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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결 Mar 14. 2021

어떻게 말해줘야 할까

매일 글쓰기

여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내일 둘째들 집에 올 때 여동생의 둘째인 은*(여)가 우리 둘째인 윤이(남)와 집에 같이 오고 싶다고 한다고, 윤이의 의사를 물어봐달라고 했다. 내일 약속이 있어 여동생에게 윤이 하교 후 시간을 부탁했었다. 그걸 여동생이 은서에게 전했나 보다. 어차피 자기 집 가는 거니까 윤이와 같이 오고 싶다는 말을 했겠지.


윤이가 그러고 싶지 않아 한다는 건 그 말을 듣자마자 짐작이 갔다. 초등학교 들어오고 부쩍 여자아이와 단둘이는 놀려고도 하지 않던 윤이었다. 역시나 가만히 전화 통화를 듣고 있던 윤이가 전화를 끊자마자 '엄마, 나 그냥 혼자 가면 안돼?' 하고 물었다.


마음이 복잡해졌다. 윤이 마음은 알겠고, 그런 상황을 여동생에게 얘기한 적이 있어서 동생도 알고 있는데도 자기 선에서 끊지 않고 나를 복잡하게 만드는 동생이 순간 원망스러웠다. 잠시 마음을 가다듬고 윤이에게 '윤아 그냥 내일 하루만 은*랑 같이 이모 집으로 가면 안 돼? 엄마가 집에 있을 땐 윤이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하잖아. 내일 하루만 그렇게 해줘'라고 말했다. 윤이만 그렇게 하면 모든 게 쉽게 정리가 되니까. 동생한테 '윤이가 같이 안 가고 싶어 한다'는 껄끄러운 말을 전달 안 해도 되니까.


역시 짐작했던 대로 윤이가 혼자 오고 싶다고 했다. 왜냐고 물으니 '기다리기 싫어서'라고 대답했다.


사실 나도 사람을 기다리고 같이 가고 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혼자 할 수 있는 거면 혼자 가는 게 편하고, 굳이 누구와 같이 가고 싶다, 이런 생각을 잘 안 한다. 그런 성향을 닮은 것이라 생각했다. 그 외의 이유를 그렇게 깊게 생각하지 않았었다.


윤이가 싫다고 하니 어쩔 수 없다, 내 마음 편하자고 싫다는 애한테 강요할 순 없다, 그렇게 동생에게 전달하자, 고 생각했다. 전달하기 전에 윤이한테 다시 한번 이유를 물어봤다. '기다리기 싫어서'는 윤이에게 비난의 화살이 돌아갈 가능성이 크니까.


그런데 윤이가 갑자기 눈물을 글썽글썽했다. 내가 다시 묻는 게 자길 야단치는 기분이었나 보다. 사실은.. 여자 애와 단둘이 가면 친구들이 여자 친구냐고 한다고. 그 말이 듣기 싫다고 말했다. 요즘 자기 반에서 그런 얘기들을 많이 한다고.


아고 무슨 초등학교 2학년들이 그런 말을? 하다가도, 그런 이유 때문에 여자애와 단둘이 있는 건 자꾸 피하려고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동생에게 전화해서 상황을 얘기했더니, 알겠다고 하면서 윤이한테 한번 얘기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다.


순간 '뭘 얘기 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정신을 가다듬었다. 윤이에게 뭘 얘기해야 하지? 너무 여자 친구들과 안 놀려고 한다는 게 잘못됐다는 거? 아니지 아니지, 그런 생각 자체가 비난받을 건 아니지. 그럼 뭐가 잘못된 거지?


아.. 그래 너무 다른 사람의 시선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는 거, 그걸 말해줘야겠구나. 여자도 친구가 될 수 있고, 여자와 친구가 된다고 부끄러운 게 아니라고. 그렇게 놀리는 친구들이 잘못된 거라고. 친구들이 그렇게 얘기한다고 윤이가 여자 친구랑은 절대 안 놀아야지 생각하면 잘못된 생각이라고 얘기했다. 윤이와 은*는 사촌이니 둘이 가는 걸 보고 친구들이 뭐라고 하면 사촌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면 된다고.


다른 사람이 잘 모르고 하는 말들이 그대로 자기에게 와서 자신이 되는 건 아니라고. 누가 사실과 다른 말을 해도 그 말로 인해 윤이 자신이 변하는 건 아니라고. 설명하는데, 음... 이걸 알아듣는 건가? 싶은 게.. 지금 내가 뭐라는 거야? 싶기도 하고.. 역시 아이에게 뭔가를 설명하는 건 어렵구나 했다.


그런데 아까보단 눈빛이 조금 변했다. 여자 친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다는 명제가 윤이에게도 조금 들어간 느낌?


그렇게 말을 일단락 끝냈는데, 기분이 뭔가 조금 이상했다. 아이가 싫다면 싫은 거라고 생각했다. 그걸 바꿔줘야 한다는 생각을 못했다. 여자아이와 놀기 싫다면 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내 설명으로 인해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색다른 경험..

그래도, 이거 한번 설명했다고 내일 윤이가 은*랑 같이 오는 일은 없겠지?



어렵다 육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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