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호호_동호입니다. 시골에 내려와 산지 8년. 평촌요구르트 일을 시작한 지 5년이 되었습니다. 작년까지는 주로 요구르트 배달을 했는데, 올해부터는 가공공장의 위생업무도 맡게 되었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평촌요구르트(이하 ‘평촌')의 ‘평촌'은 우유를 생산하는 목장 이름입니다. 목장 창립자인 신관호 선생님께서는 이웃 간에 정이 넘치는 마을이 되길 바라며 평촌이라고 지으셨다고 합니다.
현재의 평촌은 목장과 가공공장으로 나뉩니다. 신강수, 신준수 형제가 각각 공장과 목장을 책임지고 운영하고 있습니다. 목장을 시작했던 김연옥, 신관호 부부는 요구르트가 자리를 잡은 이후부터는 뒤에서 빈 틈을 메우는 일을 해주고 계시고요.
평촌 일을 하며, 김연옥 여사를 알게 된 것이 큰 소득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산골짜기에 잠자고 있는 호랑이 같다고 할까요. 현재의 평촌이 있기까지 초석을 다진 분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일흔이 넘으셨지만 여전히 부지런하고 명징한 모습에 놀라곤 합니다. 인터뷰를 통해 연옥 여사의 대장부스러운 면모를 잘 전하고 싶었는데 살리지 못한 점이 조금 아쉽습니다.
평촌을 보면 현대 농촌사 전체를 아울러 보는 기분이 듭니다. 풀무 고등부 2회를 졸업한 신관호 씨는 졸업 후 농사를 지었습니다. 농사 벌이는 시원치 않았고, 집터를 구매하면서 진 대출금을 갚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로 파견 노동을 떠났습니다. 한국에 남아 가정을 부양해야 했던 김연옥 여사는 젖소를 시작했습니다. 결혼예물을 팔아 송아지 한 마리를 샀습니다. 낮에는 바깥일, 밤에는 집안일을 해가며 목장을 일궜습니다. 소가 탈출해서 옆동네로 잡으러 갔던 일도 있고, 갓 짠 원유를 지하수에 식혀 경운기에 태워 보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평촌은 2003년 요구르트 가공을 시작하면서 전기를 맞이합니다. 가공은 유기축산까지 가능하게 했습니다. 신준수 씨는 유기축산 전환을 성공한 것을 ‘가까이에 생협이 있었’ 던 덕분이고, ‘유기농업을 해왔던 마을의 힘이었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국내에 존재하는 유기축산 목장은 1%입니다.
현재의 평촌은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분들까지 모두 합치면 아홉 명 정도가 함께하고 있습니다.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해도 되겠지만, 모두 동네 이웃들이지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저는 평촌을 옛 ‘두레’ 공동체의 현대 버전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물론 평촌요구르트가 공동의 재산은 아닙니다. 평촌은 평촌을 모두의 자산에 가깝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습니다.
현대 농업정책의 기본은 대형화와 분업화입니다. 대형화는 개별 농가의 몸집을 키웠습니다. 매출이 늘고 자산도 늘었습니다. 시설과 설비도 늘었고, 기계와 생산량이 늘었습니다. 하지만 농촌이 간직해왔던 관계망은 희박해졌습니다. 빈부격차도 커지고, 서로가 필요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농장이 대형화 될수록, 비대해진 개인은 고립될 위험이 큽니다.
그런 차원에서 평촌은 농촌에 존재하는 하나의 깐부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이웃들이 함께 일하고 공동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곳. 서로가 서로에게 깐부가 되는 곳. 개인이 파편화되는 것을 막는 장소 말입니다. 이것이 옛말로 ‘두레’가 아닐까요.
현대 농촌은 공동 노동의 경험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경제적 이유로 관계 맺는 거래가 아닌 공동 목표를 가진 사회적 관계. 같은 마을 주민들이 형성하고 있는 공통의 소속감과 자부심. 개인을 왜소하게 만드는 이 시대에 작지만 의미 있는 일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평촌의 소득창출이 가능했던 것은, 축산업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축산업은 농촌에 몇 남지 않은 부가가치를 남기는 사업입니다. 하지만 축산업은 여러 폐해를 만듭니다. 벌레가 있고, 냄새가 납니다. 이웃 간 갈등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그리고 최근 들어 이슈가 되고 있는 온실가스까지. 평촌의 구성원들이 이 점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요구르트로 인해 생기는 부가가치를 나누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가까이서 보니 소규모 가공업은 빛 좋은 개살구 같습니다. 매출은 크지만, 그만큼 인증을 포함한 여러 비용과 설비 투자, 유지 비용도 큽니다. 비용도 그렇지만 노동시간이 매우 깁니다. 가공공장은 하루 걸러 하룻밤을 새워가면서 일을 해야 하고, 기계설비는 돌아가며 문제가 생깁니다. 그래서 두 사장님을 보면 존경스러우면서도 안쓰럽습니다.
기존 질서에서 바라보면 이런 운영을 ‘바보 같다'라고 여길 수 있습니다. 평촌의 정신을 모두 전달하는 것은 부족하겠지만 이 ‘바보 같음’을 ‘알아보실 수 있는 분’들과 나눠보고 싶어 인터뷰를 남깁니다.