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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결 Mar 15. 2021

우리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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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오셨다. 엄마가 2박 3일로 이모네 손녀 봐주는데 따라가셔서 아빠 혼자 의령에 계시기가 좀 그랬나 보다. 아빠는 내가 대학교 1학년 때, 그러니까 20년 전에 뇌출혈로 쓰러지셔서 오른쪽 팔이 마비됐었다. 재활 치료로 어느 정도 괜찮아지셨었는데 5년 후 또 재발해서 뇌 수술까지 하시는 바람에 오른쪽 눈의 시야가 좁아졌다. 그래서 운전을 못하신다. 엄마가 없다면 그 산골에서 나오기가 힘드신 것.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빠가 부쩍 혼자 있는 걸 힘들어하셔서 내가 모시러 가려고 했다. 그런데 아빠는 또 딸이 힘든걸 못 보겠는지 먼 거리를 걸어 나와 버스를 타고 여기까지 오셨다. 아빠가 오니 좋았다. 어려서부터 사람 좋은 아빠는 언제나 우리에게 허용적인 사람이었다. 육아의 전반적인 책임과 걱정을 엄마가 맡았으니 그런 역할만 남았던 셈. 나이가 들어서도 예민한 엄마에 비해 아빠는 참 편한 사람이었다.


처음엔 악역을 맡지 않으니 자연스레 편한 사람이 되는 거 아니냐,라고 생각했다. 신랑도 아빠와 비슷한 면이 많은 사람이었기에 더 그렇게 생각했다. 돈을 아껴 가계를 운영하는 것, 아이들에게 더 나은 것들을 제공하는 것, 그런 것은 엄마와 나의 역할이었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알겠다. 그런 역할이 조금 작용을 했겠지만, 원래 그렇게 세상을 편하게 사는 사람이 아니면 그런 편안한 포스가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아빠가 도착하자마자 아빠를 모시고 맛있는 디저트가 있는 카페에 갔다. 오시느라 힘드셨을 테니 달달한 걸로 피로를 좀 풀어 드리고 싶었다. 치즈케이크와 레몬 빵과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카페의 분위기도, 디저트도 아빠가 마음에 들어하니 더 기분이 좋았다. 아빠와는 저녁까지 먹고 헤어졌다. 동생집과 우리 집 중에 동생집을 택하신 것. 이유는 동생집이 1층이라 왔다 갔다 하기 편하다, 는 것이었지만 아직까지는 우리 집보단 동생네가 더 편하다는 걸 나도 안다. 동생은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재주가 있으니까.


내일 아침은 아빠한테 떡국을 끓여드릴 생각이다. 아침부터 좀 분주하게 움직여야겠다. 아빠에게 편안한 밤이었으면.



아빠와 함꺼 갔던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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