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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지의 세계 Nov 04. 2021

시절을 대표하는 억울함

가장 억울했던 일 써보기

취업 준비생 시절의 얘기다. 희망 직종이 뚜렷해서 채용 공고를 따라 전국을 돌며 면접을 보러 다녔다. 그리고 우연히 아버지 고향에 있는 한 회사에서 합격 통보를 받았다. 인근에는 가까운 친인척과 할아버지, 할머니도 살고 있었다. 타지이긴 하지만 잘 적응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우리 집에 방 하나가 비는데, 여기 와서 살면 어떠냐.” 할아버지, 할머니는 기꺼이 방 하나를 내주겠다고 말했다. 이사하던 날 할아버지, 할머니께 크게 두 가지를 약속드렸다.


“매달 얼마 간의 생활비를 드릴게요. 그리고 두 분의 일상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독립적으로 생활하겠습니다.”

“그래, 그래. 생활비도 안 줘도 되는데 그래야 마음이 편하면 그렇게 해라.”


할머니는 손녀가 출근하기 전, 가장 영양가 있고 맛있는 아침밥을 내주었다. 또 손녀가 퇴근하기 전에는 빨래를 정갈하게 개 침대에 놔주기도 했다. 서비스를 받는 손녀 입장에서는 감사하기도, 죄송하기도 했다. "됐어. 내가 좋아서 하는 건데, 뭐." 손녀가 말릴 때마다 할머니는 손사래를 치며 아침을 차리고, 빨래를 갰다. 호의를 당연하게 받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설거지를 도맡아 하고, 월급날에는 소고기를 사 오곤 했다. 생활은 빠르게 안정을 찾았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어른이 돼서 아직도 할머니가 내 빨래와 집안일을 해주냐는 것이었다. 이미 몇 차례 말려도 봤다고 말했더니 타박이 이어졌다. "작은 아빠가 와서 그러더라. 어머니가 너무 힘들어하고 계시다고. 너 혼자 빨래나 밥 차려먹는 건 못하냐고 물어보던데."


당황스러웠다. 자식이나 손녀를 위해 기꺼이 희생하려는 부모 마음을, 무리가 되지 않는 선이라면 존중하는 게 효도라 믿었다. 그게 뒤에선 부담이었던 모양이다. 억울함을 호소하자 엄마가 말을 덧붙였다. "할머니가 너한테 괜찮다고 했으면 아마 작은 아빠한테 투정을 부리고 싶으셨던 모양이야. 실제로는 견딜 만 한데 그냥 좀 알아달라고 하고 싶을 때 있잖아. 그러니 네 할 일은 앞으로 네가 해."


할머니와 뭐라고 말을 해봐야 할까 고민하는 사이 퇴근 시간이 됐다. 집에 가니 평소처럼 밥상이 차려져 있고, 빨래도  개어져 있었다. 나는 할머니를 부르려다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묵묵히 밥그릇을 비웠다. 그때의 억울함은 완전한 독립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됐다. 생활이 분리되지 않으면 의도치 않게 어른들의 호의를 계속 받으며 살게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때의 기억은, 살면서 가장 억울했던 기억이자, 이제 별로 감흥 없는 추억이기도 함을 고백한다. 시간이 꽤 지났기도 했거니와 더 이상 비슷한 상황에서 억울함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당시엔 사회 초년생이었던 상태가 반영된 것 같다. '독립적인 어른'이 되고 싶었지만, 한편으론 몸과 마음을 가족들에게 의지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을 만큼 불완전한 시기. 그 간극을, 그땐 납득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아직도 도움을 받고 있느냐는 현실 진단에 더더욱 예민하게 반응했다. 지금은 좀 다르다. 스스로의 불완전함은 어느 정도 초연하고 있다. 작은 억울함은 그냥 적당히 흘리는 게 정신 건강에 낫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고 보면 시절에 맞는 억울함이 있는 것 같다. 어렸을 적에는 친구들이 나를 이해해주지 않으면 억울하고 서운했다. 지금은 아니다. 또 나의 가능성과 진면모를 알아주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 억울한 마음이 들 때도 있었다. 지금은 스스로만큼 내게 관심을 가이가 없다는 걸 안다. 중요한 건 내가 날 어떻게 생각하느냐,라고 지금의 내가 생각한다. 나도 다른 사람을 완전히 이해하기 어려우니까.


 그래서일까 요즘은 억울하더라도, 개인적인 일보다는 좀 더 의미 있는 일에 억울하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예를 들자면 환경 파괴로 죽어가는 동물들, 사회 시스템의 문제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 빈부 격차로 재능을 피우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서 억울할 수 있다면 좋겠다. 요즘의 나는,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행동과 감정을 느끼는 게 제일 중요하다. 앞으로 올 시절 동안 어떤 억울함을 느낄지 모르겠다. 다만 어느 시절에 돌아봐도 공감할 수 있고, 여전히 억울하며, 다른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억울함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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