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작은 박람회 부스 아르바이트였다. 베이비페어로 아기용품 전시회가 크게 열렸고 난 거기서 아기매트 업체에 지원했다. 박람회 시즌에는 알바몬, 알바천국 사이트에 지원공고가 무수히 업로드되는데 조건, 업체 등 본인의 자격에 맞는 곳에 지원하면 된다.
이 당시에는 지원 구직자 보다 업체에서 필요한 구직자의 수가 더 높았기에 난 첫 단기 아르바이트 지원임에도 쉽게 붙을 수 있었다.
그 당시에는 몰랐는데 베이비페어 아르바이트생으로서 가장 힘든 품목은 유모차와 카시트였다. 유모차와 카시트 작동법을 하루종일 3, 4일 내내 시연해야 해서 팔과 어깨가 엄청 아프다고 한다. 다행히 난 이 두 품목을 피할 수 있었다.
베이비페어 기간 동안 아기 매트를 판매할 아르바이트생을 구합니다.
1. 근무시간: 오전 10시~8시
2. 근무일: 목, 금, 토, 일
3. 지원 자격: 4일 모두 출근가능한 자
4. 급여: 최저시급
그렇게 첫날엔 1시간 더 일찍인 9시에 모였다. 나 포함 아르바이트생 4명이서 근무를 했고, 해당 업체의 과장님과 대리님도 함께 일하게 됐다. 1시간 동안 간략하게 해당 업체 매트의 강점 및 특징, 할인가 등을 교육받았다.
대략적인 소개 멘트는 이러하다.
"이 매트는 생활방수가 가능하고, 유해물질이 없는 원단이라 아기들에게 안전할 뿐만 아니라 층간소음에도 도움 됩니다. 틈새가 없어 청소에도 유용합니다. 디피용 매트는 마지막날에 추가할인을 받은 후 가져가실 수 있습니다."
오전 10시, 전시회가 오픈되고 많은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경쟁업체의 매트도 있었지만 내가 담당한 업체의 매트가 디자인이나 기능성이 더 뛰어났다.또 같이 일하는 4명은 신기하게도 합이 잘 맞았다. 나이차를 뛰어넘는 팀워크를 보였다. 가장 연장자는 31세이고 가장 최연소인 아르바이트생은 스무 살이었다. 이 팀워크는 중간중간 쉴 때마다 발휘한 수다 덕분일 것이다. 함께 수다에 참여하고 맛있는 간식이 떨어지지 않도록 곳간을 채워준 과장님의 숨은 노력도 돋보인다.
4명은 큰 소리를 내며 영업에 몰입했다. 내 인생 첫 영업이다. 성과는 나쁘지 않았다. 손님이 오면 매트를 설명하고, 손님이 구매를 결정하면 결제를 한다. 보통 거실 전체에 매트를 깔기에 한 번에 여러 개를 구매하게 된다. 그래서 매출은 팍팍 뛰었다.
상품의 품질과 아르바이트생의 영업력이 더해져 우리 팀은 순조롭고 평탄하게베이비페어 부스를진행했다. 하지만 배는 항상 순항하진 않는다. 파도에 휘청거리기도 한다.
마지막날이었다. 디피용 매트들은 첫날 오픈 2시간도 안 되어 매진되었다. 세명의 손님들이 마지막 시간까지 기다렸다가 모든 매트를 받고 돌아갔다, 매트는 이제 재고가 없는데, 다른 손님도 오신 게 아닌가. 알고 보니 소통 오류로 4명의 손님들에게 디피용 매트 예약을 받은 거였다.
해당 매트를 받기 위해 기다렸던 손님은 언성을 높였다. 손님의 반응은 당연하고 충분히 이해됐다. 그 시간을 누가 보상하리. 언성을 높이고 돌아선 손님을 급하게 과장님은 붙잡았다. 과장님은 손님께 죄송하다 거듭 말씀드리며 새 매트를 기존 할인가에 배송한다는 적절한 방안을 제시했다. 과장님의 노련함을 눈으로 보았다. 또 어떤 아르바이트생이 잘못했는지 잘잘못을 따지지 않은 대인배의 태도도 함께 목격했다.선장의 모습이었다. 흔들리는 배는 다시 안정을 찾았다.
우스갯소리로 베이비페어나 웨딩페어를 경험하면 우리나라의 출산율과 혼인율의 저조한 수치를 의심하게 된다고 한다. 이전에는 얼마나 더 많은 가정이 방문했다는 것인가. 물론 오랫동안 베이비페어를 돌았던 과장님은 지금 매출액이 이전과 비교하면 반토막이라고 말씀하셨다.
목금토일 4일 간 총 40시간의 알바는 짧고 굵게 잘 마무리되었다. 3일간 배를 운항하며 이끄는 선장의 리더십도 가까이서 관찰했고, 짧은 영업을 하며 내 평생의 직무로는 영업이 맞질 않는다는 판단도 내렸다.
단기 아르바이트의 장점은 끝이 눈앞에 보인다는 것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이틀만 더 버티면, 하루만 더 견디면 끝이라는 해방감을 느낄 수 있다. 4일간의 경험은 내 아르바이트 일대기에서 '단기 아르바이트'라는 아스팔트 길의 방향성을 명확하게 제시해 주었다.(물론, 아주 개인적인 소견이다. 다른 이에겐 고정 아르바이트가 잘 맞을 수도 있다.)
물론 매달 지원공고를 넣어야 한다는 번거로움과 내가 합격자에서 떨어질 수 있다는 불확실성이 공존한다. 하지만 익숙함이 지겨움이 되는 전환기를 벗어날 수 있고, 내가 내 시간을 선택한다는 결정권을 가지는 게 더 나았다. 그래, 아르바이트 인생을 가늘고 길게 하기보다는 짧고 굵게 해 보자. 내 아르바이트 일대기에도 큰 분기점을 맞이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