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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음에 또 가야지

귀국길, 여행을 약속하다

by 드은

2023년 1월 캐나다 밴쿠버 국제공항


캐나다 밴쿠버 국제공항. 탑승 전, 출발 일정이 연기됐다고 방송이 나온다. 한국어로 방송을 해도 잘 안 들리는 항공편 공지를 영어로 들으려니 눈치껏 주변 분위기를 보게 된다. 비행기 탑승 게이트 앞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의 태도를 보고, 흐름을 읽어본다. 커플이나 젊은 친구들의 반응이 제일 빠르다. 흘러가는 분위기를 보니, 다들 눈이 동그래지고 여기저기 살핀다. 휴대폰을 급하게 꺼내 누군가에게 연락을 하는 뽐새가 백발백중 지연 소식이다.


밴쿠버 공항 멀리서 보이는 설산을 앞에 두고 탑승구에서 사진을 찍으며 이번 여행 메이트였던 친구와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는다. 친구는 급하게 결정된 이번 여행이 만족스러운가 보다. 해준 것도 없는데 고생했다는 말을 계속 흘린다. 미안함이 계속 남았나 보다. 그 말을 들으니 도착부터 지금 그 순간까지 툴툴거린 내가 참 못났다고 생각한다. 코로나19로 본격적인 팬데믹이 우리 앞에서 모습을 감춰갈 때, 2년 간의 공백을 뒤로하고 떠난 여정이었다. 여전히 마스크를 착용해야 할까 서로 눈치를 보며, 분위기를 읽는 시기.


멀리 설산이 보이는 캐나다 밴쿠버 국제공항 탑승장


고흥에 터를 잡고 오랫동안 자리 잡은 유 씨 집안에 첫째 딸이던 나의 여행 메이트는 6명의 여동생을 두고 있는, 말 그대로 K 장녀다. 학창 시절 손재주가 남달라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어도, 뛰어난 미술 실력으로 받아온 상장. '예술'은 돈이 많이 든다는 생각과 아들을 끝까지 원했던 아버지에게 찢기곤 했다.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그녀는 그렇게 꿈보다는 현실 속에서 흐르는 대로 살아왔다.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것조차 생각할 겨를이 없었던 그녀는 그렇게 항상 미래를 그리며, 현재에 최선을 다해 살았다.


그녀 입에서, 소소한 생활 속 욕심이 아닌 무언가를 하자고 욕심을 부리는 모습. 낯설었지만 당차 보였다. 상장을 찢기기 전에 교복을 입었던 그녀의 모습은 마치 그 모습과 같지 않을까.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귀국 편 항공편 탑승을 앞두고, 그녀는 수줍지만 나에게 말했다.


'한국은 몇 시쯤 도착하려나. 다음에는 낮 비행기보다는 밤 비행기를 타는 게 낫겠어.'

'다음에? 다음에 또 가려고?'

'그럼 다음에 또 가야지.'


본인이 말하면서도 수줍어하는 그녀의 또 다른 욕심은, 마치 내가 운영하는 여행사의 투어 상품에 참여한 고객님께서 리뷰 별점 5개를 받은 것 같은 느낌을 들게 했다. 사실 그녀는 약 10년 전, 나의 6개월 미국 어학연수를 투자했던 투자자이기도 했다. 마음 한편으로 항상 투자자의 인풋에 적합한 아웃풋을 제공해야 한다는 마음의 짐이 남아있다. 어쩌면 해외에서 나의 여행 메이트와 함께한 시간은 내가 그녀의 투자가,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무대이기도 하다. 어쩌면, 다음이 있을 수도 있겠다. 그러면 다행이다. 고객님을 만족시켰다니, 이제 마음이 놓인다.


그렇게 우리는 함께 여행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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