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노랑우비광년 006

방광의 눈물

by 소피

#방광의 눈물


‘아...’


이것은 꿈인가?


‘아아!...’


낯익은 천사의 눈.

낯익은 천사의 코.

낯익은 천사의 입.


아는 천사다.

내가 아는 천사다.


나는 확실히

이 천사와 눈이 마주친 적이 있다.


언제였더라?



한 번은 지금.


또 한 번은…



‘아아아!... 그 미친년이다…’




그녀가 지금 내 앞에 있다. 게릴라성 폭우가 쏟아지는 새벽, 우비를 입지 않은 그녀가 나타났다. 몸을 제대로 가눌 수도 없는 처지였지만 저기 보이는 천사님이 내가 아는 미친년임은 확실했다. 미친년과 마동석. 몸은 알코올에 지배당했고 끊어지기 직전의 정신줄에는 이런 의문이 생겼다. 미친년은 왜. 미친년과 마동석, 두 사람은 왜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났는가?


나의 자아가 취한 나에게 여긴 어디, 난 누구? 등 온갖 원초적 질문을 하고 있을 때 두 사람의 짧은 대화가 희미하게 들렸다. 그녀는 전화를 받더니 전화기를 마동석에게 넘겼다. 전화기를 넘겨받은 마동석의 오른쪽 어깨에 잉어로 보이는 생선 머리가 살짝 보였다. 잉어의 비늘 위로 빗물이 흐르며 마동석의 굵은 팔뚝을 지나 팔꿈치에 맺혔다. 그리고 그녀는 잉어가 새겨진 마동석을 아빠라고 불렀다.


“아빠. 엄마 전화.”

“어, 여보세요? 어, 어, 지금 갈게. 어, 어.”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통화를 끝낸 두 사람은 무엇인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나를 한심하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현재 유일하게 제 기능을 하는 나의 각막과 홍채, 수정체, 망막 등 안구 안에 있는 모든 부속이 긴급 경고장을 취한 뇌로 전달했다.


칼자국이었다.


전화기를 다시 돌려받는 그녀의 팔뚝에서는 선명한 칼자국이 보였다. 어깨 잉어 아빠와 팔뚝 칼자국 딸이 손을 잡고 새벽에 편의점을 방문했다가 술에 취해 대항할 수도 없는 한 남자를 내려다보고 서 있었다.


나는 급히 술을 마시고 지갑을 떨어뜨리고 잉어 문신 딸바보의 따님 앞에서 오바이트를 심하게 한 것 외에 혹시 내가 그들에게 다른 잘못을 했었는지 기억을 되살리려 노력해보았다. 아무리 떠올려봐도 그들의 심기를 건드릴 행동을 한 적은 없는 것 같았다.


아, 이것은.

추가 경고장이 도착했다.


잉어 어깨 마동석이 우산을 잡고 있는 손에서 뭐가 하나 빠진 것이 포착되었다. 새끼손가락이 보이지 않는다. 동네에 떠돌던 미친년의 과거와 그녀의 가족에 대한 무서운 소문 중에 핵심적인 모든 항목이 일치하고 있었다. 소문에 따르면 그녀뿐만 아니라 그녀의 가족들도 서로 다른 방식의 무시무시한 살인의 추억을 떠들고 다녔다고 한다.


두피에서 빗물과 식은땀이 함께 흘렀다. 갑자기 몸이 경직되면서 바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살아오면서 처음 느껴보는 두려움이었다. 차라리 지금 다른 손님도 있고 CCTV도 있는 편의점 앞에서 그들과 마주친 것이 다행일지도 모른다. 만약 다음 주 월요일에 분위기 파악 못 하고 고백 따위를 하려고 그녀의 달리기를 방해하고 조용한 곳으로 불렀다면 더 끔찍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도 스쳐 지나갔다. 침착해져야 했다.


가끔 사람을 죽이지만, 지금은 지갑도 주워주고 토하는 사람 시원하게 마무리하라고 등도 두드려주는 친절한 상태의 모녀일 수도 있다. 그래도 나는 당장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살고 싶었다. 집에서 아내가 남편과 딸을 기다리고 있고 곧 간다고 말해놓고 도대체 왜! 가려다가 말고, 무섭게 팔짱 끼고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인가!




자연스럽게 도망칠 방법을 찾고 있었다. 주섬주섬 가방을 메고 그녀가 챙겨 넣어준 지갑을 다시 꺼내 흔들며 고맙고 지갑 잘 챙기겠다는 표정으로 애써 미소 지으며 허리를 숙여 인사도 했다. 그렇게 살짝 떠날 수 있을지 눈치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그녀가 아빠에게 귓속말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때다 싶어서 나는 최선을 다해 탈출을 시도했지만 빈 골뱅이 캔을 밟고 그 자리에 벌러덩 자빠지고 말았다. 귓속말을 주고받으며 잠시 나에게 소홀했던 두 사람이 다시 나에게 집중하게 되었다. 두려움은 극에 달하고 있었고 귓속말을 듣고 있던 잉어 마동석이 아가미를 펄럭거리며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가 행동에 나섰다. 마동석은 그녀에게 커다란 사시미칼을 전달했고 가로등 불빛에 비친 사시미칼이 새하얗게 번쩍이고 있었다. 귓속말로 이런 대화를 했던 것 같다.


“아빠. 저 새끼. 그냥 담글까?”

“우리 공주 맘대로 해. 대신 죽지는 않게. 오키?”

“옥키~. 칼 좀~”


그녀가 사시미칼을 오른손에 꺾어 쥐고 쓰러져 있는 나에게 다가왔다. 당장 편의점 안으로 뛰어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싶었지만, 팔다리가 모두 마비된 것처럼 저릿저릿하더니 제 맘대로 덜렁거리는 바람에 도저히 일어설 수 없었다.


나는 어깨와 등 근육을 좌우로 흔들며 살아남기 위해 버둥거렸다. 차라리 내 모습이 마른땅을 기다가 초등학생한테 밟힌 지렁이의 처절한 절규처럼 그녀에게 느껴져서 작은 동정심이라도 생기길 바랐다. 그러나 그녀는 큰 물웅덩이를 훌쩍 점프해서 넘어오고 있었다. 버스 안에서 학생이 이야기했던 바로 그 운동화였다. 살인마도 새로 산 운동화가 젖기는 싫었던 것 같다. 그녀는 점프 후 착지와 동시에 더 빠른 속도로 달려와 사시미칼을 들어, 내 배 한가운데를 겨누었다.


‘으와아아아아악.’


이미 늦은 것일까?

살기 위해서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살려즈세요. 살려즈세요.’


그녀는 내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사시미칼이 이미 내 폐를 관통한 것인가? 제대로 목소리를 낼 수도 숨을 쉴 수도 없었다. 나는 살려달라고 수없이 외쳤지만, 입 밖으로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녀가 이번에는 내 배에서 사시미칼을 뽑더니 내 눈앞에 사시미칼을 좌우로 흔들며 조롱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무엇인가 조용히 나에게 말하고 있었지만, 귓구멍에 빗물이 흘러 들어갔는지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물속에 빠진 사람처럼 나는 조용히 가라앉고 있었다.


‘저한테 왜 이러십니까. 제발 살려만 주십시오. 제발.’


나는 계속 외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입 밖으로 나오는 소리는 웅앵웅 웅앵웅 취한 사람의 혀 꼬인 술주정이었다. 주변에 사람이 많았지만 아무도 그녀를 말리거나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 그저 멀리서 각자 마시던 술을 마시며 웃고 떠들며 방관하고 있었다. 그들도 이 상황에 끼어들었다가 무슨 일을 당할지 몰라 방관하는 것이 분명했다. 나는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젖 먹던 힘까지 짜내서 마지막 구조요청을 준비했다.


모두가 들을 수 있게 크게 외쳤다고 생각하는 순간, 온몸에 피곤이 몰려오더니 갑자기 내 하체에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팬티를 적시고 허벅지 위를 지나 바지를 적시는 뜨거운 눈물이 위기에 처한 나를 위로하고 있었다. 방광에서 시작된 뜨거운 눈물에 내 정신을 지배하고 있었던 공포와 두려움이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아, 따뜻해.’


두 눈에서도 눈물이 흘렀다.

눈물샘과 방광이 동시에 울고 있었다.


일시적 따뜻함이었지만

덕분에 마음에도 평온이 찾아왔다.


용기가 생겼다.

미친년도 두렵지 않았다.


그녀는 여전히 사시미칼을 눈앞에 흔들며 나를 조롱하며 지껄이고 있었다. 이제는 그녀가 뭐라고 떠들고 있었는지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괜찮으시겠어요?”

“?”


“가실 수 있으시겠어요?”

‘??”



“어휴. 우산 없죠?”

“... 네?”


“우산요.”

“...??”


“우산 이거 쓰고 가세요.”

‘...?????’




잠시 후, 마동석이 큰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가즈아~~ 집에 가즈아~~”


그녀는 들고 있던 사시미칼을 내 배 위에 올려두고 급히 떠났다.


작은 우산 하나를 쓰고 다정하게 걷는 마동석과 미친년의 뒷모습. 나는 두 사람이 사라질 때까지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마동석의 오른쪽 어깨는 우산 속에 들어갈 수 없었고, 우산 밖에서 그녀 대신 폭우를 맞은 매너남의 왕 잉어는 자랑스러운 모습으로 어깨로 흐르는 물속을 헤엄쳤다.


내 배 위에는

우산 하나가 놓여 있었다.


조명에 반사되어 환하게 빛나던 사시미칼은 아주 튼튼해 보이는 하얀색 삼단 우산이었다. 나는 살아 있음에 감사하며 그녀가 준 사시미칼을 펼쳐 쓰고 휘청휘청 집으로 가는 오르막길을 힘겹게 올랐다.


젖은 바지에 허벅지가 슬려 따가웠다.

뜨거운 눈물도 식었다.



장마노랑우비광년 007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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