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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결 Sep 06. 2020

시간 가계부

매일글쓰기 D-6  with conceptzine

엄마 집에서 엄마가 그리던 수묵화를 보고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지금 나에겐 할 일이 너무 많으니 그것까지 할 시간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아, 아무것도 할 게 없는 상태에서 내 하고 싶은 것만 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지금 하고 있는 것들도 내가 하고 싶어서 시작한 것이 아닌가?


시작하는 건 쉬운데 지속하는 힘이 부족했다. 이것저것 재밌어 보이는 것들은 많았지만 끈기 있게 끝까지 하는 건 드물었다. 왜? 한 가지를 하면서도 또 재밌어 보이는 뭔가를 아무런 의심 없이 시작해 버리기 때문에 나중에는 시간의 한계가 와버리는 것이다. 시간의 무분별한 소비. 돈만 그렇게 쓰는 게 아니구나.



지금까지는 돈에 대한 예산을 세우고 가계부를 쓰는 것과, 시간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시간을 가계부 형식으로 기록하는 것이 동일한 의미인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수입에 변동성이 별로 없는 우리 집은 예산을 짜기가 좋았다. 얼마간의 훈련 끝에 그 예산 안에서 돈을 쓰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돈에 대해서는 철저히 그것을 따르고 있고 덕분에 휴직을 하고 있는 지금에도 산 안에서 안정적으로 잘 생활하고 있다.


하지만 시간에 대해서는 달랐다. 어느 날은 체력이 남아돌고 집중이 잘 돼서 많은 일에 욕심을 부려서 시작하고, 어느 날은 '아 이 많은걸 어떻게 해?' 하며 포기하기 일쑤였다. 들락날락, 일정함이 없었다. 남이 하고 있는 어떤 일이 재미있어 보이면 따라 해야 했고, 내게 지금 필요한 일, 내가 꼭 해아 할 일을 구분하지 못했다. 이거 완전 돈 문제와 똑같잖아?


돈에 대해 일 년 예산을 세우지 않고 지출 통제를 하지 않을 땐 잘 몰랐다. 지금 들어오는 돈을 저금해야 하는 건지, 지금 나에게 얼마의 돈을 비상금으로 남겨놓아야 하는 건지. 오늘은 얼마만큼을 써야 하는지. 돈이 많이 들어오는 때엔 많이 소비했고 돈이 부족한 달엔 어떡하나 전전긍긍했다.


시간에 대해 전혀 통제하지 않고 마음 가는 대로 쓰고 있는 요즘. 딱 저런 문제를 가지고 있다. 많은 열정과 체력에 무리하게 시작한 일들은 한가득 쌓여있고, 체력과 열정이 부족한 날에 낑낑거리게 된다. 아, 이런 내 상태를 이제야 깨닫게 되다니.


일단 시간 가계부를 한번 써보자. 시작하는 단계니 무리하지 말고, 예전에 돈에 대한 가계부를 처음 쓰기 시작했을 때부터 지출한 시간을 기록해보자. 그리고 내가 어디에 어떻게 시간을 소비하는지 분석해보자. 더불에 내가 어디에 정말 시간을 쓰고 싶어 하는지, 내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도 고민하자. 그렇게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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