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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 diary Mar 05. 2017

Chef's Table - 정관스님.

음식은 마음으로 먹는 것이다. 




커피 향이 그득한 토요일 아침, TV 앞에 앉았다. 미국 생활하면서 TV가 없었던 터라 어제 배달 온 55인치의 스마트 TV의 위엄은 가히 놀라웠다. 우선 집이 좀 더 집다워졌고, 쪼그마한 아이패드로 동영상 '시청'을 하는 모드에서 프리미엄 콘텐츠를 '관람'하는 모드로의 전환은 예상외로 더 드라마틱했다. 


가장 궁금했던 넷플릭스. 한 달 무료 체험할 수 있다니 냉큼 가입 후 어떤 콘텐츠들이 있나 훑기 시작했다. 그중 Chef's Table은 요리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나에게 꽤 흥미롭게 다가왔고, 조금 더 알아보니 이 다큐멘터리 시리즈는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셰프들을 선별해 그 셰프들의 요리 철학과 그들의 삶의 이야기 등을 한 에피소드별로 소개해 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시간이 날적마다 한 편 한 편 다 챙겨보고 싶다.)


Chef's Table: 정관스님 편은 정말 아름답고, 순수하고, 정갈했다. 제 67회 베를린 국제영화제의 컬리너리 시네마 섹션에 초청되었다는 사실이 그다지 놀랍지 않을 정도로. 스님의 정갈한 음식 하나하나가 사찰 주변의 자연경관,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 등에 조화롭게 어우러져. 이미 소담스럽고 고운 스님의 요리가 절제된 영상미에 곱절은 더 아름답게 소개되는. 뭐랄까 새로운 장르의 요리 영화 한 편을 본 느낌이었다.





자연이 양념이다 — 정관스님의 음식은 재료 본연의 맛과 특성을 그대로 살리는 것이 특징이다. 오롯이 자연에서 나고 오는 그대로의 것을 채취하고, 직접 길러내어 재료로 사용하신다. 재료를 길러내실 적부터 어떠한 욕심이나 인위적인 것을 첨가하진 않으신다. 정관스님의 작은 텃밭은 그 처음과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정돈되어 있지 않은 민낯 그대로의 것이지만, 보기 좋고 정갈하게 디자인된 다른 어떤 텃밭보다 자연과 한데 조화롭게 어우러져있는 걸 볼 수 있다.

 

스님은 씨앗을 뿌리고 가끔 한 번씩 텃밭을 둘러보는 정도로만 소임을 다하시고, 그 외의 것들은 모두 자연에 맡기신다. 주변의 공기와 물, 햇살 등이 아름다운 식재료를 만들어 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눈이 오면 눈이 오는 데로,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데로, 그 상황들을 견디며 자라난 작물들을 진심으로 아끼며 사랑으로 일구신다. 또 이렇게 귀하게 자란 작물들을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먹으면 된다는 말씀에 왜 처음에 '자연이 마음의 식재료'라 하셨는지도 알 것 같았다. 





저는 요리사가 아닙니다. 수행자입니다 — 또 흥미로웠던 점은 스님의 간장에 대한 애정과 철학이었다. 스님에게 간장은 가장 기본적인 양념이자 중요 장이다. 10년이든 100년이든 오랜 세월을 지내온 간장 안에는 과거, 현재, 미래가 함께 공존하는데, 현재를 보면 과거를 알 수 있듯이 — 현재의 나는 선조들의 지혜를 본받아 간장을 담아내는 일련의 과정을 통하고 있고, 이 과정들은 결국 내가 과거에도 '존재'했었고, 현재에도 '존재'하고, 미래에도 '존재'할 것이라는 것 — "나는 수행자로서 음식을 만들고 있다"는 말씀은 결국 사찰음식을 만드는 과정은 수행을 하는 것과 동일하다는 스님의 철학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먹을 만큼만 그릇을 채우고 다시 깨끗이 비우는 욕심 없는 비움의 미학이 한국의 사찰음식이라 한다. 사실 비우는 것보다 끊임없이 채우기에만 더 익숙한 나에겐 이 다큐멘터리 한편이 꽤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기회가 된다면 사찰에 가서 사찰음식의 정갈함을 경험해보고도 싶고 명상과 마음을 비우는 노력도 해보고 싶어 졌다. 덧붙여 한 올 한 올 꽃잎을 펴가며 연꽃잎차를 만드시는 정관스님의 모습은 한동안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그 모양새와 과정은 정말 탄성을 지르고도 남을 만큼 온화하고 정적이며 시적이었다. 


:::


다큐멘터리 마지막 즈음에 하신 말씀이 마음에  오래도록 잔향처럼 남는다.

 

창의력과 자존심은 함께 갈 수 없다. 만약 당신이 시기하고 비교하는 마음에서 벗어난다면 창의력은 샘물에 물이 솟든 마구마구 열릴 것이다. 내가 보는 현상과 환경들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지혜와 겸손한 마음가짐이 비로소 당신 스스로를 자유로워지게 할 것이다. 


모두 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땡큐소마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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