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잠바라기 Nov 20. 2023

곱창집아르바이트생이 월급보다 팁을 더 많이 받았다고요?

'배'만 한 '배꼽'도 있다(월급과 팁)

대학교 동기가 아르바이트생을 모집한다는 페이스북 게시글을 내게 보내줬다.


곱창집 아르바이트생을 구합니다.

1. 요일: 월, 수, 금

2. 급여: 최저시급

3. 근무시간: 오후 7시~오후 11시

4. 오래 일할 학생 구함


대학교 2학년 시절, 저녁 아르바이트를 구할 때였다. 6시 이후부터의 시간대를 채울 아르바이트를 모색한 내게 딱인 아르바이트 조건이었다.


주 3일에 4시간 근무이면 학교 수업과 대외활동 등을 무리 없이 수행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난 바로 게시글에 적혀있는 연락처로 문자를 남겼고, 다음 주부터 출근하기로 결정됐다.


곱창집 아르바이트생의 하루는 아주 심플하다.

7시에 출근한 후 음식점 아르바이트생답게 앞치마를 맨다. 깨끗이 씻어서 나온 수저와 물컵의 물기를 닦은 후 통에 넣는다. 그리고 손님이 들어오면 기본 반찬을 세팅하고 주문을 받는다. 음식들이 주방에서 나오면 테이블에 전달한다. 그때그때마다의 손님들의 요청사항을 손님들께 제공한다(반찬을 더 달라, 소주를 달라, 마늘을 달라 등등). 손님들의 식사가 끝나면 결제를 하고 테이블 자리를 정리한다. 그리고 중간중간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고 주문받은 계란찜을 만든다.


사장님은 음식 조리를 담당하여 부엌을 맡았고 난 그 외의 것들을 담당하며 홀을 맡았다.


곱창집의 매출은 변덕이 심했다. 사람이 몰아오는 날이 있었고 반대로 밤 11시까지 한 테이블만 받았던 날도 있었다. 아르바이트생의 입장에서 손님이 없을 때는 몸이 편안했지만 사장님의 어두운 표정을 보자니 괜스레 마음이 조마조마하긴 했다.


어쨌든 곱창집은 저녁장사를 위주로 새벽까지 운영하다 보니 대부분의 손님들은 맨 정신으로 뚜벅뚜벅 가게 안으로 들어오고 비틀거리며 가게 밖으로 나갔다. 주택가 근처에 위치해있다 보니 젊은 사람들보다는 40-50대 중장년층 손님이 주고객층이었다. 그래서 나를 딸 혹은 조카처럼 보며 기특하게 여기는 단골분들이 많았다. 사실 기특하게 보지 않아도 되는 아르바이트생과 손님 간의 관계였지만 몇몇 분들은 그 이상의 애정과 관심을 전해줬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지. 그 당시, 손님들의 칭찬은 날 더 움직이게 했다. 고래가 손님들의 말 한마디에 헤엄을 더 역동적으로 치며 앞으로 나아간 것이다. 나한테 인사는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당연하지 않은 세상이 되었고, 이런 분위기에서 내 인사는 타인의 기분을 밝게 만들었다. 인사와 친절이라는 사소함이 이유일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틀에 한 번 꼴로 손님들께 팁을 받았던 것 같다.


그 당시 최저시급이 6,000원쯤이었다. 그럼 난 하루 4시간을 일하며 24,000원을 벌었는데, 팁으로 1~3만 원을 받았고, 많게는 5만 원을 받은 날도 있었다. 물론 손님들이 팁을 주실 때마다 민망함과 어색함에 몸 둘 바를 몰랐다. 극구만류했던 내 손사래에 사장님은 그럴 것 없다며 웃으셨다. 1달 아르바이트 급여가 30만 원이 조금 안 되었는데, 첫 달 받은 팁은 30만 원이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것이었다. 주객전도란 이런 것일까.


어떤 테이블에서는 "요즘 이런 학생 없어. 우리 샤부샤부집에서 일할 생각 없어요?"라며 장난스러운 스카우트 제의를 받기도 했다. 샤부샤부집 사장님은 곧 곱창집의 단골손님이 되었다. 샤부샤부집 사장님은 방문할 때마다 아이스크림이라도 사 먹으라며 내게 콘 아이스크림 5개는 살 수 있는 팁을 주셨다. 그리고 아르바이트를 그만둔 이후에 나는 해당 샤부샤부집의 단골손님이 되어 여태껏 받았던 은혜를 갚았다.


어떤 날은, 나와 또래로 보이는 학생이 찾아왔다. 사장님과 친한 단골손님이었고 오랜만에 방문한 상황이라 나와 그 손님은 일면식이 없었다. 실연의 아픔으로 친구와 함께 왔는데 눈물을 뚝뚝 흐르고 있었다. 그 손님께 휴지도 챙겨드리고, 번진 마스카라를 닦으라고 면봉도 드렸다. 술 2병을 뚝딱 마셨던 손님은 계산을 하고 나가는 길에 내게 만원을 건넸다! 또래에게 팁을 받는 건 처음이었고 당황스러워 같이 온 일행분께 사정을 말하고 다시 돈을 건네줬다.


"내일 술 깨면 저한테 팁 준 거 후회할 테니 친구분께 전달해 줘요."


그러고 끝난 줄 알았으나 다시 돌아온 손님은 이것저것 챙겨줘서 고맙다며 돈을 다시 주고 후다닥 뛰어가버리는 게 아닌가. 나중에 사장님께 그분의 나이를 물었더니 나보다 겨우 2살 많은 언니였다. 다시 또 오실 때 내 돈으로 서비스를 주거나 돈을 돌려주고 싶었지만 그 이후로 만나지는 못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났던 아르바이트였다. 손님들께 팁으로 대변할 수 없는 애정을 받았던 날들도 많았다. '고생하네요.'라는 말 한마디로 힘이 생기고, '너무 잘 먹었어요.'라며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어깨가 펴지는 순간들도 있었다. 완벽한 타인의 말속에서 다정함을 느낄 때, 팁은 그 매개체가 될 뿐이었다. 물론 갑작스러운 사장님의 이사로 3개월 만에 끝났던 아르바이트였지만 그 3개월을 떠올리면 기분 좋은 웃음을 짓게 되었다. 추억으로 기분이 좋아질 수 있음을 느끼게 해 준 아르바이트였다.







곱창집 사장님을 찾습니다.

1. 짧은 쇼트커트를 즐겼던 여자 사장님

2. 아들하나, 딸하나 귀한 토끼 같은 자식이 있었던 사장님

3. 털털하고 곱창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던 사장님

4. 순대곱창도 맛있지만 볶음밥을 더 맛있게 만들었던 사장님







이전 03화 스크린골프장에서 노동착취를 당했다고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