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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결 Apr 13. 2021

점점 나아진다

매일 글쓰기

연습을 한번 빠지면, 그다음 빠지기는 더 쉽다. 어떤 일을 해야 하는 이유보다는 안 해도 되는 이유를 찾는 게 더 쉬워진 요즘이다. 일주일에 한 번 있는 노래 연습을 감기몸살로 한번 건너뛰니, 아직 완쾌되지 못한 몸이 보였다. '가지 말고 니 몸이나 추슬러.' , '이 정도 나아졌으면 나가는 게 예의지, 아님 그만두던가.' 하는 두 목소리가 귓가에서 윙윙 윙윙.


그만두고 싶지는 않은지, 분주하게 아이들 저녁을 차려주고 집을 나섰다. 하루 종일 비가 내린 월요일이었다. 저녁까지도 멈추지 않고 비는 내렸다. 추적추적. 나는 비가 싫다. 나갈 때 챙길 게 많아지는 것도 싫고, 옷과 신발이 비에 젖는 것도 싫다. 추운 것도 싫고, 젖은 몸의 찝찝함도 싫다. 그런 비를 뚫고 간다. 연습을 가고 있다.


완전한 체계가 잡혀 있지 않은 밴드는 연습의 체계도 만들어가고 있는 과정이라, 5월에 있을 특송을 연습하는 것을 중심으로 노래 몇 곡 부르다, 새로운 안건이 나와 그것에 대해 토론하다, 잡담으로 이어졌다. 나는 그냥 노래나 부르지 싶었다. 어깨가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사람이 모이는 곳이라, 당연한 수순인데도 이런 걸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목적 외 잡담. 왜 그렇게 시간이 아까운 걸까.


'어떻게든 견딘다'라는 특기를 살려 그 시간을 통과하고 연습시간을 마무리했다. 집에 오니 몸살감기가 다시 찾아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또 하루를 잘 살았다는 충만함 또한 함께 공존했다. 내가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 나에게 불필요한 것이라는 것과 동의어가 아님을 언제부턴가 깨닫게 되었다. 내가 원치 않는 것이라도 적정한 수준으로 견디다 보면,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리라는 것도. 모임에서 잡담이 어느 정도 끼는 것도 그런 것 중 하나라는 걸 안다.


오랜만에 잠을 푹 잤다. 어젯밤에 연습 갔다 온 게 나에겐 맞는 결정이었고, 마음으로 무언가 채워지는 게 있었나 보다. 잠을 잘 자서 그런지 오늘 컨디션은 꽤 괜찮다. 오늘도 힘내서 잘 살아봐야겠지? 너무 내 생각안에만 갇히지 말고, 조금 나에게서 비껴가면서, 진짜 나를 찾아가는 하루를 보낼 수 있기를.



연습 가는 길에 본 비에 젖은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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