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전 전야

매일글쓰기 D-29  with conceptzine

아이의 신분일 때 명절은 마냥 즐거운 날이었다. 못 보던 친척들도 오고, 맛있는 것도 먹고, 이쁜 추석빔도 받았으니까. 게다가 삼촌들이 가끔 용돈이라도 주시는 날엔 봉 잡은 날이 되었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내가 그 즐거움의 기반을 마련하는 자리에 서니 별로 즐겁지 않다. 어머니가 거의 도맡아 하셔서 음식에 대한 부담은 없지만, 여자가 도맡아 하는 음식 준비, 여자만 힘든 명절, 그런 것들이 떠오르면 싫었다. 게다가 왜 힘들게 음식 마련한 사람은 절도 못하는가? 물론 우리 어머니는 하기 싫다고 하셨지만.

시댁은 가까운 친척이 없다. 시아버지가 형제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썰렁하다. 지금은 조금 바뀌었지만, 예전엔 음식 만드는 것엔 손도 안 대던 시아버지라, 어머닌 늘 애처로웠고 시아버진 미웠다. 가까운 곳에 사는 우리는 추석 전날 잠시 가서 음식 마무리를 돕고, 명절 당일 잠시 가서 제사를 지내는 게 전부다.

그렇게 되니 당연히 시댁에서 모두 다 같이 웃으며 노는 게 없다. 시부모님, 우리 부부, 아이 둘이 전부인데. 그렇게 단출한 식구가 즐겁게 시간을 보내지 못하니, 처음엔 그게 아쉬웠지만 지금은 그냥 그러려니 한다. 그동안 쌓인 마음의 앙금이 그냥 여기에서 더 가까워지지 말자, 벽을 만드는 것 같다.

시간이 흐르면 조금 더 마음이 넓어질까? '힘들게 이렇게 음식 하지 말고, 우리도 성당에서 미사 봉헌하는 것으로 대신하고, 다 같이 즐겁게 노는 날로 만들면 안돼요?' 하고 싶은데 이런 말이 안 나온다. 그러고 싶은 마음이 안 생기기 때문인가. 그냥 하던 대로 빨리 해치우고 우리 집으로 돌아오고 싶은 그런 마음인가.

계속 이렇게 부정적인 글이 써지는 건 다 신랑 때문이다. 오늘도 신랑은 밖에 술 마시러 나가서 늦는다. 아이들과 나는 내팽개친 채. 에잇.

오늘 떡국도 먹고 싶었는데 아무도 안먹을라고해서 혼자 사먹었다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