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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결 May 09. 2021

산길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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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을 따라 10분 정도 걸어 내려가면 세 그루, 라는 커피집이 나온다. 라떼가 마시고 싶은 큰 딸을 위해 엄마는 나갈 채비를 했다. 동생과 나, 엄마 이렇게 셋은 햇볕이 내리쬐는 쨍한 산길을 걸었다. 꽃을 좋아하는 엄마와 나는 자주 멈췄고 동생은 '아이고 이 사람들이랑 같이 못 다니겠네'하며 앞서갔다.


좋은 향기가 나는 게 아카시아 향인 줄만 알았는데 찔레꽃 향기도 함께였다. 중간중간 피어있는 찔레꽃을 보며 우와, 이렇게 이쁘냐고 하니 엄마가 지금 나는 향기가 아카시아와 찔레가 합쳐진 향이라고 설명해줬다. 부드러운 냄새. 인공의 향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는, 어쩜 이런 향기에 길들여져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어려서 나는 시골에서 컸으니까. 나도 모르게 내 몸에 각인되어 있는 자연스러운 향기가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오늘따라 세 그루에는 손님이 많았다. 그냥 커피 한잔만 사서 나오려고 했는데 안이 너무 시원해서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엄마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주인아줌마랑 이런저런 얘길 나누다 결국 커피를 다 마시고 길을 나섰다. 다시 산길을 따라 10분. 동생은 저만치 앞서가고 엄마와 나는 꽃을 보며 자주 멈췄다.


예전엔 시골 생활을 동경했었다. 모든 걸 다 버리고 풍경 좋은 데서 맘 편하게 살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나이가 드니 가끔씩 찾아오는 무기력을 이런 곳에서는 헤쳐나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시로 찾아오는 일거리들도 자신 없었다. 그냥 나는 도시에 살면서 가끔 엄마 집에서 힐링이나 해야겠다는 생각.


이번 아이들 여름방학 때 엄마 집에서 몇 주 살 계획인데 그땐 아침 산책은 꼭 해야지 혼자 다짐하며 걸었다. 복직하면 그런 생활도 마지막일 테니 정말 정말 알찬 시골에서 한 달 살기를 할 것이다.



찔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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