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 음산동 두루미 고 여사 2/3

철문이 벌어진다

by 소피

# 철문이 벌어진다


곪고 곪아서 곧 터질 것 같다가 너무 오래 방치되어 썩은 고름이 가득 채워진 상태로 새살로 가려진 것 같았던 69번지 3층집. 멀쩡한 놈 하나가 나타나서 나무를 심고 청소를 하더니 아침부터 마당에 땅을 파고 쓰레기를 불태우고 있었다. 비닐 쓰레기가 많았는지 시꺼먼 연기가 집보다 높게 피어올랐다.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립니다.”와 같은 첫인사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음산동에 내가 왔다!”라는 당돌한 선포에 더 가까워 보였다.


모두 멀리서 바라보고만 있을 때 검은 연기의 중심으로 서서히 접근하는 매 한 마리가 나타났다.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이웃의 등장도. 이른 시간에 온 동네를 뒤덮고 있는 시꺼먼 첫인사도 거슬리던 중에, 두루미를 뛰쳐나와 우아하나 자태로 날아오른 황조롱이처럼 검은 연기의 주변을 맴도는 고 여사의 움직임이 포착된 것이다. 같은 시각, 음산동 주민들은 각자의 공간에서 모처럼 생긴 흥미로운 구경거리를 어떻게 즐겨야 할지 고민하며 검은 연기 기둥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고 여사가 목표물 근처에 도착했다.


그녀는 평소에 잘 신지 않던 나이키 조깅화에 몸매가 잘 드러나지 않는 민트색 트레이닝복 세트를 입었다. 고 여사의 뒷모습과 그 위로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 기둥이 겹치면서 그녀는 폐허가 된 전쟁터에 무너진 건물 틈에서 어젯밤에 막 올라온 산세베리아 새순처럼 작고 여린 아기 새 같았다. 음산동 골목에서는 볼 수 없었던 민트색 움직임이 기대되는 순간, 모든 것이 잠시 보류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고 여사는 머뭇거리다가 곧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전방 50미터. 우아한 황조롱이매가 먹잇감을 향해 날아가는 경로에 늙은 까마귀 한 마리, 아니 흑구렁이 한 마리가 나타난 것이다. 음산부동산 표 사장의 등장이다. 표 사장은 69번지 대문 앞에서 고 여사의 시선을 의식하며 초인종을 눌렀다. 초인종이 고장이 났는지 표 사장은 초인종을 다시 누르는 동시에 녹슨 철문을 쾅쾅 쾅쾅 반복해서 두드렸다. 표 사장과 고 여사의 눈이 마주치는 순간 담 너머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슬리퍼 바닥이 땅에 끌리는 소리가 들리고, 철문의 틈이 벌어지고 있다.


고 여사가 철문 틈 사이에서 나올 것을 기다린다.



002 음산동 두루미 고 여사 3/3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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