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도 나이를 먹나 보다. 해가 가면 갈수록 장마가 다르다.
비가 잔뜩 내리는 여름의 시골에서 비에 젖은 풀향을 맡으며 수박을 먹던 기억이 선명하다. 수박은 달디달아서 자른 면이 설탕처럼 희다. 옆에는 누렇게 색이 바랜 선풍기가 끽끽 소리를 내며 여럿의 더위를 식히느라 분주히 회전을 하고 있다. 그런 여름은 유난히 길었고 유난히 비가 많이 내렸다. 늘 마루 끝에 앉아 혹은 누워 문 밖을 바라보며 긴 장마의 끝만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고 나면 비로소 무더위가 찾아오고 우리는 그 쨍한 여름 햇살 아래 시원한 계곡물에서 더위를 식히곤 했다.
지금은 사뭇 다르다. 일에 지쳐 집으로 돌아오면 후텁지근한 날씨에 신경질적으로 에어컨 리모컨을 찾는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쾌적한 습도와 온도가 맞춰지면 곧 이성을 찾는다. 종일 내린다던 비는 언제 그랬다는 듯이 또 멎고 맑다. 게릴라성 폭우 동남아식 장마라는 말들이 뉴스에서 들린다. 장마가 바뀐 건지 내가 바뀐 건지 모르겠다.
아무튼 그렇게 장마가 나이가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