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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바라기 Nov 27. 2023

백화점 아르바이트가 그렇게 힘들다고요?

아이스크림 아르바이트, 그 냉정과 열정 사이


고민을 하게 만드는 질문이 있다.


육체적 노동을 택할 것인가, 정신적 노동을 택할 것인가.


나는 한 치의 고민도 없이 말할 거다. 정신적 노동이 더 고되기에 육체적 노동을 택하겠다고. 차라리 몸이 힘든 게 낫지,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다. 이런 생각을 들게 해 준 아르바이트가 바로 백화점 아르바이트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는 백화점에 입점된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정식 매장이 있진 않았고, 팝업스토어 부스에서 일을 했다. 그곳에서 여름방학 2달 동안 일을 하게 됐는데 그 두 달은 내 인생에서 가장  고난과 역경이었다.


그 당시에는 중국인 관광객들로 백화점이 돈과 사람을 쓸어 모을 때였다. 어느 정도였냐면, 백화점에서 중국어 통역사를 배치해 중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서비스를 제공할 때였다.


물론 중국인 여행객뿐만 아니라 한국인들도 굉장히 많았다.


어떤 손님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다른 사람들은 더운 여름날 땀 흘리며 일하는데, 넌 백화점 안에서 시원하게 일하니 감사하게 생각해."


타인의 노동을 저렇게 폄하하는 언행에 헛웃음이 났다. 그거 아시는가? 아이스크림 기계의 열기는 손님이 있는 쪽이 아닌 직원이 있는 쪽으로 빠져나와 난 땀을 뻘뻘 흘린다는 것을. 시원함을 누릴 수 있는 건 아르바이트생인 내가 될 수 없었다. 시원하든, 그렇지 않든 타인의 고생을 섣불리 판단해서도 안 된다(악의 없는 말일지라도).






아이스크림 가게 아르바이트생의 하루는 이렇게 시작된다.

참고로 나는 낮 1시 반~9시까지 근무했다. 아, 근무시간이 9시까지인 것은 백화점 마감시간이 8시 반이기 때문이다. 난 점심을 먹고 1시 반까지 근무지에 도착한다. 출근하면 매니저님과 함께 일을 한다. 한 명은 주문을 받고 계산을 하고, 한 명은 아이스크림을 퍼서 콘 혹은 컵에 올린다. 그렇게 반복된 작업을 하다가 휴게시간인 5시~6시 동안 직원식당에서 밥을 먹고 직원 휴게실에서 잠깐의 낮잠을 즐긴다. 6시에 매니저님이 퇴근하면 홀로 9시까지 자리를 맡는다. 혼자 주문, 계산, 포장 등의 일을 하고 8시 반부터 마감 정리와 정산을 한다. 정리는 보통 남은 아이스크림을 치우고, 통을 정리해 냉동고로 옮기는 것을 말한다.


내가 일한 곳은 식당가의 정중앙 가운데에 위치해 있어 음식 관련 매장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이 많았다. 아르바이트생들끼리 대화를 직접 하지 않았지만 얼굴을 매번 마주치는 사이라 내적 친밀감은 높았다. 그래서 내가 가끔 식당에서 음식을 구매하면 가득 담아줬고 시식용 음식도 많이 나눠줬다. 나 또한 그 은혜를 대갚음하며 타 아르바이트생이 아이스크림을 살 때 꾹꾹 눌러 가득 담아주기도 했다.


백화점 아르바이트의 가장 큰 단점은 두 곳의 통제를 받는다는 것이다. 즉, 쉽게 말하면 사장님이 2명이다. 아이스크림 업체에서도 관리 감독을 받고 동시에 백화점 담당자에게도 관리 감독을 받는다. 이럴 바에 백화점이 아니라 일반 매장에서 일하는 게 낫겠다 싶을 때도 많았다.




내가 일한 7, 8월은 매우 바쁜 시즌이었다. 몰리는 손님들로도 정신이 없는데 손님들의 컴플레인도 감당해야 했다. 아이스크림 가게에서는 컵과 콘을 선택할 수 있었는데, 둘 다 달라는 고객의 억지도 많았고 정량 이상을 드려도 양이 왜 이렇게 적냐는 불만도 잦았다.


정말 정신없던 날이었다. 그래, 시작부터 좋지 않은 예감이 몸을 감싸는 날이었다. 그날은 대규모 행사가 있던 날이었고 정말 많은 내외국인들이 우리 지역에 방문했다. 덩달아 백화점도 인파로 가득했다. 아이스크림 가게도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러다 한 가족단위의 손님들이 줄을 서고 있었는데, 아내가 남편에게 엄청 화를 내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 기가 죽은 아들도 보였다. 눈에 띄는 가족이었다. 그 아내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내 귀에 생생하게 들렸다. 그러다 그 가족의 주문 차례가 왔다.


콘으로 할지 컵으로 할지, 어떤 맛으로 할지, 결제는 어떤 방식으로 할지 당연히 물어야 하고 답을 들어야 하는 질문을 했다. 그런데 돌아오는 것은 고성을 지르는 여성의 목소리였다.


"뭐가 이렇게 질문이 많아, 내가 몇 번 대답을 해야 돼. 너네 제대로 못 들어?"


정말 소란스러웠던 식당가 층이 순식간에 조용해졌고, 정적이 감돌았다. 단번에 알았다. 본인이 이전부터 짜증 나 있던 감정을 우리에게 풀고 있다는 것을.


그 고객은 우리에게 여러 번 대답하지도 않았고, 우린 과한 질문을 하지도 않았다. 그 고성은 계속 이어졌고, 그 여성의 남편과 아들은 어느 액션도 취하지 않은 채 그대로 이 상황을 감상하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막무가내의 행동은 그냥 모두의 감상거리로 만들었고, 나와 매니저님은 그 대상이 될 뿐이었다.


그 일행은 계산도 하지 않은 채 아이스크림을 집어던지고 자리를 떠났다. 매니저님은 빨개진 코와 눈으로 손님들의 주문을 받았고 난 걸레를 들고 바닥을 닦아야 했다. 바닥을 닦을 때에도 발로 닦으면 안 된다는 백화점 담당자님의 우려도 함께 받았다.


이 상황을 끝까지 함께 지켜본 일부 손님들은 우리에게 위로의 말을 전했다. 괜찮으시냐, 저분들이 이상한 거다, 너무 맘 쓰지 말라.





사람 마음은 참 가소롭다. 좋은 100명의 손님을 만나도 1명의 악인을 만나면 그 안 좋은 1명에 대한 감정만 담게 된다. 매니저님, 친절했던 손님들, 항상 서로의 식사와 안부를 챙겼던 다른 매장의 아르바이트생들.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났던 아르바이트였는데, 남은 것은 상처와 비참함이었다.


감정노동에 함께 시달렸던 매니저님은 내 마지막 근무일에 내가 좋아하던 아이스크림 한 팩을 가득 담아줬다. 아이스크림은 차갑고도 달았다. 백화점 아르바이트도 아이스크림과 같았다. 달달했지만 너무 냉혹했다. 절대 녹지 않을 얼음장 같은 사람들에게 마음이 베였고, 매니저님과 다른 손님들의 위로에 마음이 녹아내렸다.


사실 그 이후로 다시는 백화점 아르바이트생이 되진 않았다. 겁부터 났다. 물론 그런 일을 계속 겪음으로써 조심해야 할 행동과 언어를 깨닫게 되었다. 그런 언행을 주의하게 되면서 내가 손님이 되었을 때의 선한 태도를 습관으로 만들 수는 있었다.





아이스크림 가게의 매니저님을 찾습니다.

- 땀을 뻘뻘 흘려도 미소를 잃지 않았던 매니저님

- 본인과 똑 닮은 남편이 있는 매니저님

- 책임감과 밝은 성격이 눈에 띄었던 매니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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