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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경계인 Dec 06. 2022

당신의 흔적은 어디에 있나요?

그땐 알 수 없었지만, 지금은 이해할 수 있는 당신

(알수없음)



아침부터 괜히 찝찝한 기분이 들어 아내의 프로필 사진을 확인하려 카카오톡을 열었다. 아니나 다를까? 어제까지만 해도 아내와 나누던 대화방은 "대화를 할 수 없습니다."라는 메시지와 함께 아내는 사라지고 '(알수없음)'으로 표시되어있다. 또 카카오톡을 탈퇴한 것이다. 장모님과 나는 (알수없음)이 보이는 순간 긴장의 끈을 붙들고 있어야만 했다.





전화번호

아내는 대인관계에 있어 남다른 경향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을 사귈 때 불같이 타오르는 장작이 되었다가 어느 순간 물 한 바가지 퍼부은 듯 사람과 단절했다. 타인에게 기분이 나빴거나 나빠질 것 같은 조짐이 보인다면 전화번호까지 바꿔가며 관계를 끊었다.



새로운 사람을 사귀고 나면, 퇴근 후 쉬고 있는 나에게 그 사람의 칭찬을 계속 늘어놓았다. 이역시 가끔은 쉬고 싶은 나에게 고단한 말들이었다. 칭찬일색이다가도 어느 순간 그 사람과 단절 후 전화번호까지 바꾸는 행동은 살면서 여러 번 반복되었다. 평소 아내 핸드폰에 저장된 번호는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였다. 장모님, 나, 자주 가던 네일 아트샵, 미용실, 어린이집, 친구 1 등 살면서 나는 서른 개 이상 저장된 것을 본 적 없다. 시아버지, 시어머니 번호는 저장조차 되어 있지 않았다. 심지어 장모님과 나에게 기분 나쁜 일이 있었다면 휴대폰 주소록에서 삭제했다.




그 당시엔 도무지 이해하려 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내 향기가 사라진 지금은 이해할 수 있다.

책에 소개된 사례들에 의하면 경계성 성격장애 환자들은 대인관계에 있어 양극단을 오가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이 바라보는 타인은 천사 혹은 악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라고 다르지 않았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내에겐 나 역시 천사 혹은 악마로 구분 지었던 것 같다. 어느 순간 천하의 나쁜 놈이 되었다가 다시 만나지 못할 세상에 하나뿐인 남자라 불러주었다.


요즘 이상하게도 도망치듯 사라졌던 아내의 마음이 그리울 때가 종종 있다. 경계성 성격장애가 무엇인지 모르고 함께 살아오면서, 아내가 나를 천사로 바라볼 때의 사랑 가득한 눈 빛이 나도 정말 좋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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