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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바라기 Dec 04. 2023

국가근로장학생이 뭐예요?

한국장학재단 국가근로장학생에 대하여: 꿀벌이야기


대학교로 출근한다. 교직원이 아닌데도 말이다.


그런데 어떻게 대학교로 출근하냐고?

나는 국가근로장학생이기 때문이다.


한국장학재단에서는 국가근로장학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교내근로와 교외근로로 나뉘는데 교외근로는 말 그대로 학교 밖의 공공기관, 센터 등에서 일하며 행정 등의 업무를 지원한다. 교외이기에 시급은 교내근로보다 더 높다. 난 교내근로장학생으로 대학교 학과 사무실에서 일을 했다. 교내근로는 교내 도서관과 행정 부서 등에서 일을 한다.


국가근로장학생의 지원자격은 아래와 같다.

대한민국 국적을 소지한 자 중 지원 대상 대학의 재학(입학 예정자 포함) 중인 학생으로

성적 기준은 직전 학기 성적 C0 수준(70점/100점 만점) 이상,

소득 기준은 학자금 지원 8구간 이하의 학생.


*국가근로장학생 특징

1. 한국장학재단 홈페이지를 통해 국가근로장학생 신청을 해야 한다.

2. 수요가 많기에 경쟁률이 높다.(소득분위 등 우선순위로 결정된다.)

3. 근무 시, 한국장학재단 홈페이지나 어플을 통해 출근부 입력을 직접 해야 한다.

4. 더 많이 일하고 싶어도 주당 최대시간이 있다.(학기 중 주 최대 20시간 이내, 방학 중 최대 40시간 이내)

5. 근로 전에 서약서, 안전교육이수보고서, 업무교육서 등을 업로드해야 한다.

6. 현재 기준으로 시급은 교내근로 9,620원, 교외 근로는 11,150원이다.


내가 일할 당시 최저시급은 6000원~7000원대였었는데, 국가근로장학생의 시급은 8000원으로 매우 높은 편이었다. 사실 업무강도도 낮아 소위 말하는 꿀알바  꿀알바였다. 그래서 그 당시 나의 별명은 꿀벌이었다.


나는 학과 사무실에서 교수님들의 수업 준비, 복사, 문서 정리, 서류 작업 등의 행정업무를 했다. 학과 사무실에서는 조교 선생님이 있었고 조교 선생님의 업무 보조 및 잡무를 맡았다. 월 30시간 근무를 했고, 평일 9시~6시 사이 공강시간에 일을 했다. 우리 학과 사무실에서는 개강 전에 근로장학생들이 다 같이 모여 근무 시간표를 짰다. 주 7~8시간을 하면 되었기에 난 공강인 금요일에 몰아서 일을 했다.


우리 학과사무실에는 조교선생님 2명, 국가근로장학생 2명이 항상 상주하여 함께 일했다.


학과사무실 국가근로장학생의 하루는 다음과 같다.

8시 40분에 출근하여 학과 사무실 문을 열고 9시 수업 준비를 시작한다. 강의실을 확인하고 교수님의 원활한 수업을 위해 마이크와 빔 프로젝터, 포인터를 설치한다. 컴퓨터와 스크린을 켜고 매직펜 혹은 분필 여분을 칠판에 둔다. 교수님이 미리 요청할 경우엔 수업 자료도 프린트하여 놓아둔다. 그런 방식으로 매 시간의 수업 준비들을 하게 되는데, 한 번에 4개의 수업 준비를 혼자 해야 할 때도 있다. 수업준비를 완료한 후에는 학과 사무실에 앉아 교수님 혹은 조교님이 시키신 업무를 한다. 보통 PPT 제작, 복사, 스캔 그리고 문서 작업들을 한다. 이때의 사무보조 경험이 지금 직장에서 도움이 되었다. 적어도 어떻게 복사해요? 어떻게 스캔해요?라는 질문은 피했으니깐.



학과 사무실의 업무 강도는 매우 낮았다. 왜냐고? 학과 사무실의 손님은 학과생들이기에 나의 선배, 후배, 동기였기 때문이다. 즉 진상이 없었다. 물론 가끔 교수님들의 성화에 잠깐의 스트레스를 받긴 하지만 충분히 견딜 수 있었다. 이전 아르바이트에 비하면 달콤한 꿀을 모으고 있는 한 마리의 꿀벌이었다. 아! 이건 나의 개인적인 경험이니 다수의 상황에 대입하지 말아 주시라. 다 각자의 사정과 경험이 있기에 일반화하고 싶지는 않다.


아무튼 난 학교로 출퇴근했다. 국가근로장학생 덕분에 교내 및 학교 행사 프로그램 등에 빠삭하게 되었다. 매주 얼굴을 보며 같이 일하는 근로장학생과 조교선생님과도 친밀한 관계를 맺게 되었다. 물론 단점도 존재한다. 교수님들이 날 알아보기에 난 전공 수업에서 항상 교수님들께 질문을 받고 답변을 해야만 했다. 나의 초라한 지식 상태를 모든 학생들에게 보여줘야 했다.


국가근로장학생으로서 학과 사무실에서 근 2년을 일했다. 4명의 조교선생님을 거쳐갔고, 나름 경력직이 되어 신규 근로장학생의 업무 교육을 맡기도 했다. 교육기간 일주일 내내 학과 사무실에 상주해 무급으로 내 책임을 다했다. 아, 사실 책임보다는 의리였다. 조교선생님들이 가장 바쁜 주가 개강주였고, 그때 신규 근로장학생 교육과 겹쳐 내가 대신 교육을 했다.


추억은 기억에 감정을 더한 것이다.


학과 사무실에서 일했을 때, 난 추억을 참 많이도 쌓았다. 학과 사무실 사람들과 함께 볼링장에 가면서 내 인생 첫 볼링공을 만져보았다. 개교 이후 학과사무실 이사를 단행했을 땐 20, 30년의 케케묵은 먼지와 역사를 들이마시기도 했다. 이런 기억은 행복과 기쁨이라는 감정을 더한 채로 내게 추억으로 남았다. 꿀벌이 꽃을 찾아 날아다니며 꿀을 채취할 때, 난 꽃과 같은 사람들을 만나며 추억을 모았다.






조교 선생님을 찾습니다.

- 우리 학교 타과 선배님이었던 조교샘

- 검은 뿔테 안경이 잘 어울렸던 조교샘

- 무서운 이야기를 기가 막히게 풀어냈던 조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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