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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결 Sep 30. 2020

엄마, 내 잘못이라고 하지 말아요.

매일글쓰기 D-30 with conceptzine

오늘은 추석 전날.

원래라면 시댁에 가서 음식을 도와야 하는 날이다. 그런데 아침에 어머니한테 전화가 와서 조금만 할 거라고 오지 마란다. 저녁에 와서 저녁은 먹던지, 하시고 끊으셨다. 신랑은 그 말을 듣더니, 저녁에도 가지 말자고 한다. 아들인 신랑은 쉽게 얘기하지만 며느리인 나는 뭔가 찜찜하다.


갑자기 비는 시간이 생기자, 신랑이 날씨도 좋은데 어디라도 갈까? 한다. 집에 있으면 애들과 분명히 게임 가지고 옥신각신 할게 뻔하니 나가자고 했다. 어딜 갈까 하다가, 돝섬으로 정했다. 돝섬은 가까운 선착장에서 배 타고 10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작은 섬이다. 가본 지 오래되었던 터라 궁금하기도 했고 아이들이 배 타고 갈매기에게 새우깡 주는 것도 재밌어해서 괜찮을 것 같았다.


오랜만에 배를 타고, 바다를 가르며 돝섬에 도착했다. 사람도 없고, 섬도 너무 이쁘게 정돈이 잘 되어 있어서,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과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있는데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뭐 하고 있냐고 묻더니, 어머니가 안 와도 된다고 해서 애들과 돝섬에 왔다고 하니 '너희는 좋겠다..'다부터 시작된 말들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너희가 복이 많은 거냐, 우리가 복이 없는 거냐. 우리만 죽어라 음식하고 너희는 놀러 다니고. 참 세상 많이 변했다'를 요점으로 하는 말들이었는데 듣고 있으니 마음이 너무 안 좋아졌다.


장손의 며느리였던 엄마는 할머니가 살아계실 때만 해도 명절엔 대식구의 밥을 해내야 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제사를 없애고, 친척들과도 추석에만 모여서 얼굴 보자로 정했는데 이번엔 코로나로 모이지 않는단다. 남동생 내외가 오늘 가기로 했었지만, 우리와 어울리는 걸 보고 싶으셨는지 친정에 먼저 가고 내일 오라고 했단다. 내일 우리가 먹을 음식은 준비해야 하는데, 며느리도 없이 혼자 준비할라니 마음이 좀 그랬나.


엄마의 말들이 나를 향하는 건지 올케를 향하는 건지 알 수 없었으나 이미 내 마음은 죄의식이 비집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정말 이래도 되는 걸까? 어머니는 소량의 음식을 준비한다고는 하지만, 혼자서 애쓰고 계시는데 혼자 이렇게 놀아도 되는 걸까? 하는.


엄마와 통화하는 사이 어머니께 전화가 왔는데, 통화 중이라 전화를 받지 못했다. 바로 신랑에게 전화한 어머니는 저녁에 올지 여부를 묻는듯했는데 신랑이 단칼에 내일 가겠다고 했다. 그것도 어쩐지 마음이 계속 걸렸는데, 아무도 없는 저녁이 쓸쓸하다는 엄마의 메시지를 보고 엄마한테 전화하니, '내일 일찍 시댁에 가서 음식 차리는 거라도 도와라'로 마무리하신다. 


엄마의 말들이 '내가 해보니 그렇더라', 이런 뉘앙스인 건 알겠는데 엄마의 그런 말들에 나는 숨이 막힌다. 나를 위해 하시는 말씀인 줄은 알겠지만, 이미 그런 마음을 저변에 깔고 있는 딸한테 엄마의 말들은, 나를 도리도 못하는 사람으로 치부하는 것과 같다는 걸 엄마는 모를까?


어머니께 전화해서 내일 나 혼자 일찍 가서 돕겠다고 하니 알았다고 하신다. 그럼 오늘도 와서 같이 하길 바라신 걸까? 우리 어머니는 떠보는 스타일은 아니신데. 그래도 내가 아 그럴 거야 짐작해서 어머니한테 제가 갈게요 했어야 했나?


왜 꼭 음식은 여자들만 해야 하고(꼭 여자들만 하지 많아도 여자가 주도해야 하고) 이런 마음의 부담감은 나 혼자 져야 하나 좀 억울했다. 천주교이면서 제사를 지내는 시댁도 원망스러웠다.


"엄마, 이게 내 잘못은 아니잖아요? 내 잘못이라고 말하지 말아요. 어머니가 먼저 전화 와서 오지 말라고 했단말이에요." 이렇게 말하면 너무 어린애 같으려나.


아. 이놈이 제사. 아 이놈의 명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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