지만 고통은 끝이 아니었다. 몸이 크게 망가져 결국 아이를 낳지 못하는 몸이 됐고, 남편도 술에 취해 폭행을 일삼았다. 나이가 들면서까지 유일하게 남은 건, 끝없는 고통과 아이에 대한 열망이었다. 치매가 그를 삼키는 와중에도 이수단 할머니는 아이에 대해 집착했다. "너, 엄마 아빠 없니. 나랑 살자" 선물받은 인형에게 건넨 첫 마디라고 한다. 수많은 아기 사진을 방에 붙여두고, 인형을 보듬던 그녀는 3년 전 쯤 하늘로 갔다.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에 대해 이야기할 때 항상 나오는 사진. 임신한 피해자는 박영심 씨다.
그런데 이 외에 소개할 사진들은 맥락이 좀 다르다. 특히 일본군들과 위안부 피해자들이 함께 소풍을 가서 찍었다는 단체 사진이 눈에 띈다. 잠깐, 소풍이라고? 그러고보니 어떤 사진들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은 예쁜 옷을 차려입고 독사진을 찍거나, 카메라를 편하게 응시하고 있다. 이수단 할머니를 한번, 소풍 나온 피해자들을 다시 한번, 보고 있자니 작가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어색해요?"
희노애락이 있다, 라고 했다. 인권을 유린당했던 그 젊은 날, 피해자들에게도 희노애락은 있었노라고. 그런데 피해자들의 고통조차 잘 드러나지 않다보니 그녀들의 기쁨과 즐거움은 더 쉬쉬, 감춰진 거라고 했다. 그제야 오래 전, 누군가에게 들은 이야기가 이해됐다. 현재 진행형인 역사적 아픔들을 과거로 박제시키는 방법. 사회로부터 상처입은 사람들의 사연을 단순화시키고 극대화 시키는 것이라고 말이다. 아직까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민주화 열사들의 용기를 영웅들의 일대기처럼 포장하거나, 국가로부터 상처입은 사람들의 어려움을 더 크게 과장시켜 평범한 일상과 유리시키는 것처럼.
소위 '위인'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거리를 떨어뜨리는 건 '단순하면서 강렬한 서사'다. 도저히 '내 일' 같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할까. 마음을 좀 더 써서 인권 등 큰 주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딜레마에 빠지기 쉽다.
달과 지구의 관계같다- 고 생각한다. 달은 지구에서도 아주 잘 보이지만, 그 거리는 태양계 모든 행성을 다 집어넣어도 남을 정도로 멀다. 5.18이나 근로정신대, 위안부 문제 등도 이미 강렬하고 절박한 사연들이 널리 알려져있다. 하여 대충 내용은 알지만 바로 그 강렬함 때문에 다수의 사람들에게는 와닿지 않기도 하다. 사회적, 역사적 아픔을 다룰 때 우리는 어떤 태도여야 하는지 고민이 깊다.
어쨌든 작가님의 말을 듣고 나서 사진들을 다시 처음부터 봤다. 그제야 그저, 애잔한 대상이었던 그녀들의 뒷 이야기가 들린다. 고통 뒤에도 삶이 이어졌고, 가정을 이뤘고, 또 더러 행복했던 이들의 이야기가 들어오기 시작한다. 왜 피해자들이, 돈이 아니라 진정한 사과를 원한다는 건지 조금 와닿기 시작한다.
이미 피해자들과 가까워서 서사를 알고 있는 이들을 더 많이 만나야겠다 생각했다. 더 알아가고 더 많이 알려야겠다고 결심했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머릿속에선 막연한 하늘에 로켓 하나가 쏘아올려졌다.
**안세홍 작가와의 방송 인터뷰 영상(2019.11.8. 광주mbc 뉴스투데이) 링크는 아래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