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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지의 세계 Jul 07. 2018

소신투표에 대하여

정부, 를 주제로 한 에세이

 정부 구성은 투표에서부터 시작된다. 투표는 시민들이 정부에 끼치는 최초의 힘이자, 최후의 개입이다. 오늘은 투표와 관련된 경험에 대해 몇마디 나눠보려 한다. 별 건 아니고, 소신을 지키기 위해 싸웠던 소소한 투쟁기 정도다.



# 2013년, 반항


2013년 대통령 선거 투표 날. “너 누구 찍을거니?” 어머니는 투표소로 가는 길에 몇 번이고 딸의 표심을 확인하고 있었다. 정치판이 보수 대 진보 대결로 숨 가쁘게 진행되고 있던 시기였다. 이미 나의 마음은 문 밖을 나서기 전, 선거 공보물을 살피던 시간에 정해져있었지만 어머니는 그런 나의 결정과 노력 따위를 존중해주기엔 너무 절박했던 것 같다. 표 하나 하나가 소중한 시기였기 때문일 것이다. “찍어야 되는 사람, 알지? 그 사람 찍어야 돼, 알았지?”


그러나 당시 어머니는 작전을 잘못 짰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특정 후보를 단언하며 지정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반항의 동력이 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주체성’을 찾기 위해 방황하던 청년이었기에 부모님과 전혀 다른 선택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몇 자 적혀있지도 않은 공보물을 뚫어지듯 위 아래로 열심히 훑었던 것이다.


사실 어머니가 주장하던 사람은 나 역시 평소 이상적인 후보자로 꼽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공보물의 내용이 너무 부실하고 모호한 점이 단점이었다. 반면 평소 눈여겨보지도 않던 후보의 공보물은 각종 공약들이 보기 좋게 요약되어 있었다. 고민이 되었지만, 부모님의 강력 주장을 역풍 삼아 마음의 결정을 했다. 투표소 안에서 나의 도장은 어머니가 그토록 부르짖었던 이가 아닌, 다른 칸에 안착했다. 엄마, 미안. 꾸욱.



“비밀 투표야”라며 현장을 떠나려는 나를 붙잡고, 다그치듯 묻는 어머니를 보자 어떤 반응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의미심장하게 웃어보였고, 어머니는 절규에 가깝게 소리쳤다. “아이고! 기어이 다른 사람 찍었구나. 나라 망하겠다! 이번에 그 사람 당선 안 되면 네 탓이다!” 이후 촛불 정국이 이어질 때 까지, ‘자알 돌아가는 나라꼴’은 나의 탓이 되었다. 순전히 어머니가 지지하던 그 사람이 대통령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별수 없이 나는 주말마다 촛불을 들며 누군가에게 열심히 용서를 빌었다. 물론 당시 사회는 누구든 충분히 불끈하는 마음을 가지고 촛불을 들 법한 상황이지만, 일종의 죄책감을 얹었던 나는 더욱 열심히 참여했던 것이다. 나라를 말아먹었다는 죄책감! 그리고 마침내 기적처럼 대통령을 다시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 2017년, 거짓말


2017년 대통령 선거 날. 이번에는 주변에서 집요한 질문이 따라붙었다. “야, 너 누구 찍을 거냐?” 일주일 전부터 표심을 살피던 선배는 마치 유력 후보자의 선거캠프에서 나온 사람 같았다. 하루는 나를 붙잡고 “넌 누구 찍을 거야?” 하기에 솔직하게 ‘누구요-’ 하니까 될 후보를 찍으라고 독촉을 했다. “네에~”하고 얼른 대답했지만 역시나 그 사람을 뽑지는 않았다. 그 선배가 투표소 안까지 보고 있을 리도 만무하고 무엇보다도 이건, 내 권리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번에는 치기 어린 반항심은 없었다. 그저 내 권리를 다 했을 뿐!)


문제는 투표 직후, 어김없이 지인 출구조사가 시행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선배의 말을 듣지 않는 이들에게는 약간의 갈굼(?)이 함께하는 그런 출구조사였다. 거짓말에 서툰 나는 어떻게 멘트를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고, 그러는 사이 선배는 점점 내게 가까이 왔다. “야, 너는 그때 니가 말한 그 사람 결국 뽑았냐?” 예상했던 것 보다는 아무렇지 않은 말이었지만, 이미 준비하고 있던 말이 있었다. 내 입에서는 자연스럽게 거짓말이 튀어나왔다. “아휴~ 될 사람을 뽑아야죠, 하하하”


결국 그 선배가 이야기하던 사람은 당선이 되었고, 내가 (남몰래) 지지했던 후보는 낙선의 쓴 맛을 봐야 했다. 하지만 이렇게 뽑힌 대통령이 아직까지 높은 지지율 속에 국정운영을 해나가고 있으니 얼마나,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아니었다면 나는 죄책감에 다시 한 번 촛불을 들거나, 아니면 더 큰 사죄 행위를 고민해야 했을 것이다. “제가, 그 분을 뽑지 않아 감히 우리나라를 망쳤습니다!”



#다시.. 투표.


 억울한 마음에 감정이 격해진 것을 양해 바란다. 우리나라는 나라가 위기일 때 ‘될 사람’을 뽑지 않은 유권자, 또는 ‘성군’을 뽑지 못한 유권자가 무조건 책임감을 나눠야 한다. 도망갈 수는 없다. 이미 주변 사람들이 누굴 뽑았는지, 그리고 그 선택이 잘못 된 건지, 아닌지를 검증해뒀기 때문이다. 이런 일들은 민주주의에서 죄악시 되는 것, 즉 ‘사상을 검열하는 일’인데도 이런 일들이 ‘그냥 궁금하니까’ 정도로 치부되는 것이 무척이나 괴롭다. 우연히도 투표에서 전부 비주류를 선택한 유권자로서 매번 그 책임감을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내 삶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데 국가의 방향성까지 마음 졸이며 책임져야 한다면, 이거 개인한테 너무 가혹한 거 아닌가. 당연히 신경 안쓰면 그만이지만, 신경 안쓸 수 없게 하는게 문제다.


사람들은 그저 각자의 사상과, 나름대로의 책임감을 바탕으로 투표를 한다. 따라서 여론이 좋지 않은 특정 정당을 선택했다 해서 우매하다거나, 발전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특정 정당을 강하게 지지하는 사람들일수록 반대 정당을 ‘악’으로 규정하는 오류에 빠진다. 이런 인식은 스스로 편견에 갇혀 결국 상대를 몰아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악을 몰아내기 위해 선택을 강요하는 순간, 그 역시 폭력적인 악이 된다. 민주주의를 저해하는 악.


2년 뒤에는 또 총선거라는 선택의 순간이 온다. 물론 나는 이번에도 주류, 비주류 따질 것 없이 소신 투표를 할 것이다. 다만 이번에는 거짓말을 꾸며내거나 할 마음이 없다. 그래서 제발 이번에는 누군가에게 도장의 행방을 묻지 말아주기를 바라고 있다. 아, 물론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내가 직접 말을 한다면 그건 예외다. 요즘 투표 결과를 알려주는 방송이 참 재미있던데, 그냥 각자 알아서 마음 가는대로 꾹 찍고 손에 땀을 쥐면서 결과를 지켜보면 어떨지 싶다. 재미있기도 하고, 우리가 시행하려는 민주주의에도 한 걸음 다가서는 방법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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