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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바라기 Dec 25. 2023

팬사인회 단기아르바이트는 어땠나요?

아이돌과 팬의 사이에서 일하다

세상엔 다양한 사랑이 있다. 


그중 스타와 팬의 사랑이 유독 독특하고 빛이 난다. 난 그 사랑 사이에 서 있기로 했다. 팬사인회 아르바이트생으로.


취업준비에 한창일 때, 필기시험과 면접 일정으로 고정 아르바이트를 하기엔 내 생활이 너무 유동적이었다.

그래서 다시 단기아르바이트에 도전했다. 당시 서울로 올라온 터라 단기아르바이트생 모집 공고글이 지방과 비교하면 상당했다.


마치 정보의 홍수 속에서 내게 맞는 정보를 찾아다는 여정과도 같았다. 그러다 내 눈에 띈, 너무나도 흥미로운 모집 글이 나타났다.


아이돌 팬사인회 아르바이트생을 구합니다.

근무요일: 토요일

근무시간: 오후 5시~ 오후 10시

시급: 최저시급

지원자격: 시간약속 잘 지키고, 책임감이 높은 분 구합니다 


난 사실 덕질과는 아주 인연이 없고 무관한 사람이다.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고 일이 쉬운 편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지원했다. 그런데 탈락된 건지 팬사인회 일정 3일 전인데도 연락이 오지 않았고 '떨어졌구나' 하며 다른 아르바이트자리를 찾고 있었다. 그리고 목요일에 누군가의 불참 의사로 내게까지 연락이 왔다.


내 대답은 당연히 '네'지!


팬사인회 아르바이트생의 하루는 이러하다.

 먼저 도착하면 아이돌의 책상과 의자를 세팅한다. 책상 위에 아이돌을 위한 물, 마이크, 볼펜을 준비한다. 그리고 단상 아래의 팬들이 앉을 의자를 세팅하고 의자 뒷면에 좌석 번호표를 부착한다. 준비 과정은 단순하다. 팬사인회가 시작될 쯤에 팬들이 팬사인회 장소로 입장하게 되는데, 그때 내가 받은 자료와 신분증을 대조하며 본인 확인을 완료한다. 팬들은 번호표를 뽑아서 랜덤으로 뽑은 번호에 맞는 자리로 배정된다. 

  팬사인회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번호순대로 세줄씩 대기줄을 만든다. 그리고 아이돌 앞으로 안내한다. 팬사인회 중간중간 화장실 안내나 분실물 찾기, 포스트잇 전달과 같은 팬들의 요청을 접수하고 반영한다. 

 팬사인회가 끝나고 아이돌이 나가면 몇몇은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안전을 지키기 위해 보디가드의 역할을 한다. 대부분의 아르바이트생은 책상과 의자 등 뒷정리를 하며 끝이 난다.


처음 했던 일치고는 그리 큰 부담감과 어려움은 없었다. 인솔, 정리, 세팅 등의 업무는 여러 아르바이트에서 항상 해왔던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존재하는 현실세계와는 다른 세계가 있구나를 느끼며 화려한 과 비교되는 초라한 나를 보게 된다. 내가 정말 작은 존재라는 기분을 5초 정도는 맛볼 수 있다.





팬사인회 아르바이트는 단 하루, 단 한 번의 경험이었다. 누군가의 한여름밤의 꿈을 나도 잠깐 느낄 수 있었다. 내가 가장 잊을 수 없는 것은 누군가의 눈빛이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간절한 이의 행복한 눈빛을 보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 현장에서는 그런 눈빛을 가진 이들이 여럿 있었다. 


누군가의 행복한 순간에, 그 중간 지점에 일하고 있다는 것은 굉장한 일이다. 감정은 어느 정도 전염된다고 믿고 있는데 완벽한 제삼자인 나조차 미소 지으며 일했다. 괴성, 울음, 절규가 아닌 환호성이 들리는 이 공간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이 관계를 잠시나마 연결시키는 일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기분 좋은 일이다.


내가 느껴본 적 없는 사랑을 엿보며 난 그 사랑을 응원하고 싶어졌다.




음반사 담당자님을 찾습니다.

1. 20대의 젊은 패기가 물씬 느껴졌던 담당자님

2. 대관홀 사장님과의 트러블에도 지지 않았던 강인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던 담당자님

3. 아르바이트생들에게도 엄청난 친화력을 뽐낸 담당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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